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형, 나라 망하겠어" 박종철 사건 진상을 폭로한 한 마디

김경준 입력 2018.01.22. 20:02 수정 2018.01.22.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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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영화 <1987> 실제 주인공 이부영 전 의원이 밝힌 비화

[오마이뉴스 글:김경준, 편집:최유진]

영화 <1987> 등장인물 중 한 명인 이부영 전 의원이 지난 21일, 시민들과 만난 자리에서 영화에 얽힌 비화들을 공개했다. 영화 <1987>에서 배우 김의성이 분한 이부영은 <동아일보> 출신 해직기자로 1987년 당시 민주화 운동으로 투옥되어 영등포교도소에 수감 중인 민주투사로 등장한다.

몽양 여운형 선생에 대해 공부하는 시민단체 '몽양역사아카데미(회장 유준)'의 주최로 마련된 이날 간담회는 광화문 이 전 의원의 사무실에서 열렸다. 아카데미 회원들은 이 전 의원과 만나기에 앞서 종로의 한 극장에서 <1987>을 단체 관람하기도 했다.

 자신의 사무실을 찾은 몽양역사아카데미 회원들과 악수를 나누는 이부영 전 의원
ⓒ 김경준
간담회가 시작되자 이 전 의원은 "방금 여기 들어온 어린 친구들에게 '영화 어떻게 봤니?'하고 물어봤더니 '너무 무서웠다'고 하더라"며 "1987년은 그런 시대였다"고 엄혹했던 1980년대 시대상황에 대해 담담한 목소리로 회고하기 시작했다.

이 전 의원은 1980년대 당시 민중민주운동협의회 공동대표,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상임위원장·사무처장 등을 역임하며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다. 그로 인해 전두환 정권 내내 전국의 교도소란 교도소는 다 옮겨 다니며 오랜 세월 수감생활을 했다. 자연스레 전두환 정권의 야만성과 폭력성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1980년 겨울 대구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던 당시 재소자 순화교육의 일환으로 삼청교육대에서 실시했던 PT체조, 목봉체조 등을 모두 받아야 했다"며 수감생활 중 자신이 겪었던 에피소드들도 가감 없이 털어놨다. 그가 겪은 단편적인 일화들을 통해 전두환 정권의 민낯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해 겨울의 일이었다. 훈련 도중 조교가 눈 더미 굴을 파헤치며 들어가라고 지시했다. 뒤에서 몽둥이로 사정없이 내려치는 바람에 다들 손가락으로 파헤쳐가며 들어가기에 바쁜데 한 청년이 못 견디고 일어나 저항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조교가 그 청년을 발가벗긴 채 지휘봉으로 생식기를 마구 난타했다. 생식기에서 피를 흘린 채 눈 바닥을 지렁이처럼 꿈틀꿈틀 기어다니던 것을 보면서 나 역시 감히 반항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 전 의원은 "영화에도 나왔지만 전두환 정권이 내세운 구호가 '정의사회구현'과 '폭력으로부터의 해방'이었다"며 "너무나도 모순적인 당국의 행태에 정신분열이 올 지경이었다"고 씁쓸한 기억을 더듬었다.

쪽지 전달한 교도관 역시 한 명 아닌 두 명

 영화 <1987> 스틸컷 중 이부영 역할을 맡은 배우 김의성
ⓒ CJ엔터테인먼트
<1987> 속 이부영은 영등포교도소 보안계장 안유(최광일 분)로부터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범이 조작됐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교도관 한병용(유해진 분)을 통해 세상에 진실을 폭로한다. 실제 역사는 어땠을까? 

이 전 의원은 대부분 사실과 일치한다고 했다. 다만 다소 소극적으로 협력했던 영화 속 캐릭터와 달리 실제 안 계장은 세 명의 고문 경찰이 더 존재한다는 사실을 듣자마자 곧장 이 전 의원에게 달려와 "형, 이거 나라 망하겠어"라며 보고 들은 사실을 그대로 전해주었다고 한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이 전 의원 역시 "당신과 나는 면담을 한 일이 없다"며 면담일지를 찢어버리도록 지시하고 곧바로 쪽지를 통해 세상에 진실을 폭로했다.

