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들 손은 無人주문기에 닿지 않았다

최원우 기자 2018. 1. 22.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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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오르며 설치매장 느는데.. 장애인 배려 기능은 없어]
메뉴판 위치 높고 음성인식 안돼
휠체어 앉아선 주문 힘들어 눈치 보여 직원 있는 매장 찾아
기능 추가 땐 비용.. 업자들 난색
정부 "장애인 배려 규정 논의할 것"

12일 서울 강남역 인근 한 패스트푸드점. 하체 마비로 휠체어를 탄 A(47)씨가 매점 안으로 들어갔다가 빈손으로 나왔다. 무인(無人) 주문기가 설치된 매점이었기 때문이다. A씨는 "무인 주문기를 몇 차례 이용해 봤는데, 불편하고 눈치가 보여 조금 멀더라도 직원이 주문받는 매점을 찾는다"며 "요즘 무인 주문기가 늘어나 소외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메뉴판 위쪽은 안 닿아

"손이 안 닿아요" - 지난 12일 서울 강남역 인근의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본지 김유정 인턴기자가 휠체어에 앉아 무인 주문기를 사용하고 있다. 무인 주문기가 비장애인 기준으로 설계돼 휠체어에 앉아서 손을 뻗어도 화면에 쉽게 닿지 않았다. /김지호 기자

최근 음식점·영화관·주유소 등 곳곳에서 무인 기계를 도입하는 매장이 늘고 있다. 특히 최저임금이 대폭 오르면서 무인 기계를 도입하는 경우가 늘었다. 하지만 대부분 무인 주문기가 장애인을 고려하지 않아 장애인들이 느끼는 불편이 커지고 있다. 전국 장애인 250만여명 중 무인 기계 이용이 제한되는 중증 지체 장애, 뇌 병변, 시각 장애인 등이 약 50만명이다.

본지 인턴기자가 휠체어를 타고 패스트푸드점 무인 주문기를 사용해 보았다. 우선 휠체어에 부착된 발판이 기계 하단부에 닿아 가까이 다가가는 것부터 힘들었다. 휠체어를 최대한 가까이 대고 메뉴를 주문하는 터치 스크린에 손을 대려 했다. 그러나 아무리 손을 뻗어도 메뉴판 위쪽 절반은 손이 닿지 않았다. 엉덩이를 들썩이며 메뉴를 터치하려다 실수로 다른 메뉴를 선택하고 말았다.

주문을 취소하려 했지만 '주문을 취소하시겠습니까'라고 묻는 화면이 너무 높은 곳에 있어 그마저 터치가 어려웠다. 그러는 사이 순식간에 뒤로 줄이 길어졌다. 인턴기자는 "눈치가 보여 아래쪽 메뉴 중 하나를 급하게 골라 주문하고 도망치듯 빠져나왔다"며 "잠깐 사이 장애인들이 느꼈을 어려움을 짐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전국에 1300여개 매점을 둔 롯데리아는 무인 주문기를 2014년 두 곳에서 2015년 78곳, 2016년 349곳, 2017년 640곳으로 확대 도입했다. 맥도날드는 전국 440여개 매장 중 220곳에서, 버거킹은 310여개 매장 중 100여곳에서 무인 기계를 운영하고 있다. 패스트푸드점뿐 아니라 셀프 주유소, 영화관, 커피점 등에서도 무인 기계가 설치되고 있다. 최근 무인 기계를 도입한 식당 주인 류모씨는 "한 대에 300만원 정도인 무인 기계를 도입하면 아르바이트생 두 명을 덜 쓸 수 있다"고 말했다.

◇"장애인 배려 기능 넣어야"

실제로 최저임금 인상을 계기로 무인 기계를 도입하겠다는 영세업자들이 많다. 구인·구직 전문 포털 알바천국이 최근 전국 자영업자, 중소업체 고용주 138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10.9%가 "현재 아르바이트생 대신 무인 기계를 사용하고 있다"고 했고, 30.4%는 "앞으로 무인 기계를 사용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문제는 대부분 무인 기계가 장애인 배려 기능이 없다는 점이다. 휠체어를 탄 상태에선 손을 뻗어 이용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 것이다. 전신 마비나 척수 장애 등으로 팔을 들어 올리는 동작 자체가 제한되는 장애인은 특히 어렵다.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선 그나마 장애인 도움 기능을 이용하면 메뉴 창이 스크린 하단부에만 뜨게 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하지만 이곳 역시 카드 결제기는 앉은 키보다 높은 곳에 있어 여전히 이용하기 불편했다. 시각 장애인은 이용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시각장애인연합회 관계자는 "누르는 버튼이라도 있다면 위치를 외워 사용할 수 있지만 터치 방식은 튀어나온 부분이 없기 때문에 아예 감을 잡을 수 없다"고 했다.

무인 기계 판매업체 관계자는 "장애인 배려 기능을 추가 설치하려면 틀을 완전히 새로 제작해 음성 인식 서비스나 모니터 높낮이 조절 장치 등을 추가해야 한다"며 "그러면 단가가 높아져 구매자들이 외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현재로선 무인 기계를 만들 때 장애인을 고려해야 한다는 규정이 전혀 없다.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개선책을 논의해 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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