[길 잃은 규제] ③'연착륙 처방전'으로 혼란 막아라

이남의 기자 2018. 1. 23. 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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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주체들의 규제개혁 요구가 커지는 가운데 문재인정부가 규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관심이 집중된다. 진보의 가치와 규제완화가 충돌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규제로 우리나라 산업 경쟁력에 경고등이 켜진 상황이라 산업계의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다. 이에 <머니S>는 경제 각 분야에서 쏟아지는 규제개혁 요구의 당위성을 짚어봤다. 아울러 최근 이슈로 떠오른 가상화폐 규제를 돌아보고 문재인정부 규제개혁의 방향을 진단했다.<편집자주>

#가상화폐 투자로 내 집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습니다. 흙수저도 행복한 미래를 꿈꿀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정부가 가상화폐 투자자를 도박꾼으로 몰아붙이고 ‘거래소를 폐쇄한다’고 으름장 놓습니다. 가상화폐 투자가 왜 불법도박입니까? 부디 성급한 규제로 우리의 꿈을 빼앗지 마세요.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가 가상화폐 규제를 반대하는 청원으로 도배됐다. 투자자들은 정부규제에 불만을 토로했고 이 글은 20만명의 추천을 받아 ‘베스트청원’에 올랐다. 투자자들은 정부규제로 꿈을 잃었다고 호소한다. 어쩌다 정부규제가 국민행복을 빼앗은 주범으로 지목됐을까.

◆투기성 과열에 ‘규제카드’ 꺼내

정부는 자본시장을 늘 견제한다. 시장은 이익을 좇는 반면 정부는 국민의 복리증진을 목표로 시장을 규제하는 것이다. 특히 가상화폐처럼 시장논리가 불법과 합법 사이에서 줄다기리할 때는 정부가 시장에 개입한다.  

이번 가상화폐 규제 역시 정부가 시장개입에 나선 사례다. 국무조정실은 실명거래를 하지 않는 거래소를 폐쇄하고 투자자에게 거래세와 양도소득세를 부과할 방침이다. 불법거래와 자금세탁을 방지하고 투명한 투자시장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금융당국은 이른바 '벌집계좌' 거래소를 선별하고 불법거래소 리스트를 은행과 공유하는 가이드라인을 구축한다. 가상화폐 투자를 1929년 미국의 대공황 위기를 불렀던 ‘보이지 않는 손’에 맡기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가상화폐시장은 하루 거래량 5조원을 육박할 정도로 몸집이 커졌다. 젊은 세대의 투기에 가까운 매입이 폭증했고 투자자의 자금을 하나의 법인계좌로 받은 뒤 이를 엑셀 등으로 허술하게 관리하는 벌집계좌도 늘었다.

이에 법무부는 거래소 폐쇄 카드까지 꺼냈다. 수백개에 달하는 가상화폐 거래소의 문을 닫아 2004년 발생한 ‘제2의 바다이야기’ 사태를 막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법무부 측은 “가상화폐 투기 열풍은 도박 게임 바다이야기보다 10배가 넘는 국가적 충격을 가져올 것”이라며 “가상화폐 거품이 10%만 꺼져도 수백만명이 피해를 입기 때문에 검찰·경찰·금융당국의 합동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별법 제정 험로… 입법 공감대 형성해야

가상화폐 시세는 강도 높은 규제대책을 내놓은 정부 발표에 폭락을 거듭했다. 비트코인은 연초 2000만원까지 올랐다가 한때 1100만원까지 내려갔다. 이더리움, 리플 등 주요 가상화폐도 하루 만에 60% 이상 곤두박질치며 올 들어 최저가를 보였다. 

투자전문가들은 가상화폐 특별법·제도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가상화폐 관련 법·제도부터 마련해야 투자자의 혼란을 방지할 수 있어서다. 

법률상 가상화폐는 도박으로 규정하기 어렵다. 도박은 형법 246조에서 ‘우연에 의해 재물의 득실을 결정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가상화폐는 거래 시세에 따라 이익이 결정되므로 ‘우연’으로 볼 수 없다.  

가상화폐 TF(태스크포스)는 범정부 차원의 가상화폐 특별법 마련을 논의 중이다.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을 비롯해 최종구 금융위원장과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이 참여해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를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상황이 좋지 않다. 지난해 7월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가상화폐시장 규제안을 제시했으나 각 당 지도부와 국회의원의 무관심한 태도로 공론화되지 않았다.

지금도 야당은 가상화폐 규제에 반대하고 여당은 신중론을 펼친다. 과열 양상을 보이는 가상화폐시장을 잠재워야 한다는 데 동의하지만 거래소 폐지, 세금부과에는 뚜렷한 입장을 내놓지 않는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론을 의식한 행보다.

법조계는 가상화폐 특별법이 속도를 내지 못하면 투기심리만 흔들어 놓을 것이란 우려를 제기한다. 가상화폐 TF가 특별법안을 발의해도 시기를 놓치면 하반기 국회 본회의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필우 입법발전소 변호사는 “가상화폐는 법적으로 화폐도, 증권도, 상품도 아니다. 투자자산에 대한 법적 정의 없이 규제하는 건 어불성설이지 않나. 정부가 가상화폐의 법적 지위를 특별법으로 정의한 다음 규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거래소 폐쇄 극단조치보단 '연착륙'

규제의 속도 조절도 필요하다. 학계는 선진국처럼 가상화폐 투기심리를 조절할 수 있는 과세방안 도입을 우선과제로 꼽는다. 가상화폐 사태가 자칫 사회문제로 비화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연착륙을 유도해야 한다는 얘기다. 


가상화폐 거래가 활발한 미국·영국·일본은 가상화폐 시세차익에 세금을 물린다. 대부분 소득세를 부과하는 반면 부가가치세는 면제해줘 투자자들이 불만 없이 세금을 내는 기류가 형성됐다.

미국은 1년 이내 단기매매로 발생하는 소득을 통상소득에 포함해 종합과세하고 장기 양도차익은 낮은 세율로 분리과세한다. 일본은 종합소득신고 의무자에 한해 잡소득으로, 호주는 투자·사업 목적으로 보고 가상화폐 이익에 자본이득세를 부과한다. 2015년 유럽연합 사법재판소는 가상화폐 시세차익을 ‘부가가치세 과세대상이 아니다’고 판결했다. 이에 독일은 가상화폐 부가가치세를 비과세로 전환할 방침이다.

법무부가 주장한 거래소 폐쇄는 ‘불법행위를 저지른 거래소’라는 예외조항을 둘 필요가 있다. 정부는 이달 말 가상화폐 실명제를 도입해 거래소와 계약을 맺은 은행이 투자자별로 실명확인을 진행토록 할 예정이다. 투자자가 불법자금으로 가상화폐를 매입하는 것이 금지돼 가상화폐 거래소도 옥석이 가려질 전망이다. 투자자는 '거래소가 언제 문을 닫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떨칠 수 있다.  



오정근 건국대 IT금융학부 교수는 "가상화폐시장에 실명제가 도입되면 실거래자 중심으로 시장이 투명하게 재편될 것”이라며 "정부가 이번 기회에 과세방안과 거래소 규제를 정립하면서 부처간 이견을 없애고 제대로 된 연구를 시작해야 한다. 늑장 대응으로 투자자를 혼란시키는 사후약방문 규제가 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24호(2018년 1월24~30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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