당시 쪽지를 전달한 교도관 역시 한 명이 아닌 두 명이었다. 바로 한재동 교도관과 전병용 교도관이었다. (영화에서는 두 명의 이름을 합친 한병용으로 등장한다) 서울구치소 시절부터 이 전 의원과 알고 지낸 안 계장은 자신이 보고 들은 사실을 들려주었고, 이에 이 전 의원이 한씨에게서 펜과 종이를 얻어다 쪽지를 작성, 다시 전씨를 통해 김정남에게 전달했던 것이다. 

쪽지를 전달하고 바로 이틀 뒤, 전씨 역시 경찰에 체포됐다. 이 전 의원은 "만약 쪽지를 소지한 채로 전씨가 경찰에 체포됐다면 박종철 사건의 진상은 묻히고 말았을 것"이라며 아슬아슬했던 당시 상황을 회고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서울대 정치학과 61학번 동기들의 엇갈린 운명

이 전 의원은 또 "영화에서조차 말하지 못한 내막들이 존재한다"며 본격적으로 <1987>에 얽힌 비화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먼저 그는 영화에도 등장하는 최환 공안부장(하정우 분)과 김정남(설경구 분)과의 기묘하게 얽힌 인연에 대해 언급했다. 실제로 이 전 의원과 그 두 명은 서울대 정치학과 61학번 동기였다는 것. 

최 부장에 대해 얘기할 때 이 전 의원의 표정은 다소 씁쓸해보였다. 최 부장 역시 시국사범들을 대거 잡아넣은 공안검사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전 의원에게 영장을 청구한 것도 친구였던 최 부장이었다. 이 전 의원은 "그 시절 많은 사람들이 시위로 별을 달았는데 그 친구는 별을 달아주는 역할을 했던 것"이라며 가벼운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 전 의원은 최 부장의 공로에 대해서는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만약 그가 아니었더라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은 영원히 묻혔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전 의원은 "그 친구 역시 나름대로 소신을 갖고 검사의 직분에 최선을 다한 것"이라며 "그 한 번의 공로가 역사에 기여한 바가 컸다"고 강조했다.

"자신의 사비를 털어 죄수들에게 약 사 먹여"

 이부영 전 의원과의 간담회에 참석한 몽양역사아카데미 회원들
ⓒ 김경준
이 전 의원은 특히 안유 계장에 대해서도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이 전 의원이 회고하는 안 계장은 교도소에 수감 중인 시국사범들에게 자신의 사비를 털어 약을 사 먹이는 사람이었다. 투옥 중인 이 전 의원에게 박종철 사건의 진상을 비롯해 각종 시국사건에 대한 소식을 전해준 것도 모두 안 계장이었다. 이 전 의원은 "안유는 나를 형으로 불렀다"며 그와의 끈끈한 인연을 고백했다.

하루는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한다. 시국사건으로 수감된 학생들이 밤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옥사 문을 발로 걷어차는 등 시위를 했는데 안 계장이 이 전 의원을 찾아가 "학생들 좀 달래달라"며 호소했다는 것. 차마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학생들을 달래러 갔던 이 전 의원은 학생들로부터 '변절자'라는 욕을 먹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이때 학생들을 달래는 조건으로 내세운 것이 바로 금서로 지정된 사회과학서적들을 반입해주는 것이었다. 서슬 퍼런 공안 정국에서 당국이 금서로 지정한 책을 교도소로 반입한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이 전 의원은 금서 반입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안유의 묵인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고마움을 표했다.

