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초에 한번, 초등입학때 또 한번.. '행복한 육아'에도 2차례 위기 온다

이경은 기자 입력 2018. 1. 23. 03:13 수정 2018. 1. 23.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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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행복입니다] [제1부-한국인의 출산 보고서] [4]
'허수애비'에 한번, '학원 뺑뺑이'에 두번.. 엄마는 운다
결혼·육아 1004명 조사해보니.. 한국 육아행복 그래프는 'N자형'
20대 후반 여성, 육아 행복도 꼴찌 "아이 재워놔야 남편 귀가해 서운"
30대 후반도 육아 행복도 급락 "운동회 등 못가 애가 불평땐 눈물"
두 시기만 넘기면 행복도는 상승

'월급 받아 덜 먹고, 덜 쓰고 악착같이 모아 부모님 도움 없이 신혼집을 구했다. 매일 밤늦게까지 야근하느라 울면서 퇴근했지만, 아이 셋쯤 낳아 복닥복닥 살아보겠다는 욕심에 버텼다. 하늘에서 아기 천사가 찾아왔을 때 눈물 나도록 감사했다. 난생처음 해보는 육아는 쉽지 않았다. 늘 수면 부족에 시달렸다. 그래도 커가는 아이의 재롱을 보는 것이 낙이었다. 그렇게 눈물과 기쁨으로 키워낸 아이가 곧 초등학생이 된다. 이번 고비는 잘 버텨낼 수 있을까. 이른 하교와 긴 방학…. 이번엔 회사를 관둬야 하는 건 아닌지, 벌써부터 걱정 한가득이다.'

기혼 여성 15명을 심층 취재한 결과를 토대로 재구성한 대한민국 25~45세 부부들의 육아 현실이다. 본지가 결혼·육아 세대(25~45세) 100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자녀가 있는 기혼 남녀 491명이 그린 한국형 육아 행복 그래프는 이른바 'N자형'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이 매우 행복하다'고 응답한 비율이 20대 후반은 53%로 가장 낮았지만 30대 초반은 62%로 가파르게 높아졌다. 그러다 30대 후반에 다시 57%로 하락했고, 40대 초반엔 60%까지 반등해 'N자'를 만들었다. 전문가들은 육아가 힘든 출산 초기, 자녀가 일찍 하교하는 초등학교 입학기가 출산·육아 세대에 고비라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말했다. 젖먹이 시절 경력 단절 '1차 위기'를 잘 버텨낸 워킹맘들도 아이들이 점심때 하교하는 초등 1~2학년 시기에 휘청대는 '2차 위기'를 겪는다는 것이다.

25~45세는 취업·결혼·출산·육아 같은 삶의 과제들이 한꺼번에 몰려드는 러시아워(Rush Hour·혼잡 시간)기다. 이 시기의 육아 행복 곡선은 결정적으로 아이 성장이 영향을 미친다. 취업·결혼이라는 인생 2대 관문을 통과한 20대 후반 부모의 육아 행복도는 조사 대상 중 꼴찌 그룹이었다. 본지가 기혼 여성 15명을 심층 취재한 결과 첫째 출산에 대한 피로감이 행복도를 갉아먹고 있었다.

◇첫째 출산과 초등 입학의 원투 펀치

"집에만 있으면서 애 보는 게 뭐가 그렇게 힘드냐는 말을 들을 때 너무 힘들어요."

작년 말 출산해 육아휴직 중인 황모(28)씨는 "남편이 집에 조금 일찍 들어와 도와주면 좋겠는데 현실은 아이를 다 재워놔야 돌아온다"며 "내가 육아휴직 했으니 (자기는) 여유 부려도 되겠지 생각하는 것 같아 얄밉다"고 말했다. 두 살배기를 키우는 박모(29)씨는 "출산 전까지는 남편이 좋았는데 지금은 서운하다"면서 남편이 흔히들 말하는 '허수애비'인 줄 몰랐다고 했다. '허수애비(허수아비+애비)'는 직장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육아·가정일에 소홀한 아빠를 빗댄 말이다.

물론 남편들도 할 말은 있다. 첫 아이가 태어날 즈음의 아빠들은 회사에서 직급이 상대적으로 낮다. 육아에 관여하지 않은 채 회사일에 매진해온 중년의 상사들에게 '아이를 돌보러 일찍 가겠다'는 말을 꺼내긴 어렵다.

30대 후반의 낮은 육아 행복도는 자녀의 취학 여부가 영향을 미쳤다. 이 시기는 자녀가 초등학교에 갓 입학할 시점과 겹친다. 여성들의 취업자 비중(56.5%· 통계청)이 바닥을 치는 시기이기도 하다. 10세 자녀를 키우는 신정하(39)씨는 "아이가 학교에 들어갔을 때가 고비였다"고 했다. 신씨는 "학교에 운동회·총회 등 행사가 종종 열리는데, 참석하고 싶어도 직장 때문에 여건이 좋지 않다"면서 "아이가 방학인데 왜 나만 학교(돌봄 교실)에 가야 하느냐고 물을 땐 속상했다"고 했다. 육아 행복도가 60% 이상으로 높았던 연령대는 30대 초반과 40대 초반이었다. 여성정책연구원의 홍승아 박사는 "40대에 접어든 부부는 아이가 영·유아일 때와 비교해 양육 부담이 한결 가벼워진다"고 말했다.

◇'육아는 여성 책임' 인식이 행복도 낮춘다

N자형 육아 행복 곡선은 성별에 따라 온도 차가 상당히 컸다. 아이 양육에 대해 '매우 행복하다'고 답한 남성은 73%인 데 반해 여성은 49%에 그쳤다. 남녀의 육아 행복에 간극이 벌어진 이유는 뭘까. 40개월 아이를 키우는 강모(36)씨는 "육아는 엄마 몫이라는 사회 분위기가 모든 걸 힘들게 만든다"고 하소연했다. 최모(29)씨는 "늘어진 옷 입고 집에 고립된 채 살아가는 나 자신이 불쌍하다"면서 "대학원을 휴학했는데 학업에 돌아가지 말도록 강요받고 있다"고 말했다.

아무 문제가 없던 부부도 출산과 육아를 계기로 갈등이 생기게 마련이다. 부부 10명 중 9명꼴로 부모가 된 이후 배우자에게 실망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전문가들은 격동의 출산·육아기에 생긴 부부의 엇갈린 오해를 방치한 채 중년기를 보내고, 은퇴까지 맞이하면 부부 관계가 섬뜩할 정도로 살벌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요즘 서점가에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나 '어쩌자고 결혼했을까' 같은 도발적인 제목의 책들이 화제인 이유다. 이수연 한국워킹맘연구소장은 "부부 사이에 육아·가사 분담에 대한 갈등이 생기면 아이한테까지 부작용이 미치고, 결국 가족 구성원 모두가 병드는 악순환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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