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링요정'의 예언 "이번에 우리 승산 있어요!"

곽우신,남소연 입력 2018. 1. 21. 11:53 수정 2018. 1. 23.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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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인을 만나다③] 평창동계올림픽 SBS 컬링해설위원으로 변신한 이슬비 전 국가대표 선수

[오마이뉴스 글:곽우신, 사진:남소연]

1988 서울 하계올림픽 이후 30년 만에 한국에서 열리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 이제 한 달도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동계스포츠는 대부분 비인기종목으로 그동안 음지에 가려져 있던 분야였습니다. 평창을 앞두고 동계스포츠 현장에서 내일의 희망을 키워가는 지도자, 관계자 등을 만났습니다. - 기자 말
 어떤 상황에서도 팀원들을 다독이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4년 전의 이 사람을 많은 이가 기억한다. '컬링요정' 2014 소치동계올림픽 당시 컬링 국가대표팀에게 붙여진 별명이다. 평창동계올림픽 SBS 컬링해설위원으로 변신한 이슬비 전 국가대표 선수를 만났다.
ⓒ 남소연
'컬스데이', '컬링요정'

2014 소치동계올림픽 당시 컬링 국가대표팀에게 붙여진 별명이었다. 길 가는 사람 붙잡고 '컬링'이 뭔지 물어보면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었을 그 때. 컬링 국가대표팀은 '빙판 위의 체스'라고 불리는 컬링이 얼마나 흥미롭고 재미있는 스포츠인지를 국내에 널리 알렸다. 지금도 여전히 비인기종목이라는 딱지를 떼기 어렵지만, 그래도 4년 전과 비교하면 정말 격세지감이다.

덕분에 이번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도 컬링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기대를 받고 있다. 객관적으로 상황이 좋다고는 말 할 수 없다. 동계 스포츠 강국들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민망할 정도의 인프라부터 지난해부터 계속 터져나온 잡음까지…. 결과적으로 이번 올림픽에서 홈그라운드의 이점도 노릴 수 없게 됐다. (관련 기사: 열악한 얼음판 위에서도 '웃음꽃' 피는가)

하지만 선수들은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 국제대회에서 세계최강이라 불리는 팀들을 이긴 적도 있다. 그냥 허무하게 이번 스톤을 원 밖으로 밀어내지는 않을 것이다.

"언니! 괜찮아요!"

어떤 상황에서도 서로를 다독이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4년 전의 그 사람을 많은 이가 기억한다. 컬링이라는 종목의 인지도를 견인한 주역 중 한 명, 당시 국가대표팀의 일원이었던 이슬비. 이제 스톤 대신 마이크를 들었다. SBS 평창동계올림픽 컬링 해설위원으로 발탁, 이제 국민들에게 컬링에 대해 널리 알릴 두 번째 라운드에 들어섰다. 지난 11일, 서울 태릉선수촌 실내빙상장에서 이슬비 위원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이른 은퇴, 새로운 도전
▲ '컬링요정' 이슬비  2014 소치동계올림픽 당시 '컬링요정'으로 불리운 이슬비 전 국가대표 선수
ⓒ 연합뉴스
"정말 감사했죠. 제가 잘했다기 보다는, 저희 언니들과 함께 한 거고…. 사실 저도 어느 정도 혜택받은 세대거든요. 저보다 앞선 언니들은 진짜 고생 많이 했어요. 사실 소치 때는 개인 핸드폰을 쓸 수가 없어서 그렇게까지 화제가 되는 줄 몰랐어요. 나중에 찾아보고 '컬스데이'라고 불러주신 걸 보고…. (웃음) 정말 고마웠죠. 사실 좋았어요. 제가 언제 이런 수식어를 들어보겠어요. 재밌기도 했고요. 다만, 기대와 관심에 부응할 만큼의 좋은 성적을 보여드리지 못해서, 그게 정말 죄송했죠."

경기도청 소속으로 지난해까지 현역이었던 이슬비. 그러나 2017년 12월 31일을 끝으로 은퇴했다. 컬링이라는 종목의 특성상 몇 년 더 얼음 위에 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나이다. 아직 더 뛸 수 있는데, 너무 일찍 내려온 것은 아닐까?

"아직 체력운동도 하고 있고요. 몸도 만들고 있어요. 운동선수처럼 패턴을 유지하면서 항상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주어진 기회를 살리고 제 기량을 잘 유지할 수 있다면, 꼭 소속 선수가 아니더라도 컬링도 계속할 수 있다는 마음이 있어요. 그래서 속상하거나 섭섭한 것도 없어요. 은퇴를 하더라도 지도자나 다른 방향이 나올 수 있잖아요. 후배들에게 선수 이후에도 길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결정한 것도 있고…. 빠른 만큼, 괜찮은 것 같아요. 답답한 게 전혀 없지는 않지만, 미리 시작한다고 생각하면 또 괜찮아요."
 어떤 상황에서도 팀원들을 다독이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4년 전의 이 사람을 많은 이가 기억한다. '컬링요정' 2014 소치동계올림픽 당시 컬링 국가대표팀에게 붙여진 별명이다. 평창동계올림픽 SBS 컬링해설위원으로 변신한 이슬비 전 국가대표 선수를 만났다.
ⓒ 남소연
지난 국가대표 선발전이 끝난 뒤 약 3주, SBS에서 먼저 해설위원 제안이 왔단다. 별다른 고민 없이 OK 했다. 주변에서도 응원해줬다.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걸어본 적 없는 길을 목전에 두고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앉아 있다.
"평창에 선수로 참가를 못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평창에 올림픽 무대를 밟을 수 있게 해주신 분들이잖아요. 감사하기도 하고, 새로운 도전도 시작할 수 있게 됐고…. 생명수 같은 거죠. 컬링 해설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거니까, 바로 하고 싶다고 했어요.

