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통화·블록체인은 실체 없는 '거품'인가

백철 기자 입력 2018. 1. 20. 15:30 수정 2018. 1. 20.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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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월 18일 밤 JTBC의 특집 토론 ‘가상화폐, 신세계인가 신기루인가’가 방영된 이후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폭발적인 반응이 터져나왔다. 대표적인 진보 지식인 유시민 작가가 가상통화에 대해서는 단호한 입장을 취한 것이 주된 이유였다. 유 작가는 토론에서 가상통화 거래에 대해 단기적으로는 온라인 도박에 준하는 수준으로 규제하고, 중장기적으로는 거래소 자체를 폐쇄하고 개인 간의 거래만 허용하는 방안으로 가야 한다는 입장을 강하게 피력했다.

유 작가처럼 가상통화에 부정적인 입장을 가진 이들은 현재의 가상통화 광풍을 1990년대 말~2000년대 초의 닷컴 버블에 비교하곤 한다. 두 현상은 ‘신기술’에 의해 촉발됐고, 그것이 투자 ‘거품’으로 나타났다는 점에서 닮았다.

가상통화 가격이 급락한 1월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의 한 가상통화 거래소가 텅 비어 있다. 김기남 기자

가상통화 광풍과 닷컴 버블

닷컴 버블은 당시로서는 대중적인 기술이 아닌 월드와이드웹(WWW)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1980년대 말부터 사용된 월드와이드웹은 1993년 이미지가 표시되는 최초의 웹브라우저 모자이크가 개발되면서 서서히 퍼지기 시작했다. 이후 모자이크의 개발자들이 웹브라우저 업체 넷츠케이프를 창립하면서 월드와이드웹은 점차 대중화된다. 비슷한 시기인 1997년 미국 내의 개인용 컴퓨터 보급률은 35%를 넘어서고, 인터넷 접속 속도도 크게 빨라졌다. 인터넷이 일부 전문가들의 전유물에서 벗어나 평범한 사람들의 도구로 발전돼가던 시기였다.

‘닷컴 버블’ 현상이 심화됨에 따라 인터넷과 관련이 있는 기업이나 이름에 ‘닷컴’이 들어가는 기업들은 주식시장에서 상상 이상의 상승폭을 기록했다. 나스닥에 상장된 무선통신회사 퀄컴의 주가는 1999년 1년간 26배가 넘게 뛰어올랐고, 같은 기간 동안 10배 이상 주가가 오른 종목이 10여 가지가 넘었다. 2000년 3월 나스닥 종합주가지수는 5132포인트를 기록했는데, 이 기록은 15년이 지나서야 깨졌다.

1월 18일 TV 토론에서 김진화 한국블록체인협회 공동대표는 현존하는 가상통화 중 95%는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닷컴 버블 때에도 거품만 남기고 사라진 기업들이 많았다. 대표적인 예가 골드뱅크다. 인터넷으로 광고를 보면 현금을 준다는 아이디어로 시작한 골드뱅크는 1998년 코스닥에 상장되자마자 1년에 40배가 넘는 주가 상승을 기록했다. 하지만 골드뱅크가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2년 만에 시장에서 사실상 퇴출됐다.

가상통화 옹호론자들은 닷컴 버블의 결과 세상을 바꾼 기업들이 탄생했다는 것에 주목한다. 미국에서는 구글, 아마존, 애플, 넷플릭스 등이 닷컴 버블이 꺼진 이후에도 급속한 성장을 거듭했고, 한국에서도 네이버, 카카오 등이 2000년대 초반 이후 성장을 거듭했다. 하지만 코인 광풍과 닷컴 버블 사이에는 큰 차이점도 있다. 닷컴 버블의 주역은 벤처기업이지만, 코인 버블의 주역은 비트코인 등 가상통화라는 점이다. 둘 다 투기의 대상이 된 것은 마찬가지지만, 벤처기업은 꾸준히 새로운 서비스를 창출했다. 닷컴 버블에서 살아남은 기업들의 서비스는 현재 전세계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다.

반면 가상통화의 기반이 된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응용분야는 아직 눈에 잡히는 게 없다. ‘비트코인의 문제점을 개선했다’며 수많은 가상통화들이 새롭게 시장에 나왔지만, 여전히 시장점유율 1위는 가장 오래된 가상통화인 비트코인이다. 18일 TV 토론에서 유시민 작가가 지적했듯 비트코인으로 법정통화처럼 재화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비트코인의 가격이 뛰면서 수수료가 올랐고, 거래 속도가 느리기 때문이다. 심지어 1월 18~19일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열린 비트코인 컨퍼런스에서도 비트코인을 결제수단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가상통화·블록체인 전문가들은 닷컴 버블 당시 여러 기업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했던 것처럼 가상통화 시장도 꾸준히 변화하고 있다고 봤다. 김준영 블록체인코리아 대표는 전화 인터뷰를 통해 “이더리움 등 새로운 암호화폐들은 비트코인의 아류가 아니라 비트코인의 단점을 보완하는 것들”이라며 “비트코인의 느린 속도나 부족한 익명성을 보완하는 새로운 코인이 계속 나올 때마다 비트코인의 점유율은 떨어져 왔다. 얼마 전만 해도 90%에 달하던 비트코인의 점유율이 지금은 30%까지 떨어진 상태”라고 말했다.

