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만경영에 인권침해..음악저작권협회 복마전

반기웅 기자 2018. 1. 21.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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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직원 휴대폰 통화내역 요구에 부당 인사 발령 의혹

한국음악저작권협회(한음저협)에서 20년 넘게 근무한 직원 ㄱ씨. 지난 2016년 2월 협회의 한 법무팀 직원은 ㄱ씨에게 개인 휴대폰 통화내역을 확인하는 데 동의하냐고 의사를 물었다. 이사회 녹취록을 외부로 유출시킨 범인을 찾기 위해 통화내역을 보겠다는 게 이유였다. ㄱ씨는 싫다고 했고 얼마 뒤 인천지부로 인사발령이 났다. ㄱ씨는 “동의를 거부한 뒤에 모 이사로부터 여기서 월급 받으면서 왜 사인을 안 하느냐. 나중에 부당한 일을 당할 수 있다는 얘길 들었다”고 말했다.

음악저작권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설립된 한국음악저작권협회. 방만경영 의혹 등 안팎으로 부침을 겪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회원들에게 고발당한 협회 집행부

국내에서 유통되는 모든 음악 저작권의 90% 이상을 관리하는 신탁관리단체인 협회가 직원들을 상대로 부당전보와 인권침해 등의 행위를 벌이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전·현직 직원들이 제기하는 부당전보 의혹은 이밖에도 많다. 2008년 입사 이후 내내 서울 본사 관리직에서 근무하던 직원 ㅎ씨는 2016년 돌연 제주지부로 발령 받았다. 지역근무의 경우 서울과 근무형태 등이 달라 과거에는 찾아보기 어려운 인사발령 사례였다.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그는 결국 1개월 만에 협회를 그만뒀다. 협회는 ㅎ씨를 내부자료를 외부로 유출한 당사자로 의심하고 괴롭혔다. ㅎ씨는 “협회 측이 내게 ‘내부자료를 외부로 유출했다. 왜 그랬는지 말하라. 그렇지 않으면 너는 지부로 간다’고 이야기했다”고 전했다. ㅎ씨와 달리 떠나지 못하고 남은 직원들의 경우 빈번한 인사발령으로 3~4개월 단위로 지역을 옮겨 다니며 근무하는 사례도 흔하다.

이 같은 인사는 2014년 작곡가 윤명선씨가 한음저협 회장으로 취임한 뒤 시작됐다고 직원들은 입을 모은다. 실제 윤 회장 취임 이후 사측의 ‘인사조치’가 크게 늘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조사한 결과 2014년 108건, 2015년 127건, 2016년 114건 등 매년 평균 100건이 훌쩍 넘는 인사조치가 이뤄졌다. 전체 협회 직원이 164명(2016년 12월 기준)인 것을 감안하면 과다하게 많은 숫자다.

인사조치로 많은 직원들이 고통 받았지만 기댈 곳이 없었다. 협회에는 노동조합이 있었지만 노조도 힘이 되지 못했다. 지역근무 발령 이후 협회를 떠난 한 퇴사자는 “이런 일이 있으면 노조에서 대응을 해줘야 하는데, 노조에서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고 말했다.