해설 리허설 한 번 했는데, 그날 처음으로 편두통을 앓아봤어요. (웃음) 원래 그런 거 없었거든요. 너무 신경 쓰고 긴장했는지…. 그때는 '아, 해설 진짜 너무 힘들구나. 보통일이 아니구나' 싶었죠. 후회라기 보다는, 만만히 봐서는 안되겠다? 다들 설명 묵직하게 잘하시는데, 저는 아직 화면 따라가기도 바쁘고 그렇더라고요. '명확하게, 잘 전달할 수 있을까'라는 부담이 많이 크죠.

그래도 저만의 강점이 있으니까요. 실제로 게임에 뛰었던 선수고, 한국 팀에 대한 특성도 많이 알고, 선수들 간의 시그널도 빨리 캐치할 수 있으니까요. 단순히 '빗자루질'이 아니라 컬링의 용어나 개념을 더 많이 알려드리고, 시청자분들이 잘 알 수 있도록 설명해드리는 게 목표입니다."

이번 올림픽에서는 방송 해설위원으로 도전하지만, 그의 도전 목록에는 '지도자'가 있었다.
"언젠가 지도자가 되고 싶어요. 사실 선수 때는 하기 싫었는데…. (웃음) 일단 컬링이 전문용어가 많아서 어려워요. 선수들도 외국인 코치가 전문용어를 쓸 때 잘 모르는 경우도 있고요. 또, 보이는 것보다 한 두 수를 더 내다 봐야하거든요. 플레이하는 선수 입장에서도 '그걸 왜 굳이 지금하지?'하는 작전 지시도 많아요. 그런데 또 나와서 보니까 다르더라고요. 해설을 준비하다보니 선수 때보다도 게임을 더 많이 보게 됐어요. 몰랐던 작전들도 이해가 되고, 또 제가 최근까지 선수였으니까 지금의 컬링 스타일이나 작전 같은 건 제가 빨리 습득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고…. 제가 알고 있는 기술이나 노하우 그리고 지금 공부하는 걸 후배들에게 알려주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지도자 자격증도 준비하려고요."
결코 쉽지 않은 운동
▲ 스톤 던지는 이슬비 2014년 2월 16일 오후(현지시각) 러시아 소치 해안클러스터의 올림픽 파크 내 아이스큐브 컬링센터에서 열린 소치동계올림픽 여자 컬링 한국과 덴마크 전에서 한국 이슬비가 신중하게 스톤을 던지고 있다.
ⓒ 연합뉴스
확실히 컬링에 대한 인지도는 4년 전에 비해 높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정확히 어떤 운동인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냥 '빗자루질' 혹은 '걸레질' 한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고, 자칫 '쉬워 보인다'며 왜 동계 스포츠 정식종목인지 의아해하는 사람도 간혹 있다.

하지만 컬링은 힘든 운동이다. 육체적인 스트레스와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동시에 수반한다. 단순히 작전에 대한 고민만이 아니라, 그 작전을 온전히 수행하기 위한 물리적 노력도 따라와야 한다.

"저를 운동선수라고 소개했을 때, '체조선수'냐고 물어보세요. '빙상한다'라고 하면, '쇼트트랙?'이라고 되물으시고…. (웃음) 그런데 컬링 진짜 힘들어요! 시청자의 입장에서 '저게 왜 스포츠냐'라고 하실 분도 분명 계시겠지만, 막상 해보면 힘들거든요. 올림픽 때는 마이크도 차요. 얼굴도 엄청 빨개지고, 스킵(Skip)으로 뛰면 살도 엄청 빠져요. 신경도 곤두서있게 되고, 잠도 못 잘 때도 있었고요. 정신적으로도 일단 힘들어요.

