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끝 보수]③30%대 '콘크리트' 보수는 어디로 사라졌나

하지나 입력 2018. 1. 23. 05:30 수정 2018. 1. 24.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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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구조변화·경제침체 등 보수정당에 유리한 환경
朴탄핵 이후 대안없는 보수지지층..대선 이후 결집 실패, 스윙보수 부상
文정부, 포용적인 국정운영시 중도·진보정당 새로운 기회될 수
[이데일리 하지나 기자][편집자주]한국 보수가 수렁에 빠졌다. 한때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산업 역군’으로 칭송받았지만 이제 ‘무능’ ‘부패’ ‘꼰대’ 등 부정적인 이미지가 남았다. 기존 보수 유권자조차 보수정당을 외면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보수 궤멸’ 상태에 대한 우려도 크다. 바람직한 민주주의를 위해 건전한 견제세력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데일리는 벼랑 끝에 몰린 보수 정치권의 위기를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해본다.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이 지난 2016년 1월 셋째주 시행한 여론조사에서 스스로를 ‘보수’라고 밝힌 응답자는 전체 응답자의 36.8%를 차지했다. 올해 1월 셋째주 같은 질문에 대해 동일한 대답을 내놓은 응답자는 27.68%에 불과했다. 2년 새 보수 응답자 비율이 10%포인트가량 줄어든 것이다.

보수정당 지지율만 살펴봐도 상황은 비슷하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의 지지율을 모두 합쳐도 20%가 채 되지 않는다. 그 굳건했던 30%대 콘크리트 지지율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유권자 보수화 추세 뒤엎은 박근혜 탄핵

흔히 정치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경우 보수정당에게 유리한 환경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우선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점에서 ‘반공’과 ‘국가안보’를 무기로 내세운 보수 진영의 논리는 여전히 유효하다.

저출산·고령화 현상 또한 보수정당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일반적으로 5060세대는 보수 성향이 강하고, 2030세대는 진보 성향이 강하다. 특히 2030세대는 투표 참여율이 상대적으로 저조하다. 또한 영·호남의 지역적 이념 갈등이 첨예한 상황에서 진보정당의 지역기반인 호남 인구는 계속 줄어들고 있다. 경제침체와 고용불안의 장기화 역시 보수화 추세를 부채질하고 있는 요인 중 하나다.

유권자의 보수화를 여실히 드러낸 것이 바로 2012년 18대 대통령 선거 때다. 지난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 투표했던 30~40대 유권자들이 10년 후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투표하는 양상을 보였다. 2012년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던 5060세대는 10년 전보다 610만 명 증가한 반면, 2030세대는 155만 명이나 줄어들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세대효과가 없어지고, 연령효과가 높아지는 것”이라면서 “민주화를 이끌었던 386세대 또한 50대가 되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이후 이 같은 추세가 한순간에 뒤바뀌었다. 그렇다고 보수지지층이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을 뿐이다. 이른바 ‘집단동조현상’이다. 사회심리학자 솔로몬 애시는 같은 길이의 선을 선택하는 간단한 실험을 통해 사람들이 주변의 시선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밝히던 실험참여자들조차 다른 사람들이 모두 틀린 답을 말하는 모습을 지켜본 후 1/3 이상이 틀린 답을 내놓았다.

◇대안 잃은 보수..여전히 표류 중

탄핵정국 속에서 치러진 지난 19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이 같은 현상이 두드러졌다. 스스로 보수라고 밝히기를 꺼리는 일부 보수 지지층 ‘샤이(Shy) 보수’를 두고 저마다 다른 해석을 붙였다. 샤이보수가 결집에 나서느냐, 또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실망한 보수층이 지지를 철회하거나 아예 투표권을 포기할 것인가에 따라 선거 결과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선거 막판 샤이보수는 결집에 나섰다. 여론조사에서 줄곧 3위를 기록했던 홍준표 한국당 후보는 최종득표율 24%로 2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완벽한 재결집은 아니다. 홍 후보의 득표율은 역대 보수정당 후보 중 가장 최저치이다.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보수 정당 후보가 40% 이하의 득표율을 기록한 것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무소속 이인제 후보로 분열했던 1997년 선거가 유일했다.

대선은 끝났지만 여전히 보수층은 표류하고 있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정치사회조사본부장은 “(최근 여론조사에서) 지난 대통령 선거 때 홍준표·안철수 후보를 찍었냐는 질문을 했더니, 실제 대선 득표율보다 5~9%포인트 낮게 나왔다”면서 “기존 보수지지층의 대다수가 지지정당을 찾지 못한 채 부동층, 무당층이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심지어 대안을 찾지 못한 보수 이탈층 중 일부는 아예 지지정당을 바꾸기도 했다. 정한울 한국리서치 여론조사 전문위원은 “패널조사를 실시한 결과, 선거 직후 새누리당 지지자의 절반에 가까운 48.7%가 새로운 정당을 선택하거나 무당파로 바뀌었다”면서 “특히 기존 새누리당 지지층의 30%에 이르는 개종 보수층이 문재인 후보에게 투표한 비율이 42.3%로 가장 높았다”고 말했다.

보수 이탈층의 행보는 여전히 유동적이다. 중도·진보정당에 새롭게 유입되거나 무당층으로 이탈한 보수층 모두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움직일 수 있는 ‘스윙보수’인 셈이다. 정 전문위원은 “당장은 새로운 정부·여당에 한 기대감이 우세하겠지만 좌우 진영론에 기반을 두고 정국을 이끌 경우 다시 이탈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반대로 문제 해결을 지향하는 실용 태도와 포용적인 국정운영이 이뤄질 경우 보수층이 중도·진보 정당에게는 새로운 지지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나 (hjina@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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