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한테 인기 없어야 도자기 만들죠"
투박하지만 활기차다. 소박하지만 대범하다. 미술사학자 고유섭은 분청을 가리켜 "민중의 순재대담(純材大膽)한 활갯짓"이라 표현했다. 고유섭 아호를 물려받은 급월당(汲月堂) 윤광조(72)는 이런 분청의 맥을 현대적으로 잇고 있다.
제자는 열 명 남짓. 하루 이틀 만에 야반도주한 이들을 뺀 숫자다. "싸늘하기가 서릿발 같은" 스승의 성정 탓이다. 그는 제자의 그릇이 자신의 것을 모방했다고 생각하면 가차 없이 깼다. 그가 가르친 건 단 하나. "나를 따라 하지 마라."
윤광조와 문하생인 변승훈(63)·김상기(62)·김문호(61)·이형석(53)이 함께하는 '이제 모두 얼음이네' 전시가 31일까지 서울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다. 현대 분청의 대가로 평가받는 윤광조는 2003년 미국 메이저 미술관 중 하나인 필라델피아미술관에 동양작가로서 처음 초대됐고, 전시는 이듬해 시애틀아시아미술관까지 이어졌다. 같은 해 국립현대미술관은 그를 올해의 작가로 선정했다.
네 명의 제자는 1년이나 1년 반 정도 윤광조의 옛 작업장인 경기도 광주의 산기슭에서 함께 살았다. 윤광조는 "산에서 혼자 살다 보니 밥 잘하는 사람을 제자로 받았다"며 "가장 음식 솜씨가 좋은 건 목포 출신인 김문호"라고 치켜세웠다.
문하생과 동인전을 연 이유를 윤광조는 "기특하고 미안해서"라고 했다. 함께 전시할 제자를 고르는 데 두 가지 기준이 있었다. "도자기 제작 전 과정을 혼자 해야 하고, 나와 다른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어야 했죠. 모두 산에 산다는 공통점도 있고요." 누군가 "여자한테 인기도 없어야 해요. 산에서 흙만 만지는데 누가 좋아하겠어요"라고 해서 웃음이 터졌다.
'빙수위지(氷水爲之) 이한어수(而寒於水)'. 얼음은 물에서 나왔지만 물보다 더 차다. '청출어람'과 같은 의미다. 동인전 제목을 '이제 모두 얼음이네'로 지은 건 그가 30년 만에 제자들에게 건네는 최고의 칭찬인 셈이다.
"도자기는 노동의 땀으로 표현하는 예술이죠. 하지만 앤디 워홀 같은 사람들 탓에 예술도 공장에서 찍어내는 시대가 됐죠. 이런 시대에 저를 따라 혼자 산에서 분청을 만드니 어떻게 기특하지 않겠어요. 저를 만나지 않았으면 다른 길 갈 수도 있었으니 그게 또 미안하고요, 허허!" (02)720-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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