가상통화와 블록체인은 분리 가능한가

가상통화와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정부의 엇갈린 대응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1월 15일 청와대 국무조정실은 가상통화 투기와 시세조작·자금세탁 등 불법행위는 강력히 대응하되, 블록체인 기술에 대해서는 육성·지원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김진화 공동대표는 18일 국민의당이 주최한 국회 토론회에서 가상통화와 블록체인은 분리가 불가능한 한 몸이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블록체인을 크게 폐쇄형과 공개형으로 나눠서 설명했다. 월마트가 자사의 유통시스템에 적용시킨 블록체인 네트워크가 대표적인 폐쇄형 블록체인으로, 제한된 참여자만이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참여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일반적으로 블록체인이라 불리는 기술은 개방형 블록체인을 말한다. 불특정 다수가 자신의 컴퓨터 자원을 제공해 네트워크가 유지되며 네트워크에 기여한 이들은 그 보상으로 가상통화를 받는다. 김 대표는 가상통화에 대해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기여한 이들에게 제공하는 인센티브라고 설명한다.

또한 김 대표는 국회 토론회에서 가상통화 거래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나, 정부의 신규 ICO(가상통화 공개) 금지와 같은 조치는 새로운 공개형 블록체인 기술의 발전을 저해한다며 “구글, 네이버 같은 서비스는 만들지 못하고 회사 인트라넷 게시판, 전자결제시스템 등만 개발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묘사했다.

한편, 여러 가상통화·블록체인 전문가들은 아직은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 응용기술의 수준이 높지 않다는 점에는 동의했다. 블록체인 연구모임인 블록체이너스의 문영훈 대표는 전화 인터뷰를 통해 “아직은 글로벌 차원에서 실용성을 입증한 앱은 없지만, 블록체인을 이용한 다양한 시도는 이미 시작됐다”고 말했다.

문 대표는 대표적인 블록체인 기반 서비스로 스팀잇(Steemit)을 꼽았다. 스팀잇은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이용한 SNS다. 스팀잇 커뮤니티 내에서 글을 쓰고 댓글을 하는 활동이 일종의 채굴행위이며, 많은 이들로부터 공감을 이끌어낸 사용자는 그 대가로 스팀잇 네트워크에서 생성되는 가상통화를 받게 된다. 그는 “스팀잇은 중개인 없는 직접거래라는 블록체인에 딱 어울린다”며 “출판사나 언론 기사를 통하지 않아도 필자와 독자가 직접 만날 수 있고, 광고를 붙이지 않아도 자신의 활동에 대한 대가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문 대표는 구글, 네이버 등 기존 IT 대기업들의 데이터센터 없이 클라우드 컴퓨팅이 가능한 시도도 있다고 말했다. 파일코인은 개인의 하드디스크에 남는 공간을 이용한다. 많은 하드디스크 저장공간을 제공하는 이들에게는 네트워크에 기여한 대가로 파일코인이라는 가상통화가 지급된다. 그는 “블록체인에 기반한 서비스들이 이제 발걸음을 뗀 단계다. 특히 숙박이나 합승 등 여러 공유경제 모델에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할 수 있고, 이런 기술들이 이제 막 시도되고 있다”며 “먼 미래가 아니라 5~10년 내로는 블록체인 기술이 현실세계에서도 와닿는 정도로 발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가상통화 거래 규제에 대해선 이견 없어