이외에도 영화 속에서 박처원 대공처장(김윤석 분)의 협박에 못 이겨 죄를 스스로 뒤집어쓰는 것으로 묘사된 조한경 경위(박희순 분) 역시 실제로는 협박과 회유에 굴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의원의 기억에 따르면 당시 박 처장이 조 경위를 회유하기 위한 목적으로 1억 원이 든 통장을 들고 찾아오자 "자식들에게 무고한 사람을 고문해서 죽인 아버지로 기억되고 싶지 않다"며 단칼에 거절했다고 한다.

1987년 시민의 요구 배반한 양·김, 반드시 단죄해야

 영화 <1987>에 얽힌 비화들을 소개하는 이부영 전 의원
ⓒ 김경준
그렇다면 이 전 의원은 영화 <1987>을 어떻게 봤을까. 그는 "언론이 제 구실을 못하는 상황에서 영화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을 깨우친 사례로 남을 것"이라며 "(영화가) 특히 박근혜 정권 아래서 만들어졌다는 게 더 놀라운 일"이라고 그 의의를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고 했다. 1987년 당시 시민들의 염원이 어떻게 좌절되었는지 그 이후의 시대적 상황까지는 영화가 그려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거국적인 시민항쟁으로 마침내 6.29 선언을 이끌어냈지만 시민들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양 김(김영삼·김대중)이 분열한 것이다. 양 김의 분열은 신군부 쿠데타의 주역인 노태우의 대통령 당선으로 이어졌다.

그는 양 김의 분열을 1949년 이승만 정권의 반민특위 해산과 1961년 박정희의 5.16 군사쿠데타와 비견되는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민중의 요구를 배반했기 때문이다. "역사적 책임엔 시효가 없다"며 반드시 단죄해야 한다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선 단호함이 묻어나왔다.

앞서 지난 14일 남양주 모란공원 민주열사 묘역 앞에서 열린 박종철 열사 31주기 추도식에 참석했던 이 전 의원은 양 김의 분열에 대해 역사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취지의 추도사를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언론에서 아무도 받아써주는 곳이 없다고 토로했다.

"우리가 5.16을 단죄하지 못해 그 딸인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지 않았나. 양김의 분열은 빗발치던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배반한 행위였다. 시간이 흘렀어도 반드시 단죄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그 뒤를 이은 이들이 여전히 힘을 갖고 있으니 책임을 묻지도 못한 채 시간만 흐르고 있다."

30년 전의 실패로 유예된 적폐청산, 지금 이행해야

화제는 자연스레 작년 촛불집회로 이어졌다. 이 전 의원 역시 촛불집회 당시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광장에 나갔다고 한다. 그는 "1987년 당시만 해도 시위자들을 마구잡이로 때려잡을 정도로 야만적이었던 나라가 사상자 한 명 내지 않은 채 평화로운 집회를 이끈 나라로 변했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라며 "우리 스스로 자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촛불혁명으로 부패한 권력을 몰아내고 민주정부를 세웠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야당을 위시한 보수세력들이 사사건건 발목을 붙잡고 있는 바람에 정부의 적폐청산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6월 항쟁 이후 양김의 분열이 그랬듯, 시민들의 요구를 정치권에서 외면하는 모양새다. 이 전 의원 역시 답답한 목소리로 말했다.

"촛불혁명으로 문재인 정권이 들어섰지만 여전히 국회가 불안한 상황이다. 적폐청산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국회를 비롯한 정치권에서 제대로 뒷받침을 해줘야 한다. 그러니 올해 있을 6.13 지방선거의 승리가 중요하다. 반드시 민주세력의 다수 집권을 쟁취해야만 한다." 

간담회를 마무리하며 이 전 의원은 "우리는 지금 30년 전의 실패로 인해 유예된 적폐청산을 이제야 이행하는 중"이라며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아직 많이 남아있음을 강조했다. 오랜 세월 민주화운동에 앞장서며 수많은 성공과 좌절을 맛본 노(老) 투사의 눈빛은 쓸쓸했다.

 영화 <1987> 단체관람 직후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몽양역사아카데미 회원들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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