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 뚱보, 여든까지 간다

김재곤 기자 2018. 1. 23.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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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속 '후뚱' 사회] [5] 성인까지 이어지는 청소년 비만
잘못된 식습관 바꾸기 어렵고 운동 못해 살 더찌는 악순환
초등생 70%, 고등학생 돼도 비만
청소년 운동 부족은 세계 1위
"아이 혼자선 나쁜 습관 못고쳐.. 건강한 생활 환경 만들어줘야"

키 175㎝에 몸무게 130㎏인 A씨(41)는 '초고도 비만'이다. 어릴 때부터 '뚱보'라고 놀림받았다. 맞벌이하던 A씨 부모가 출근하면서 쥐여준 돈으로 음식을 배달시켜 먹는 게 일상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슬슬 배가 나오기 시작해 점점 불어났다. "'살을 빼야겠다'고 다짐해도 기름진 음식을 즐기던 입맛을 바꾸긴 어려웠다"고 한다. 살이 찌니 운동하는 게 버거워지고, 다시 살이 더 찌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결국 30대 중후반부터 당뇨병·고지혈증 등 이상 신호가 나타나 단식(斷食)하거나 다이어트 기능 식품도 사 먹어 봤지만 잠시뿐 금세 요요현상이 나타났다. 뒤늦게 병원을 찾은 A씨는 의사 처방을 받으며 조금씩 체중을 줄이고 있다.

◇비만 아동 70%는 8년 뒤에도 비만

A씨처럼 소아·청소년기부터 비만하면 성인이 돼서도 여전히 비만일 가능성이 높다. 소아·청소년기에 살이 찌면 '어릴 때 살은 다 키로 간다'며 웃어넘기는 일이 잦지만 전문가들은 "'세 살 비만 여든까지 간다'는 게 실상"이라고 말한다.

국립보건연구원이 2008년 만 10세 아동 369명을 8년간 추적 조사한 결과, 2008년 비만이거나 과체중인 아동 71.9%는 4년 뒤에도 비만이었고, 68.8%는 8년 뒤에도 비만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비만이면 약 70% 정도가 고교 3학년 때까지 비만이라는 것이다. 10세 때 체질량지수(BMI)가 상위 25%에 속했는데, 8년 뒤 상위 50% 아래로 살을 빼는 데 성공한 경우는 14.1%에 불과했다.

일러스트=박상훈

어릴 때 비만이 커서도 이어지는 건 잘못된 습관에서 탈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상우 동국대 의대 교수는 "식습관이나 운동습관은 어릴 때 부모의 영향 등으로 형성돼 평생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면서 "기름진 음식을 좋아하거나 야식을 즐기는 습관이 들면 아무리 의식적으로 노력해도 바꾸기 어렵다"고 했다. 어릴 때 비만이 되면 몸 자체가 '비만 체질'로 변한다는 지적도 있다. 전문가들은 "성인일 때 살이 찌면 지방 세포의 크기가 커지지만, 어릴 때는 지방 세포 개수도 함께 늘어난다"면서 "성인이 되고 노력해도 지방 세포 개수를 줄이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청소년 운동 부족은 세계 1위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2016년 청소년(6~18세) 비만율은 13.3%(남학생 15.3%, 여학생 11.1%)나 된다. 과체중까지 포함하면 청소년 다섯 중 하나(19.1%)꼴이다. 2001년(9.1%)에 비해 15년 만에 1.5배 급등했다. 국제적으로도 심각한 수준이다. 2015년 성인 고도 비만율은 4.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낮지만, 청소년 비만율은 21.5%로 OECD 평균(24.6%)과 거의 비슷하다.

지난해 국내 남자 고등학생 18.9%(여학생은 15.9%)가 '일주일에 패스트푸드를 세 번 이상 먹는다'고 답했다. 탄산음료를 매주 3회 이상 마시는 경우도 남학생 32.5%, 여학생 19.9%에 달했다. 살찌기 쉬운 음식을 즐기지만 운동을 많이 하는 것도 아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120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2010년 기준)에서 우리나라 청소년(11~17세)의 운동 부족 비율이 94.8%로 가장 높았다. 미국 72.6%, 영국 79% 등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강재헌 인제대 의대 교수는 "어릴 때 비만으로 이어지는 식습관이나 운동 부족 습관을 바로잡는 게 성인기보다 훨씬 쉽다"면서 "소아·청소년 비만 예방은 비용 대비 효과가 가장 우수한 공중 보건 정책"이라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보건복지부·건강증진개발원이 전국 61개 초등학교에서 방과 후 교실(초등돌봄교실)을 이용하는 1~2학년 학생 2537명에게 바른 식생활 체험 교육과 신체 활동 놀이 프로그램 등을 제공한 결과, 3개월 만에 과체중·비만 아동 비율이 17.1%에서 14.6%로 줄었다. 김민정 건강증진개발원 건강실천팀장은 "아이들은 성인보다 자신의 의지로 식습관을 바꾸거나 운동을 실천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아이에게 비만을 예방할 수 있는 주변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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