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인 줄도 모른 채 때린.. 나는 나쁜 부모입니다

박선영 입력 2018. 1. 20. 09:06 수정 2018. 1. 21.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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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부모의 눈물]

#1.

생활고ㆍ우울증에 아기 손찌검

“이러다 죽일 수 있겠구나” 두려워

아동보호기관에 전화해 스스로 신고

“부모교육 후 폭력 끊어… 구원받은 느낌”

아동학대는 악(惡)이 만들어내지 않는다. 부모의 무지(無知)가 몇몇 악조건을 만나면 독버섯처럼 자라날 뿐이다. 부모가 무엇인지, 무엇이어야 하는지 어디서도 보고 배우지 못한 준비 안 된 부모들.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교육이다. 류효진기자

아이가 심하게 토했던 그날이었다. 마룻바닥에 잔뜩 음식을 게워놓고 놀란 나머지 유나(가명ㆍ3)가 악을 쓰듯 울기 시작했다. 채 두 돌도 안 된 나이였다. 엄마 오송현(가명ㆍ33)씨는 토사물을 치워야 한다는 사실에 참을 수 없이 화가 났다. “네가 치워! 네가 치우라고!” 고함을 지르며 유나를 때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맨손으로 허벅지를 때렸다. 그러나 폭력에는 무서운 가속도가 내재돼 있다. 오씨는 벌떡 일어서 그 작은 아이의 배를 발로 차기 시작했다. 아이가 비명을 지르며 울어댔다.

‘아, 저 아이는 왜 저렇게 시끄럽지? 베란다 밖으로 던져버리고 싶다.’ 한번 그 생각을 하자 떨쳐지지가 않았다. 그 마음을 견디기가 너무 힘들다는 사실에 오씨는 미칠 듯한 두려움을 느꼈다. ‘이러다가는 내가 정말 아이를 죽일 수도 있겠구나….’ 떨리는 손으로 스마트폰을 들어 전화번호를 검색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이었다. “저를 좀 도와주세요. 멈추고 싶은데 도저히 안 돼요. 제가 제 아이를 죽일 것 같아요. 제발 저를 도와주세요.”

“아이를 때리고 나면… 후련했다”

오씨가 아이에게 손을 대기 시작한 건 생후 6개월부터다. 돈 문제로 남편과 다투느라 단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는데, 아기는 시끄럽게 울기만 했다. 5년간 연애한 남편과 결혼하면서 오씨는 단란하고 아기자기한 신혼생활을 꿈꿨다. 고등학교 때 친정엄마가 돌아가신 터라 다정한 시어머니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포항의 자동차부품 회사에서 생산관리직으로 일하는 남편은 착하고 성실했다. 하지만 전셋집 얻느라 1억1,000만원이나 빚을 지면서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월급은 적고, 빚을 갚고 나면 남는 게 없었다. 혼전임신으로 결혼 5개월 만에 유나를 낳았다. 뱃속 아기가 숨을 안 쉬어 응급 제왕절개를 해야 한다는데 수술비 걱정에 자연분만을 하겠다고 우길 정도로 경제적 스트레스가 심했다. 낳은 지 사흘 만에 황달로 대형병원에 사흘, 심장 이상 소견으로 대학병원 신생아집중치료실에 2주일을 입원했다. 오씨는 오로지 병원비 걱정뿐이었다. 다행히 아기는 건강했지만, 100만원이라는 병원비에 숨이 막혔다.

“생활고에 너무 쪼들리니까 아기한테 정이 안 가더라고요.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데, 나도 사랑받고 싶고 누군가 돌봐줬으면 좋겠는데 처절하게 혼자였으니까요.” 몇 달 후 시아버지가 쓰러지면서 시댁에서는 병원비를 좀 해줄 수 있겠느냐는 연락이 자주 왔다. 너희 집에 돈이 없어서 지금 이렇게 힘든 거라고 서로를 비난하며 남편과 매일 싸웠다. 가열찬 육탄전을 벌이다 오씨의 신고로 경찰서에 조사를 받으러 간 일도 있다.

그렇게 상처받고 나면 오씨는 유나를 때렸다. 사랑하는 마음이 들지 않는다고 해서 죄의식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세상에 나온 지 고작 6개월 된 아기를 때리고 처음엔 죄책감에 시달렸다. 하지만 그 시간은 짧았다. 오씨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솔직히 후련하더라고요. 애를 때리고 나면 뭔가 답답했던 마음이 다 풀어지는 거예요. 신랑과 싸우고 나면 애를 때려요. 시댁 어른들한테 안 좋은 소리를 듣고 나서도 애를 때려요. 죄책감요? 그거 정당화할 수 있어요. ‘쟤가 우니까 내가 그런 거야’, ‘쟤가 고집을 피우니까 내가 때린 거야’ 생각하면 돼요. 처음엔 그런 잘못을 저지른 제가 너무 견디기 힘들었지만, 후회와 폭력도 계속 반복되니까 둔해지더라고요.”

나중엔 아이를 때리기도 전에 때려야겠다 미리 결심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신랑이 나를 화나게 하면요, 그때 저는 이런 생각을 하는 거예요. ‘당신이 나를 화나게 했으니까 나는 애를 때려야겠다.’ ‘어, 니가 또 울어? 그럼 나는 너를 때려야겠다.’ ‘나는 부모니까 그럴 수 있지.’ 그리고 애를 때려요. 그러고 나면 드는 생각이 뭔지 아세요? ‘아, 나는 정말 시원해’였어요.”