이해할 수 없는 인사가 반복되면서 직원 30여명이 회사를 떠났다. 퇴직자 등의 빈 자리는 60명이 넘는 신입직원을 뽑아 채웠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강민주 노무사는 “예견 불가능하고 발령 전에는 어디로 나갈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가정이 있는 분들은 생활상 불이익이 상당히 있을 것”이라며 “관련해서 문제제기를 했다면 근로자 동의 부분이나 위법성까지 다퉈볼 수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한음저협은 해당 인사조치와 관련해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협회 관계자는 “경영진의 판단에 따라 인사고과를 거쳐 조치가 이뤄졌고 불법을 행한 부분은 없다”고 밝혔다. 협회 관계자는 또 ㄱ씨의 사례처럼 사측이 통화기록 조회 동의를 요구한 사실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이사회 녹취록을 유출한 범인을 찾기 위해서 법무팀 직원이 한 일”이라며 “당시 이사회에 참석했던 인원을 모두 형사고소할 수 없어 ‘문자메시지를 보낸 전화번호 현황을 빼줄 수 있겠느냐’고 동의를 구했던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한음저협은 방만경영 의혹으로도 몸살을 앓고 있다. 저작권 관리를 협회에 맡긴 음악인들이 사실을 폭로하고 나섰다. 노래 <비오는 날의 수채화>의 작곡가 강인원과 김승기·김기호 외 저작권협회 회원 86명은 “한음저협이 각종 규정을 악용해 몇몇 이사들이 1년 동안 수천만 원의 회의비를 챙겨가고 있다”며 1월 15일 문체부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들이 공개한 내부자료에 따르면 한음저협 A이사는 8개 위원회, 5개 TF 소속으로 한 달에 30회 가까이 회의에 참석하고 지난 1년 동안 8700만원이 넘는 회의비를 가져간 것으로 나타났다. 회의비는 평균 30만원으로 많게는 하루 5번 회의에 참석하는 날도 있었다. 다른 이사 2명도 지난해 회의비와 거마비 명목으로 5000만원 넘게 가져갔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실제로 문화체육관광부가 업무점검을 한 결과 A이사는 2017년 상반기에만 2750만원(이사회 회의비ㆍ출장거마비 제외), B이사는 2400만원, C이사는 2260만원을 회의비로 수령한 것으로 확인됐다.

작곡가 강인원씨는 “한 달에 몇십만 원으로 버티며 음악하는 친구들도 많다”며 “음악인을 위해 봉사해야 할 이사진과 집행부가 벌이는 행태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협회의 한 정회원은 윤 회장 등 임원진들을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할 예정이다.

몇몇 이사들은 회의비로 수천만원 챙겨

한음저협의 방만경영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회 국감에서도 한음저협 문제가 여러 차례 거론됐고, 이미 문화체육관광부도 업무점검 뒤 방만경영 문제를 들어 개선을 수차례 요구했다. 지난 2016년에도 이사들이 잦은 회의로 수억 원의 예산을 지출하자 문체부는 “각종 위원회를 통·폐합하고 위원 한 명이 3개 이상 위원회에 참석할 수 없도록 하라”고 명령했다. 개선명령을 듣지 않을 경우 과징금을 받게 되지만 협회는 보란듯이 2016년 8억1600만원이었던 회의비 예산을 2017년에는 10억3900만원으로 늘렸다.

정부와 국회의 지적에 복지부동하는 협회의 ‘뒷배’는 무엇일까. 문체부 관계자는 “협회가 국고지원을 받거나 공무원이 파견 나가 있는 단체가 아니어서 감사가 불가능하다”며 “관리·감독 관청으로 영업정지 처분을 내릴 수 있지만 음악인들이 피해를 볼 수 있어 영업정지를 시키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현재로서는 명령 불이행에 따른 과징금 처분이 문체부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조치인 셈이다.

이 정도로는 1988년부터 30년 넘게 국내 음악 저작권 관리를 사실상 독점해온 협회를 견제하기는 역부족이다. 실제로 문체부가 한음저협이 방송사로부터 과다한 사용료를 받고 있다고 판단해 1500만원의 과징금 처분을 내리자 협회는 문체부의 처분이 부당하다며 맞소송을 걸었다. 문체부 관계자는 “협회에서 앞으로 문제된 부분들을 개선한다고 하지만 실제 개선이 될지는 알 수 없다”며 “일단 이행기간까지 지켜보고 추가적인 과징금 처분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음저협 측은 “회의비가 방만한 예산 책정이라는 것은 문체부에서 잘못 판단한 것”이라며 “임원 보수 역시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윤명선 회장의 임기는 2월로 끝난다. 차기 회장이 이미 선출돼 취임을 앞두고 있다. 새 회장의 취임으로 협회의 문제점이 개선될 수 있을까. 문체부는 협회 회원들이 제출한 진정서를 토대로 협회 측에 소명요청을 하는 한편, 임원 승인 여부에 대해서도 추가적으로 살펴볼 계획이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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