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선 '까칠남녀' 하차는 '혐오의 블랙리스트'"

노지민 기자 입력 2018. 1. 22.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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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여성·언론단체, 일산 EBS 사옥 앞에서 ‘은하선 하차 철회’ 촉구 기자회견

[미디어오늘 노지민 기자]

40여 개 성소수자·여성·언론·교육 단체들이 작가 은하선씨의 EBS ‘까칠남녀’ 복귀를 촉구했다.

22일 오전 경기도 일산 EBS 사옥 앞에 모인 이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EBS의 은하선씨 하차 결정이 성소수자혐오에 굴복한 것이라며 ‘하차 철회’를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개혁시민연대 등이 공동 주최했다.

▲ 40여 개 시민사회단체들이 22일 경기도 일산 EBS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EBS 측에 '까칠남녀' 출연자 은하선씨 하차 결정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40여 개 시민사회단체들이 22일 경기도 일산 EBS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EBS 측에 '까칠남녀' 출연자 은하선씨 하차 결정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나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집행위원장은 “은하선 작가는 자신의 섹슈얼리티(sexuality)를 드러냈고 성(性)에 대한 이야기가 일상의 삶·편견과 연관돼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은씨 하차는) 성소수자, 바이섹슈얼이자, 성적 욕망에 솔직한 여성을 하차시키려는 마녀사냥에 부응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연지현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QUV(큐브) 부의장도 “(사회적) 성적 규범으로부터 벗어난 존재가 등장한 것을 보며 우리 존재가 가시화된 것 같아 설��다. 양성애자라고, 또 동성 파트너와 살고 있다고 밝힌 은씨 자체가 소중했다”며 “온갖 악의적 시선 속에서도 속 시원하게 말해준 사람에게 상을 주진 못할망정 하차 통보라니 어이가 없다”고 비판했다.

▲ EBS 일산 사옥에 걸려 있는 '까칠남녀' 현수막.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EBS ‘까칠남녀’ 측은 지난 13일 고정 출연자인 은하선씨에게 하차 결정을 통보했다. 은씨 하차를 일선 제작진이 아닌 담당 CP가 결정한 것으로 알려져 제작 자율성 침해 논란이 제기된 가운데 EBS 측이 17일 발표한 공식 입장도 이런 논란을 잠재우지 못했다.

EBS 측은 은씨에 대한 민원 두 건이 사실로 드러나 류재호 CP가 은씨 하차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자신의 SNS에 퀴어문화축제 후원 번호를 제작진 번호인 것처럼 올렸던 일과 과거 십자가 모양 딜도(자위 기구) 사진을 공유한 일 등을 문제 삼은 것이다.

은씨는 자신에 대한 하차 결정이 성소수자 혐오 단체들의 항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최근 성소수자 특집 방송 이후 보수 성향 기독교·학부모 단체들이 ‘까칠남녀’ 폐지와 본인 하차를 요구했고 EBS 측이 말하는 ‘민원’도 이러한 시위의 연장선에 있다는 것이다.

▲ 보수 성향 기독교·학부모 단체들이 22일 EBS 일산 사옥 앞에서 '까칠남녀' 측을 규탄하는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 이경자 상임대표가 까칠남녀 출연진과 EBS를 규탄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 등은 이날도 EBS 앞에서 ‘까칠남녀’ 규탄 시위를 벌이며 ‘까칠남녀가 동성애를 옹호한다’ ‘동성애가 나라를 망친다’ 등의 주장을 펼쳤다.

이들 중 일부는 은씨 복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 장소를 찾아 주최 측과 언쟁을 벌였다. 경찰 제지로 자리를 떠난 뒤에는 승용차를 타고 돌아와 기자회견 현장을 촬영하려는 모습이 포착됐다.

연지현 큐브 부의장은 “퀴어문화축제 후원 번호 게시가 잘못이더라도 그 번호로 의도와 다르게 후원한 사람들은 제작진에게 ‘전화 테러’를 하려던 사람이라는 점을 짚어야 한다”며 “책임감 있는 언론이라면 그런 환경으로부터 은씨를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차별·혐오라는 블랙리스트는 언론은 강고히 지배해왔다. 이를 최초로 돌파한 ‘까칠남녀’를 통해 페미니스트와 성소수자도 시민권을 얻었다”며 “(은씨 하차의) 본질은 성소수자 배제라는 구시대적 ‘방송 블랙리스트’”라고 비판했다.

김동찬 사무처장은 “출연자를 보호하지 못한 제작진을 옹호하고 싶지 않지만 일선 제작진 의사는 EBS 공식 입장과 다른 걸로 알고 있다. 명백한 제작 자율성 침해”라며 “EBS가 어떤 논의 과정을 거쳐 은씨 하차를 결정했는지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혜란 한국여성민우회 공동대표는 “EBS는 공영방송이기에 가치 지향적이어야 하고 더 나은 민주사회를 위한 콘텐츠를 담아야 한다”며 누군가의 압력이나 필요에 의해, 보수적 가치를 유지·존속하기 위해 존재하는 방송사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 40여 개 시민사회단체들이 22일 경기도 일산 EBS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EBS 측에 '까칠남녀' 출연자 은하선씨 하차 결정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40여 개 시민사회단체들이 22일 경기도 일산 EBS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EBS 측에 '까칠남녀' 출연자 은하선씨 하차 결정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교육단체들은 은씨 하차 결정이 교육 현장에 미칠 영향을 우려했다. 소수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뒤 불이익을 받는 모습이 비춰짐으로써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움츠러들 수 있다는 것이다.

초등성평등연구회 소속의 한 교사는 “교실에선 동성애 존재에 대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는다”며 “성소수자 탄압을 보이는 언론 환경에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성애 전교조 여성위원장은 “EBS는 소수자 목소리가 전해진 뒤 이어진 혐오 세력 공격에 허망하게 무릎을 꿇었다”고 비판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단체들은 은씨 하차 철회를 촉구하는 민원을 EBS 측에 전달했다. 정슬아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사무국장은 “은하선 작가 하차 이유가 민원 제출이라고 했으니 우리도 민원을 제출하겠다”며 민원 제출 이유를 설명했다.

내달 19일 종영을 앞둔 ‘까칠남녀’는 은씨 하차에 반발한 출연자들의 보이콧으로 인해 마지막 2회분 녹화를 하지 못하고 있다.

▲ 시민사회단체들은 22일 EBS 측에 '까칠남녀' 출연자 은하선씨 복귀를 촉구하는 민원을 전달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시민사회단체들은 22일 EBS 측에 '까칠남녀' 출연자 은하선씨 복귀를 촉구하는 민원을 전달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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