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관절시술 권고 뿌리치고 1만8,000km 걸어서 여행하는 이유

김광원 입력 2018. 1. 22.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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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여행가 안승영씨. 그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출발해 아시아까지 1만8,000km를 걷는 대장정 중이다. 김광원기자 jang750107@hankookilbo.com

“하루 동안 사막(광야)길을 53km나 걸었습니다.”

20대 청년의 이야기가 아니다. 백발이 성성한 도보여행가 안승영(63)씨가 2017년 8월 터기 아그리주에서 세운 기록이다. 아그리주 인근은 쿠르드족과의 분쟁이 잦은 지역이어서 터키인들이 “절대 텐트를 치지 마라”고 일러준 곳이었다. 안씨는 해가 뜨기 전 텐트를 걷고 마을이 있는 곳을 찾아 걷기 시작했고, 그 결과 자정 무렵까지 해발 2000미터가 넘는 고지를 16시간 가까이 걸었다. 안씨는 그렇게 2016년 12월부터 올해 10월까지 6,000(여, 혹 7000)km를 걸었다. 20kg짜리 베낭과 지팡이만 지니고 진눈깨비가 흩날리는 고원과 40도가 넘는 폭염의 사막을 걸었다. 위대한 여행가 이븐 바투타(1304~1368)의 고향이지 영묘가 있는 아프리카 대륙의 딴제(탠지어)에서 출발해 마르코 폴로(1254~1324)와 혜초(704~787)가 지났던 지역들을 따라 걸었다.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슬로바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세르비아, 불가리아, 터키를 거쳐 이란에 이르는 대장정이었다.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또 유럽에서 아시아로 건너올 때 배를 탄 것 외에는 전혀 탈 것에 몸을 싣지 않았다. 바퀴에 힘도 빌리지 않았다. 대개 대륙횡단에 나서면 짐을 수레에 싣고 움직이기 마련이지만 ‘걷는 행위’에 충실하기 위해 베낭 속에 모든 것을 다 집어넣고 하루 평균 30km이상씩 걸었다.

이븐 바투타의 영묘에서 시각장애인인 관리인과 함께.
광야를 걸으며 한 컷.

“더울 땐 숨이 턱턱 막힙니다. 기상센터에서 40도가 넘을 거라고 발표하는 날이 많았습니다. 사실은 그 이상이죠. 주변에 나무 한 그루 찾아보기 힘든 사막은 온도를 재는 기상센터보다 훨씬 더 덥습니다. 제가 알기로 기상센터 온도계는 잔디밭이 있거든요.”

몸 상태도 최악이었다. 2014년 정형외과 전문의에게 “무릎에 당장 인공관절을 넣으라”는 권고를 받았다. 눈도 온전치 않다. 한쪽 눈이 시력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눈이 부셔도 실내에서도 선글라스를 쓴다. 그럼에도 여행을 강행했다. 오히려 몸이 안 좋단 말이 더 서둘렀다. “지금을 놓치면 더 나이 들어선 절대로 못 간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무릎은 운명에 맡기기로 했다.

걷는 중에 기적을 체험했다. 어느 순간 무릎 통증이 사라졌다. 그 즈음 우연히 기사 한편을 접했다. 미국 보스턴 대학 연구팀이 하루에 4.8km이상을 걸으면 관절염 예방은 물론이고 퇴행성관절염이 있는 사람도 상태가 호전된다는 사실을 밝혔다는 기사였다.

“하늘이 돕는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보 여행에 대한 확신이 생겼죠. 제 자신을 믿고 끝까지 가보자고 결심했습니다.”

무릎 걱정은 덜었지만 도보 여행은 하루하루가 고행이다. 가장 힘든 것은 바람과 개다. 맞바람은 물론이고 뒤에서 부는 바람과 측풍도 걷기를 힘들게 했다.

“뒤에서 바람이 불면 앞발가락으로 버텨야 하고 옆에서 부는 바람은 20kg이 넘는 불룩한 베낭을 밀어 부칩니다. 베낭이 돛처럼 바람을 껴안고 몸을 흔드는 거죠. 멀리서 보는 사람은 펭귄처럼 뒤뚱거린다고 생각할 겁니다.”

크로아티아에서 발바닥에 피로 골절이 왔다. 도전을 멈추고 싶었다면 그보다 훌륭한 핑계가 없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멈추지 않았다. 2달 동안 발뒤꿈치를 들고 걸었다. 그 사이 보스니아와 세르비아를 거쳐 불가리아에 도착했다.

노아의 방주가 닿았다는 아라랏산. 터키 이란국경에 있다. 해발 5000m가 넘는다.
터키 이란 국경에서 근무자와 기념 촬영.
2017년 8월 18일, 터키 이란 국경 도착했다. 이란 쪽에 호메이니와 하메네이의 사진이 걸려있다.
손이 닿으면 황금으로 변한다는 미다스왕의 무덤.
스페인 프랑스 국경. 인도 앞 쪽이 스페인이고 줄무늬 보도블럭부터 프랑스다.

