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명선의 인간, 동물 그리고 병원체](10)인간도 동물에게 바이러스를 옮긴답니다, 지금 이 순간처럼

천명선 | 수의사 2018. 1. 22.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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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병원체 주고받는 동물원

‘동물원은 인간의 행동양식을 연구하기에 최상의 장소’라는 유머가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동물원 한 구석 벤치에 앉아 동물을 구경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정복해야 하는 야생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신기한 존재들을 모아두고 자랑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이 동물원을 만들었다. 현대의 동물원들은 생태보전과 멸종위기종 보호 그리고 생태교육을 목적으로 존재한다. 하지만 사실은 자연과 닿을 길이 없는 삭막한 도시인들에게 바이오필리아(biophilia)의 감성을 충전시키는 장소이다.

병원체에게 동물원은 어떤 곳일까? 때로 동물원 그리고 국립공원의 동물시설은 야생동물과 사람이 병원체를 주고받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병원체를 옮기는 편은 동물이 아니라 사람일 수도 있다. 가축을 감염시킬 수 있는 병원체의 80%는 야생동물의 생존을 위협할 수도 있다.

■ 모기가 날자 까마귀 떨어지다

미국 뉴욕시의 브롱크스 동물원·야생동물보전공원은 도시에 있는 동물원으로서는 미국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공원이자 동물원인 이곳 주위에는 자연 식생의 숲과 사람들이 인공적으로 가꾸어 놓은 식물군이 자리를 잡고 있다. 1899년 뉴욕 동물공원으로 시작된 이곳에 현재는 600여종 4만5000마리의 포유류와 조류, 파충류, 양서류 동물들이 전시되고 있다. 이들과 더불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자연종의 동물들도 이 동물원 구역에 존재한다.

브롱크스 동물원에서 1999년 6월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야생조류들이 죽어가기 시작했다. 증상도, 혈액검사 결과도 특징적이지 않고 잠복기나 질병의 경과도 일정하지 않아서 진단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특히 아메리카 토종 조류들에게 심한 피해를 입혔다. 이 지역 까마귀들도 이 질병을 피하지 못했다.

같은 해 8월12일 한 60세 남성을 시작으로 뉴욕시에서는 원인 모를 뇌수막염 환자들이 보고되기 시작했다. 9월까지 총 59명의 환자가 이 질병으로 입원했다. 원인체를 규명하기 어려웠다. 처음에는 세인트루이스 뇌염으로 오인되었다. 4명의 노인 환자가 사망했다. 세인트루이스 뇌염은 동물, 특히 조류에게 치명적이지 않다. 이 뉴스를 접한 브롱크스 동물원의 수의사들은 새에서 발생했던 질병과의 연관성을 의심하기 시작했고, 샘플을 보건당국으로 보냈다. 결국 조류, 사람, 모기 샘플에서 원인체인 웨스트나일 바이러스를 동일하게 찾아낼 수 있었다. 이 바이러스는 1998년 이스라엘에서 확인된 웨스트나일 바이러스와 동일했다. 웨스트나일 바이러스는 집모기속의 모기가 옮기는 병원체로, 웨스트나일열이나 웨스트나일 뇌염을 일으킨다. 문제는 1999년 이전에는 북아메리카 대륙 어디에서도 이 병원체가 발견되거나 해당 질병이 발생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처음의 혼란이 빚어졌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어느 집모기는 초여름에는 새의 피를, 번식기가 끝나 새들이 흩어지는 늦여름엔 사람의 피를 빠는 것을 좋아한다.

대체 이 모기는 어디에서 왔을까? 비행기로 오가는 사람들이나 불법으로 수입되는 동물과 함께 모기가 이전에는 없던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어느 나라 공항에서든 모기 한 마리쯤은 보안검색 없이 탑승 가능하다.

