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야당의 최저임금 프레임에 문 정부가 넘어갔다"

류인하 기자 2018. 1. 20.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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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촛불시민혁명은 문재인 정권을 탄생시켰다. 정부는 그동안 가진 자, 힘 있는 자의 편에 서 있던 ‘기울어진 운동장’의 축을 약자의 편으로 옮기려는 다양한 노력을 시도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가지지 못한 자, 덜 가진 자들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나온다. 을(乙)과 을(乙)의 싸움을 부추긴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높은 임대료, 가맹점 수수료 등 전체 지출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문제를 외면하면서 중소자영업자들에게만 노동자의 최저임금을 책임지도록 하는 것은 정부의 역할을 방기한 것이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있다.

인태연 전국유통상인연합회 회장(55)은 18일 <주간경향>과의 인터뷰에서 “고작 최저시급 7530원을 가지고 ‘죽네, 사네’ 할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라도 정부가 잘못 짚고 넘어간 것이 있다면 고치면서 중소자영업자들과 노동자가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 회장 역시 18년째 의류 유통매장을 운영하는 중소자영업자다.

인태연 전국유통상인연합회 회장이 19일 인천시 부평구에 위치한 자신의 가게에서 영업을 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정부가 최저임금을 처음으로 7000원대로 올렸다. 자영업자들의 불만이 실제로도 많은가.

“상인들이 하소연을 하러 찾아온다. 자기들이 180만~190만원씩 지급하며 사람을 썼었는데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방안대로 계산을 하니 250만원까지 올라가는데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불만이 많았다. 나는 ‘법적으로는 최저임금 인상분대로 줘야겠지만 현실적으로 힘들면 노동시간이라도 줄이라’고 조언한다. 노동자들의 최저임금을 인상해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노동시장의 질적 향상에 중소자영업자들이 제물로 바쳐지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다.”

-야당과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문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지적이 높다.

“그러면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어야지. 야당은 불과 얼마 전까지 정부·여당이었다. 그냥 최저임금 인상으로 당장 힘들어진 중소상인들만 재료로 삼아 자신들의 정쟁의 도구로 이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자유한국당은 중소자영업자 보호 관련법 입법을 막고 있는 당사자다. 그 사람들이 갑자기 중소상인을 위한다며 떠들고 다니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제1야당이 뭐하나. 국회 입법을 막고 있지 않나. 문제는 보수언론이나 야당에서 ‘최저임금 인상으로 중소상인들이 다 죽어난다’고 떠드는 것들이 현장 상인에게는 가장 잘 먹히는 이야기라는 점이다. 정부는 그런데 야당과 보수언론의 정치적 공세에 현실적 대안을 내놓는 게 아니라 정치적으로 방어하고 있다. 그러니 노동자의 임금인상으로 소득증대를 꾀하려는 본래의 취지는 훼손되고 (정부는 방어를 위해) 실제로 피해를 입고 있는 중소자영업자의 목소리를 묻어버리는 것이다.”

-정부가 그래도 중소자영업자 지원대책을 많이 내놓았다.

“현실성이 있어야 한다. 야당과 보수언론이 짜놓은 프레임은 이미 중소상인들에게 잘 먹히는 재료가 됐는데 정부는 말로만 ‘카드 수수료를 낮춰주겠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을 강화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재작년에 카드회사가 일방적으로 중소형 마트의 카드 수수료를 2%에서 2.5%로 올렸다. 0.5%포인트 올려놓은 것을 내리는 것도 못하면서 몇 년 뒤가 될지 알 수 없는 카드 수수료 인하 발표는 현실성이 없다. 현실성 없는 대책을 최저임금 인상 비판의 방어논리로 내세우고 있다. 얼마 전 최승재 소상공인연합 회장이 모 언론과 단독 인터뷰를 하면서 현 정부의 정책에 불만을 터트렸다. 최 회장의 이야기가 정부 입장에서는 단순히 볼멘소리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영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면 정부는 공격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말고 ‘왜 저 사람이 저런 이야기를 했을까. 우리가 뭔가 빠트리고 넘어간 부분이 있지 않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정부가 상인들의 현실적 불만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결국 야당의 프레임에 제대로 말려든 것이다.”

-구체적인 예시가 필요하다.

“정부가 내놓은 ‘일자리 안정자금’ 지원대책을 한 번 보자.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지원이 필요한 소상공인과 영세기업을 대상으로 노동자 임금을 일정 부분 한시적으로 보전해주는 정책을 내놓았다. 30인 미만 사업장의 월평균 보수액 190만원 미만 근로자가 그 대상이다. 현장에서 주 5일 9시간씩 근무를 하면 월 188만원으로 정부 지원대상이라는 계산이 떨어진다. 그런데 자영업자 중에 주 5일 근무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 대부분이 주말에도 일을 한다. 그때 인력을 추가로 쓰면 월 240만~250만원으로 임금이 높아진다. 그게 보통의 평범한 자영업자들의 삶이다. 그런데 정부는 지금까지 최저임금도 제대로 주지 않았던 영세사업장 쪽이나 가능한 지원을 하면서 ‘우리의 정책이 제대로 홍보가 안 됐다’는 불평을 한다.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소상인의 현실은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190만원의 함정이 뭔지 아나. 이미 190만원을 줘 왔던 대다수의 중소자영업자들은 190만원을 임금의 최대치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190만원을 넘기면 안 된다는 말이니까, 휴게시간을 늘려서 190만원만 넘기지 말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이걸 공무원들은 알기나 하는지 궁금하다.”

-상인들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정책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맞다. 지금 추가로 나온 정부 반응이 뭔가. ‘우리가 이렇게까지 다양한 지원을 해줬는데 최저임금 인상을 안 하고 버텨? 그러면 우리가 앞으로 단속할 거야’ 아닌가. 자영업자들은 단순 고용주가 아닌 또 한 명의 노동자다. 그런데 정부는 그 사람들의 현실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공격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누구와 파트너가 돼서 최저임금 정책을 끌고 나가야 하는지 정확하게 감을 잡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식이 잘못돼 있다. 노동자의 주머니가 채워지면 소득증대가 되고, 소비로 이어지면 결국 소상공인 자영업자에게 이득이 돌아간다는 이 선순환 구조의 전제 자체가 잘못된 거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돈이 많아진 사람들이 재래시장을 간다? 아니다. 소득이 증대되면 될수록 문화적 욕구가 커지고, 그 욕구에 맞는 곳은 재래시장이 아니라 복합쇼핑몰, 백화점, 대형마트다. 정부는 시민들이 얼마나 이중적으로 움직이는지를 모른다.”

-자영업자를 달랠 수 있는 추가지원이 있어야겠다.

“정부가 하는 정책이 100% 완벽할 수는 없다. 그러면 ‘보완책을 지속적으로 강구하겠다, 자영업자들이 안정될 때까지 다양한 목소리를 끊임없이 듣고, 추가 지원책을 강구하겠다’고 하면 되는 거다. 상인들에게 정부에 대한 신뢰를 강력하게 심어주는 게 지금 정부가 해야 할 가장 첫 번째 해결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나마 먹고 살 만한 중소상인들에게 ‘너희들이 좀 희생해’ 할 것이 아니라 상인들의 불만을 정치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보듬고 가는 게 정부의 역할이 아닌가 싶다. 그러면 최저임금 1만원도 언젠가는 가능하지 않겠나. 중소상인들도 노동자다. 정부와 함께 가야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만 잊지 않아줬으면 한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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