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포커스-서승원] 일본의 핵무장 가능한가

2018. 1. 21.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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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핵무기를 증강하고 한국도 핵무기를 보유한다면 일본 역시 핵무장을 할 수밖에 없다.” 유엔 고위직을 지낸 일본의 전직 외교관이 수년 전 핵군축회의에서 한 발언이다. 이른바 핵도미노 이론을 말한다. 그 배경엔 미국 핵우산에 대한 떨쳐버릴 수 없는 의문이 존재한다. “나는 여전히 ‘일본은 핵무장을 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이것이 이성이다. ‘일본이 핵무장을 할 가능성은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솔직한 대답은 ‘그 점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가 될 것이다.” 일본 자위대에서 장군을 지낸 바 있는 방위대 교수의 말이다.

북핵을 계기로 핵무장 논의도 가열되고 있다. 특히 미국발 핵무장론이 눈에 거슬린다. 동맹국의 핵무장을 막고 미국의 핵우산을 제공하는 현 상태가 바람직하다는 입장이 대세이나 일본, 한국, 대만 핵보유 카드로 중국을 견제하자는 주장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비롯한 트럼프 정부의 고위급 인사들은 북핵이 핵도미노 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면서 중국, 러시아의 보다 적극적인 대북 압박을 촉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당사국 일본에선 어떠한가? 일본의 겐론(言論)NPO와 미 매릴랜드대가 작년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일본의 핵무장에 찬성하는 일본인 응답자는 전년의 9%(반대 74.7%)에서 12.3%(반대 68.7%)로 증가했다고 전해진다. 돌이켜보면 과거에도 핵무장론은 있었다. 1965년 사토 에이사쿠 수상은 미국 닉슨 대통령에게 중국이 핵무장하면 일본도 핵무장을 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1970년대 말에는 소련이 극동지역에 중거리 탄도미사일 SS-20과 백파이어 전폭기를 배치하자 또다시 핵무장론이 부상했었다.

극히 소수에 불과하지만 최근 일본의 핵무장론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미국에 의존하지 않는 자주국방 차원의 핵무장론이다. 이는 진보세력뿐 아니라 보수세력 가운데 일부가 옹호하며 그 근간에는 반미 감정이 자리한다. 핵무장 중립론이라 하겠다. 다른 하나는 군사론, 전쟁론 차원의 핵무장론인데 네 가지 형태가 제시된다. 첫째, 영국형으로 미국 핵억지력과 결합하는 방식의 최소한의 핵억지력 보유다. 이 경우 핵순항미사일을 탑재한 잠수함 보유가 관건이 된다. 둘째, 냉전기 서독형 핵무장으로 지역한정핵전쟁 논리에 입각해 미국 전술핵무기를 다시 도입하는 방식이다. 퍼싱Ⅱ와 같은 중거리탄도미사일(INF)을 구입해 일본 열도 곳곳에 배치하자는 말이다. 셋째는 핵무기를 언제라도 만들 수 있는 체제를 갖추는 방식이다. 2002년 스웨덴의 핵무장 ‘준비 완료’ 선언과 비슷한 방식이다. 넷째는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이나 전략폭격기 등 적지선제공격능력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논의들은 최근 일본이 중국, 러시아는 물론 북핵에 의해서도 포위되고 있다는 위기의식을 반영한다. 예를 들어 핵무장론의 대표격인 나카가와 야쓰히로 교수는 북한에 대해서는 핵토마호크 미사일,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서는 한정핵전쟁 이론에 입각한 대응, 즉 미국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일본에 도입하는 INF의 결합을 통한 핵억지력의 신뢰성 제고를 주장한다. 영국형과 서독형, 그리고 적지선제공격능력의 조합이다.

핵보복 능력을 갖추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의 선제 핵사용(히로시마·나가사키)을 허용했다, 핵무장을 하면 중국의 대일 군사행동도 신중해질 것이다, 일본에 INF를 배치하면 핵억지력이 비약적으로 증대될 것이다, 일본이 자주적 핵억지력을 갖지 않는 한 북·중·러를 상대로 집단적 자위권을 발동할 수 없다. 핵무장 효과로 거론되는 내용들이다.

요즘 국내에도 이 같은 핵무장론이 무성하다. 핵무장 찬반 이전에 핵도미노가 실현된 이후의 동북아, 그리고 비핵화가 달성된 이후의 한반도를 가늠해보는 일이 선행돼야 할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전자는 핵군비 경쟁이 극단으로 치닫던 냉전기 유럽을 연상케 한다.

서승원 (고려대 교수·글로벌일본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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