■ 병원체 역지사지

원래 인수공통감염병(zoonosis)은 단순히 인간과 동물이 모두 걸릴 수 있는 질병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사실 인간이 동물에게 옮기는 질병에 대해 관심을 가진 학자들은 드물다. 그래서 이런 경우를 특별히 구분해서 역인수공통감염병(reverse zoonosis, anthropozoonosis)이라고 부른다. 2014년 한 리뷰 논문에 따르면 1990년대 이후 고작 56편의 논문에서만 인간이 동물에게 병원체를 전파한 사례를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 논문들에서 다루고 있는 병원체와 감염 동물을 살펴보면 재미있는 흐름이 관찰된다. 바로 동물원과 국립공원에서의 감염이다. 해마다 전 세계 약 1300개의 동물원과 수족관을 방문하는 관람객은 7억명에 달한다. 이 밖에도 수없이 많은 동물체험 시설, 동물을 이용한 엔터테인먼트 시설이 존재한다. 그리고 관람객들 말고도 이곳에는 많은 관련 산업 종사자들이 드나든다. 가장 가깝게는 수의사나 사육사 그리고 청소 인력들, 사료나 물품 공급원들, 자원봉사자들을 들 수 있겠다. 병원체에는 그야말로 잘 차려진 밥상이다.

동물을 만져볼 수 있는 체험동물원(petting zoo)에는 야생동물보다는 주로 염소나 양, 당나귀, 돼지, 사슴, 오리 같은 가축종들이 있다. 캐나다의 한 연구 결과를 보면 이곳에서 관람객들이 제일 많이 하는 행위는 손으로 직접 먹이를 주거나 어린아이들에게 동물을 만져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종종 자신이 먹던 음식이나 음료를 들고 동물에게 다가가기도 한다. 이런 행위가 일반 동물원이나 수족관, 자연 상태를 보전하고 있다는 아프리카나 아시아 지역 국립공원에서도 벌어진다. 인간과 가까운 친척인 유인원들에게는 좀 더 심각한 문제이다. 왜냐하면 이들의 수는 매우 적어 이미 멸종위기에 처해 있는 데다 인간과 공유할 수 있는 병원체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인간사회에는 가축의 질병에 대해 예방하고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존재하지만 야생의 환경에는 없다. 게다가 인간의 개입 자체가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 위험한 국립공원

탄자니아의 마할레 마운틴 국립공원(Mahale Mountains National Park)에는 서부 탄자니아에서 가장 큰 긴털침팬지 군집이 있다. 이들을 보기 위한 관광이 1985년부터 시작되었다. 거의 1~2m까지 가까이 가서 침팬지를 볼 수 있고, 어떤 경우에는 직접적인 접촉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2003년부터 이 국립공원에서 살고 있는 침팬지들에게 급성호흡기 질병이 돌기 시작했다. 인간의 홍역이나 독감 같은 증상을 보였는데, 그 원인체를 알 수가 없었다. 치사율이 33.8~98.2%에 이르렀다. 특히 어린 개체들이 피해를 입었다. 검사 결과 이들의 분변에서 인간 유래 메타뉴모 바이러스가 검출되었다. 이 바이러스는 사람에게 일반적인 병원체로, 우리나라에서도 봄철 호흡기 감염증 환자에게서 빈번하게 검출된다. 감염환자는 주로 고열과 콧물, 기침을 동반한 호흡기 증상을 보인다. 관광객들로부터 바이러스가 감염되었다고 의심하는 건 너무 가혹할까?

르완다에서도 1988년 마운틴 고릴라가 홍역의 특징적인 증상을 보였다. 27마리 이상이 감염되었고 6마리가 죽었다. 이전에는 이 그룹의 고릴라에게 없던 질병이었다. 고릴라를 모니터링하던 수의사들이 개입해 백신을 주사해야만 했다. 너무 많은 손실로 고릴라 그룹이 전멸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이곳에서도 탄자니아와 유사한 관광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이 바이러스가 사람 말고 다른 종에서 왔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1996년 탄자니아 곰베 국립공원에서는 11마리의 침팬지가 독감으로 죽었다. 질병 조사를 맡았던 과학자들은 독감에 걸린 공원 직원에 의해 감염된 것으로 추측했다. 그는 공원의 침팬지에게 매일 손으로 먹이를 건네주곤 했다. 이 공원에서는 한때 사람에게서 왔을 것으로 추측되는 폴리오 바이러스로 인해 침팬지들이 죽거나 소아마비 증세를 보이기도 했다.

홍역, 독감, 메타뉴모 바이러스 감염 이외에도 결핵균, 대장균, 로타 바이러스, 아데노 바이러스, 편모충, 헤르페스 바이러스 등이 인간에게서 야생 또는 동물원 동물에게 전파된 사례가 보고된 바 있다.