또한 가상통화·블록체인 전문가들은 가상통화 거래에 대해 정부의 규제가 필요하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었다. 유시민 작가가 말한 것처럼 거래를 완전히 막는 조치에는 반대했지만, 가상통화 광풍 자체는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김준영 블록체인코리아 대표는 현재 가상통화 시장에 ‘무조건 심리’가 짙게 깔려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암호화폐를 사기만 하면 무조건 값이 오른다는 심리가 많은 게 사실”이라며 “특히 발행량이 많고 개당 값이 싼 코인을 사기만 하면 무조건 된다는 투자자들이 많아지면서 혼란이 야기됐다. 코스닥보다도 많은 거래량이 발생한다는 것 자체가 위험한 상황인데, 아무런 제도적 장치가 없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1월 16일 가상통화가 더 이상 가상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취지의 청와대 청원을 올렸다. 그는 “암호화폐 투자가 청년들의 꿈과 희망이라는 식의 프레임이 많이 돌고 있는데, 이런 시각이 오히려 암호화폐를 투자수단으로만 보고 기반에 있는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관심을 죽이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정부에서도 이렇게 커진 암호화폐 시장을 무조건 없애려고만 할 게 아니라, 블록체인 기술이 실제 어떤 가치를 만들 수 있는지 정부 차원에서 연구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화 한국블록체인협회 준비위 공동대표도 18일 국회 토론회에서 가상통화에 대해 일본식 규제를 적용하는 것이 옳다고 봤다. 일본에서는 가상통화 거래소를 개장하려면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또한 정부에 등록된 거래소는 주기적인 회계감사를 받아야 하며, 거래소가 일본 국내법을 어길 경우 등록을 취소시킬 수도 있다. 그러는 한편, 일본은 가상통화를 결제수단으로 보는 법적 지위를 인정하고, 기업이 가상통화를 보유한 경우 회계보고서에 그 평가손익이 반영된다.

김준영 대표는 “지난해만 해도 암호화페 투자자 중 절반 이상이 ‘투자금만 내면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식의 불법 다단계를 통해 암호화폐를 알게 된 분들이 많았다. 지금도 불법으로 투자금을 모으는 회사가 많이 있는 것으로 안다”며 “또한 거래소가 투자자의 출금을 지연시킨다든지, 거래소가 투자액수를 감당할 만한 자본은 갖추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정부가 면밀히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사기코인 구별하는 법 가상통화 정보 사이트 코인마켓캡(coinmarketcap)에 의하면, 1월 19일 기준으로 전세계에 1448개의 가상통화와 7652개의 거래소가 존재한다. 한국의 가상통화 거래소 업비트는 121개 가상통화의 거래를 지원한다고 밝히고 있다. 수많은 가상통화 중에는 사기성이 짙은 스캠 코인(scam coin)으로 알려진 것들도 있다. 가상통화 전문가들은 뜬소문에만 의존해 투자할 게 아니라, 시장 참여자 스스로도 스캠 코인을 구별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형중 고려대 정보대학 교수는 “암호화폐 개발은 대부분 오픈소스로 이뤄진다. 비전문가도 어느 정도 코인을 식별할 눈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houstonian이라는 ID를 쓰는 한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블록체인 기반 SNS 스팀잇(steemit)에 스캠 코인을 구별하는 글을 썼다. 김준영 블록체인코리아 대표도 “스캠 코인을 가려내는 방법으로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내용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코인마켓캡은 가상통화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특정 가상통화의 시가총액, 발행량뿐만 아니라 가상통화의 홈페이지와 소스코드도 볼 수 있다. 상당수의 가상통화는 여러 개발자들의 협업으로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코인마켓캡에서 제공하는 각 가상통화의 깃허브(GitHub: 오픈소스 저장소이자 개발자들의 협업공간) 주소를 살펴보면 누구나 해당 가상통화의 개발내역을 알 수 있다. 얼마 전 대규모 행사로 관심을 끌었던 시가총액 10위권인 ㄱ코인의 소스코드를 살펴봤다. 작업이력을 보면 올해 들어서도 활발하게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ㄱ코인의 기여자(contributors) 칸을 보면 ㄱ코인의 창립자 등 50여명의 개발자가 붙어 있다. ㄱ코인의 창립자는 지난해 9월 이후 개발에 참여하지 않고 있지만, 다른 10여명의 개발자들이 꾸준히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시가총액 순위가 ㄱ코인과 비슷한 ㄴ코인도 살펴봤다. ㄴ코인의 소스코드를 보면 최신 작업날짜가 지난해 12월이다. 또한 ㄴ코인의 개발자는 10명이 되지 않는데, 1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최근 한 달간 활동 이력이 아예 없다. ㄱ코인의 경우 그동안 500건 이상의 개발 요청(pull request)이 올라온 데 비해, ㄴ코인에 올라온 개발 요청은 10여건에 불과하다. 즉, ㄴ코인은 ㄱ코인보다 개발이 활발히 이뤄지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소스코드 외에도 가상통화를 분석하는 방법은 많다. 한국에서만 거래가 활발한 코인인지 여부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코인마켓캡의 거래소(market) 탭에서 비트코인의 거래량을 살펴보면 원화 거래의 비중은 5%대에 불과하다. 반면 ㄱ코인은 원화거래 비율이 60%를 넘는다. 최근 시가총액 최상위권으로 뛰어오른 ㄷ코인은 원화거래 비율이 65%를 넘는다. 한국을 제외한 지역에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는 가상통화라면 실제 가치보다 거품이 낀 것은 아닌지 의심할 필요가 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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