컬링은 육체적인 스포츠이기도 해요. 30초 스위핑(Sweeping)하는 동안 무호흡이거든요. 숨을 참고 전력의 힘을 다하기 때문에, 2시간 내내 빙판을 두 발로 뛰고 쉬다가, 뛰고 쉬다가 하면 진짜 힘들어요. 스톤도 세밀하게 놔야 하기 때문에 손끝에 균형감각도 되게 중요하거든요. 여름에 체력훈련 엄청 많이 하는데, 코어운동도 많이 하고, 달리기는 기본이고…."
이변이 가능한 게임
 어떤 상황에서도 팀원들을 다독이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4년 전의 이 사람을 많은 이가 기억한다. '컬링요정' 2014 소치동계올림픽 당시 컬링 국가대표팀에게 붙여진 별명이다. 평창동계올림픽 SBS 컬링해설위원으로 변신한 이슬비 전 국가대표 선수를 만났다.
ⓒ 남소연
악조건 속에서도 여기까지 어렵게 올라온 국가대표팀이다. 컬링은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개인별로 평가하여 순위를 매기지 않는다. 대신 팀 전체를 선발한다. 팀 호흡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수한 개별 선수로 새 팀을 구성하지 않고, 탄탄한 팀워크를 보인 팀에게 기회를 주는 셈이다. 경북체육회는 국내 컬링계 전통의 강호고, 지난 몇 년 간 국내외를 막론하고 호성적을 거뒀다. 직접 맞선 경험이 있는 이슬비 위원 역시 이를 잘 기억하고 있다.
"경북체육회를 라이벌로 상대했을 때도, 단점을 잘 느끼지 못했어요. 항상 완벽했어요. 눈에 보이는 실수를 별로 하지 않은 팀이었고, 커뮤니케이션이 간략하고 명료하게 잘 되어요. 그래서 팀 호흡이 7~8년 손 맞춘 것 이상으로 엄청 잘되어 있는 팀이죠. 팀워크가 좋고, 서로서로 의기투합을 잘하는 팀이에요. 열정은 선수들 눈빛만 봐도 알아요. 보기만 해도 메달을 따야겠다는 마음이 바로 전해질 겁니다. 카리스마나 이런 것도 있지만, 경북체육회한테 컬링인들이 배워야할 것도 그런 열정적인 눈빛이거든요.

믹스더블은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어요. 그런데도 단합도 잘 되어 있고, 의사소통도 되게 잘 돼요. 둘만이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경기에 더 집중해야 하는데, 역사가 짧은 것 치고는 성적이 되게 좋아요. 메달에 대한 열정과 이를 뒷받침해주는 노력이 강점이죠. 멘탈 트레이닝도 많이 해요. 지금 가지고 있는 실력대로만 했으면 좋겠어요. 남자팀은 월드투어에서 돌아본 경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워낙 대외 성적이 좋아요. 여자팀은 지금 캐나다에서 '좋다'는 1인자들도 많이 이기고, 우승도 많이 하는 팀이고요. 지금 실력대로 편하게만 한다면, 승산이 있어요. 충분히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승산이 있다? 그냥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 아닐까?
"여자 같은 경우에는 캐나다가 첫 상대거든요. 제일 강호 팀이고, 지금 캐나다에서 뽑혀서 오는 팀 자체가 세계 1~3위 안에 드는 팀이에요. 그래서 오히려 캐나다 팀만 이기면, 분위기 타서 쭉 갈 거예요. 그 다음에는 세계 2~3위권인 스웨덴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첫 상대를 이기면 기운을 받아서 잘할 겁니다. 지금 선수들이 못 이겨본 것도 아니거든요! 첫 상대가 강한 게 오히려 대진운이 좋은 편인 것 같아요. 처음에 이기면 자신감을 더 받아서 계속 갈 수 있고, 혹시 지더라도 어차피 잘하는 팀이었으니까 크게 흔들리지 않을 수 있고요. 믹스 더블도 그렇고, 남자팀도 마찬가지에요. 그러니까 꼭 첫 경기는 챙겨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평창동계올림픽의 첫 스타트는 2월 8일 오전 9시 5분, 컬링 믹스더블 예선이다. 시트 C에서 핀란드와 맞선 뒤 같은 날 오후 8시 5분, 시트 B에서 중국과 대결한다. 동계 스포츠 선진국들, 컬링 강국들과의 대결이 이어져 있는 상황. 몇 번 승리한 경험이 있다고 방심할 수도 없고, 상대적 약체라고 해서 포기할 수도 없다. 진인사대천명. 결과는 하늘에 맡기고, 다만 선수들은 누구보다 뜨겁게 얼음 위를 달굴 뿐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 열정에 뜨겁게 화답하는 것.

"다른 나라들에 비하면…. 역사가 반백년도 안 되는데, 아시아에서는 정상을 달리고 있는 선수들이 많아요. 그 위치에 올라가기 위해 엄청 피나는 노력을 했어요. 1년의 반 이상을 외국에서 생활하기도 하고, 지원이 없음에도 여기까지 올라와 준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혹시 메달을 못 따도, 성적이 안 좋아도 질타보다는 '잘했다', '잘 싸웠다' 말을 많이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응원과 격려의 메시지를 받으면 선수들도 고마운 마음에 힘내서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컬링은 아마추어도 프로팀을 이길 수 있는 여지를 가진 게임이에요! 컬링 강대국을 꼽으라고 한다면, 우리나라보단 다 강대국이죠. 하지만 동시에 한국팀이 이길 수 있는 여지도 가지고 있고, 감히 금메달도 노려볼 수 있어요. 이변이 가능한 스포츠이니까요. 그러니 많이들 꼭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선수들도 기운을 받아서, 이변을 만들어낼 수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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