■ 여행의 낭만과 병원체

힌두교의 하누만(hanuman)은 원숭이 얼굴을 한 신으로, 종교적 서사시인 ‘라마야나’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비슈누의 현신인 라마 왕자의 충실한 부하로, 지혜와 용맹과 정의를 상징하여 많은 사랑을 받는 신이다. 자비와 희생을 상징하는 불교에 원숭이 역시 친숙한 존재이다. 게다가 불교나 힌두교에서 동물을 대하는 시선은 타 종교에 비해 따뜻한 편이다. 그러다 보니 원숭이가 살고 있는 서남아시아와 남태평양의 섬의 사원들에는 원숭이가 사람과 함께 살아간다. 발리섬에만 40개가 넘는 원숭이 사원이 있고, 태국이나 네팔의 유명한 원숭이 사원은 관광객의 필수 코스다. 원숭이 사원에는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이 항상 넘쳐난다. 원숭이들은 관광객이 주는 먹이를 받아먹고, (때로는 관광객이 들고 있는 음식을 가로채고), 이들 머리나 어깨 위에 오르기도 하며, 때로는 물기도 한다. 이색적이고 신기한 경험은 새롭고 위험한 병원체의 만남이 될 수도 있다.

여행이 위험하니 집 안에 머무르면 어떤 동물에게도 병원체를 옮기지 않을 수 있을까? 2009년부터 2010년까지 전 세계에 유행했던 신종플루 바이러스(H1N1)는 가정의 반려동물에게도 감염되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대규모의 유행이 있은 후 미국에서는 반려동물인 페렛과 고양이에서 유행해 10마리가 폐사했다. 감염된 고양이로부터 다른 고양이로의 전파도 증명된 바 있다. 사람이 반려동물에게 헬리코박터균은 물론 항생제 내성균까지 옮겨준다는 의심도 정당하다.

■ 버리는 것은 쓰레기만이 아니다

이 칼럼에서 지속적으로 언급해 왔듯 인구가 증가하고 이들이 영역을 확장해 나감에 따라 이전에는 없었던 방식으로 인간과 가축이 야생동물과 접촉할 수 있는 경계면이 넓어졌다. 반면 인간의 활동으로 야생동물의 영역이 좁아지면서 이전에 비해 지역 내 야생동물들 간의 접촉도 증가했다. 이전에 비해 질병 전파의 위험이 높아진다는 것을 뜻한다. 이렇게 새로운 지역으로 (인간 입장에서는) 진출해 나가는 과정에서 이들이 그 지역에 낯선 병원체를 옮겨가는 것을 병원체 오염(pathogen pollution)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광견병과 개 디스템퍼 같은 질병이 사자나 하이에나, 아프리카 들개에게 전염될 수도 있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멸종위기종인 아프리카 들개는 한때 30만마리에 가까운 개체수를 유지했다. 그런데 이제는 3000~5500마리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이들이 멸종위기에 처한 것이 병원체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질병의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다. 이전에는 야생의 동물군에서 보고되지 않았던 인간사회의 질병들이 사람들과 함께 야생동물군을 잠식해 가고 있다.

인간사회의 위생 수준이 높아지고 항생제와 백신 기술이 발전하면서 20세기 말 자신감에 찬 학자들은 가까운 미래에 감염병이 사라질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새로운 감염병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이미 해결책을 찾았다고 생각하던 옛 질병들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인간들은 다시 호들갑스럽게 인간과 동물 그리고 환경의 접점에서 신종 감염병 대유행의 참사를 막아야 한다며 보건 전략을 재편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병원체 입장에서 보면 이런 감염병의 양상은 매우 자연스럽다. 병원체에게 숙주가 될 수 있는 존재는 그게 어떤 종이든 크게 의미가 없다. 증식할 만큼 좀 더 오래 머무를 수 있으며, 개체수가 많고, 집단생활을 하며, 넓은 범위를 이동하고, 다양한 동물과 접촉해서 병원체에게 새로운 기회를 줄 수 있는 것이 가장 좋은 조건을 갖춘 숙주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조건을 완벽하게 만족하는 종이 지구상에 하나 있다. 호모 사피엔스라고 하던가.

<시리즈 끝>

▶필자 천명선
인간·동물 관계와 동물 질병의 사회문화적 분석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서울대 수의과대학을 졸업한 수의사로, 뮌헨 루트비히 막시밀리앙 대학에서 수의역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에서 수의역사학, 수의윤리학 등을 강의하고 있다.

<천명선 |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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