개도 두려운 존재였다. 걸을 때는 늘 작대기를 지녔다. 지팡이 삼아 걷다가 유사시엔 개를 쫓는 무기로 썼다. 위험한 개를 알아보는 그만의 방법이 있다고 했다.

“동네에서 개가 우르르 나타나면 허리를 숙여 돌을 줍는 흉내를 냅니다. 그러면 7~8마리는 후다닥 달아납니다. 그런데, 돌을 줍는 척해도 가만히 있는 개는 위험합니다. 작대기를 칼처럼 움켜쥐고 방어 자세를 취한 채 지나가야 하죠.”

가장 위험한 개는 양치기 개다. 초원에서 양무리를 이끌고 다니는 모습은 보기 좋지만 늑대로 곰 같은 맹수를 상대하는 녀석들인 만큼 여간 사나운 것이 아니다. 그중에서도 양떼를 모는 개보다 우리에 있는 양들을 지키는 개가 훨씬 더 호전적이다. 터키 동부에서 양치기 개의 공격을 받았다.

“양떼가 보이면 멀찍이 돌아서 가는데 그날은 언덕 바로 밑에 양우리가 있어서 미처 못 봤습니다. 양떼를 지키던 개가 네 마리나 달려들었습니다. 누런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 대면서 달려드는 개들을 향해 미친 듯이 지팡이를 휘둘렀죠. 움막에서 양치기가 조금만 늦게 나왔더라도 개에 물렸을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합니다.”

여행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사람이었다. 스페인의 작은 마을에서 만난 호세라는 친구는 작은 소금병 하나를 선물했다. 안씨는 “소금은 어느 나라에서나 벽사의 의미가 있는 바, 호세가 건넨 소금병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리 동부 시골마을에서는 바의 여주인에게 멋진 인사를 들었다. 안씨와 동갑이었던 여주인은 “나도 당신처럼 그래봤으면 좋겠다”고 고백한 뒤 “Have you nice your life!”라면서 삶 자체를 축복해줬다.

터키에서는 이슬람 지도자가 안씨에게 이슬람식 이름을 지어줬다. 그를 만난 건 식당도 없는 작은 마을이었다. 저녁을 해결할 길이 막막해 거리를 서성이고 있을 때 한 남자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자신을 무스타파라고 소개한 그는 안씨를 집으로 초대해 같이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무스타파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자기 이름을 준 것이었다.

“마호멧의 이름이 무스파타입니다. 터키 국부의 이름도 무스타파 케말파샤구요. 자기가 알고 있는 가장 멋있는 이름으로 저를 축복한 셈이죠.”

10월말 잠시 여행을 멈추었다. 투르크메니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비자를 받기 위해 귀국했다. 12월초에 다시 출국했다. ‘스탄’이라는 이름이 붙는 국가들과 몽골 (몽골은 지나지 않습니다) 을 지나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오면 여행이 끝난다. 계획대로 된다면 2019년에 한국에 도착한다. 26개월이 걸리는 대장정이다. 예상거리는 1만8,000km다. 안씨는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유럽으로 아시아로 건너올 때 배를 탄 것을 제외하면 모두 걸었다”고 말했다.

라마단 기간 중 현지인에게 식사 초대를 받았다.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 해 준 모스크 지도자 무스타파.

한국에 도착하면 그간의 경험으로 바탕으로 책을 쓸 생각이다. 1980년대 미술 전시회를 위해 일본을 방문한 것을 시작으로 건축업을 하면서 틈틈이 30여개국을 다니며 공부하고 경험한 것들을 책에 모두 담을 계획이다. 단순한 여행기는 아니다. 모든 여행이 기본적으로 문화ㆍ역사 답사였던 만큼 15개의 학술적 주제로 여행을 정리해놓았다. 15개의 주제 중 하나인 ‘제노사이드(1948년에 국제 연합 총회에서 채택된 집단 살해의 방지 및 처벌에 관한 조약)’에 들어갈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했다.

“보스니아에서 한 남자를 만났습니다. 집단학살 때문에 부모와 형제를 모두 잃고 혼자만 살아남았다고 했죠. 영어로 더듬 더듬 인사를 나누다가 깊은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모국어로 펑펑 울면서 자기 이야기를 하더군요.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 비극의 깊이는 느껴졌습니다.”

아직 여행이 남았다. 그가 여행 중에, 혹은 잠시 귀국해 있는 사이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 “왜 걷느냐”는 것이었다.

“이유는 없습니다. 그저 걷는 거죠. 세계 평화를 위해서 걷는다는 사람도 봤는데 이치에 닿지 않는 말입니다. 나의 여행을 보고 특별한 의미를 발견하거나 용기와 희망을 얻어간다면 그보다 기쁜 일은 없겠지만, 내 스스로 그런 걸 목표로 하지는 않습니다. 누군가는 인생을 여행에 비유하는데, 왜 사느냐는 질문에 답하기 힘든 만큼 왜 걷느냐는 질문에도 정답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광원기자 jang7501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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