오씨가 폭력에 몰입하고 있던 2016년 어느 날. 온종일 켜놓은 TV에서 각종 아동학대 사건이 쉴 새 없이 보도됐다. TV를 보던 오씨는 ‘어, 저거 나네?’ 무심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내가 저 사람들이랑 뭐가 다르지?’ 스스로 묻는데, 선뜻 답이 안 나왔다. ‘아, 멈추고 싶다. 제발 멈추고 싶다.’ 오씨는 누구라도 붙들고 털어놓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도 없었다.

#2.

아이 넷에 이유식 한번도 못 먹여

육아 아무것도 모른 채 홀로 육아

막 키웠더니 모두 정신불안 증세

“상담ㆍ교육받고 사랑 주는 법 노력”

부모의 역할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부모들에게는 처벌보다 교육이 더 큰 효과를 낸다. 교육은 부모의 폭력을 멈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류효진기자

“부모가 뭔지 제대로 알고 싶다”

오씨가 자신을 스스로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하자 그곳 직원 2명과 포항 문덕지구대 여자경찰관 1명, 포항 남부경찰서 형사 2명이 집으로 현장조사를 나왔다.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고, 사건 개요와 폭행 사유 등을 조사해갔다.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는 “엄마가 우울증이 있다”며 보건소에서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아볼 것을 권했다. 아동학대 혐의에 대해선 지속관찰 판정이 나왔다. “형사처벌로 갈 정도의 학대는 아니지만, 아이를 계속 때리는지 앞으로 살펴보겠다”고 했다. “키우기 많이 힘들면 양육을 포기하시겠어요?” 보호기관 직원이 묻는데 가슴이 철렁했다. 그건 결코 아니었다.

오씨는 “부모교육이라는 게 있다는데 그걸 받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대로 조사관들이 돌아가면 아무것도 달라지는 게 없을 것 같았다. 어떻게 아이를 키워야 하는지 방법조차 모른다. 부모로부터 제대로 사랑을 받아본 일도 없다. 준비 없이 부모가 된 오씨는 부모가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부모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있는지 간절하게 그 답을 알고 싶었다. 하지만 보건소에서 처방 받은 우울증약 4개월 분이 오씨가 얻은 전부였다.

“사람이 한 번에 달라지지는 않잖아요. 좋아지는 듯하다가도 상황이 안 좋아지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거죠. 그 난리를 겪고도 두 번이나 유나를 더 때린 거예요, 제가.” 아이를 안 때리기 시작한 지 몇 달쯤 됐을 때. 자아가 형성되기 시작한 유나가 “싫어 싫어” 고집을 부리는 반항기가 찾아왔다. 그런 시기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오씨는 참지 못했다. 아이를 밀면서 발로 차버렸다. 다시 전화기를 들었다.

“부끄러웠어요. 너무 부끄러워서 얘기 안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제가 숨기면 이대로 사건은 종결되고, 저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거잖아요.” 아동보호전문기관 직원이 집으로 찾아와 사건을 조사하면서 “다시 한번 이런 일이 있으면 경찰서로 넘겨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물었다. “뭐가 제일 필요하세요?” 오씨가 한번 더 부모교육을 받고 싶다고 말했다. 직원은 2만원만 개인 부담을 하면 받을 수 있는 부부상담도 권했다. 하지만 그 2만원도 여유가 없었다. 여성가족부 산하 건강가정지원센터의 ‘가족행복드림’ 사업에 연결됐다. 20회의 개인 양육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상담을 받을 동안 아이를 돌봐줄 아이돌보미 교사와 전문상담사가 집으로 찾아오는 식으로 상담이 진행됐다. 아이의 특성과 그에 맞는 양육법, 문제 상황 시 어떻게 아이에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전문가들이 눈앞에서 직접 보여주니 이해하기가 쉬웠다. 상담사가 내면으로 들어가는 철문을 열어줬다. 거기에 상처받고 웅크린 어린 부모가 있었다. 아기를 낳고 누구한테도 보호받지 못했다는 감정이 너무 많이 쌓여 있었다. 자기 자신을 자주 돌아다 봤다. 남편도 3회의 상담을 받았다. 이제는 서로가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아니까 예전처럼 다투지 않는다. 돈이 모자라도 ‘이렇게 해서 해결하면 될 거야’ 긍정적으로 해법을 모색한다.

“제가 유나한테 했던 짓은 학대예요. 무관심도 학대고, 사랑을 안 주는 것도 학대고, 미워하면서 관심을 갖는 것도 학대죠. 내 부모가 나한테 그런 짓을 했다고 생각하면…. 사랑의 매 같은 건 세상에 없어요. 그런데 그걸 몰랐죠. 부모교육을 받기 전에는요.”

오씨가 변하자 유나도 달라졌다. 슈퍼마켓에서 사탕을 사면 당장 까먹겠다고 울고불고하던 아이가 이제는 집에 가서 손 씻은 후 먹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슈퍼에서 집까지 한 시간이나 아이를 설득하며 “울음을 멈춰야만 엄마가 손을 잡아줄 거야” 단호하게 가르친 덕분이다. 아이는 지금 이런 시기니까 내가 이렇게 잡아주면 잘 될 거야, 자신감도 생겼다. 부모로서 그는 구원받았다.

“동네에 저 같은 엄마가 있어요. 그래서 그 친구한테 국가에서 무료로 상담해주는 곳이 있으니 한번 받아보라고 권했는데, 그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나는 지금 돈이 없는 게 문제지 상담을 못 받는 게 문제가 아니다.’ 내 마음이 치유되면 돈에 대한 것도 마음이 가라앉혀지더라, 받아보면 달라질 거다 했는데도 거부하더라고요. 경제적으로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은 어디에서 어떤 도움을 받아야 할지를 아예 몰라요. 알면 달라질 수 있는데, 변할 수 있는데….”

친정엄마나 언니 등 원가정의 도움을 받을 수 없고 친구나 이웃 등 사회적 연결망마저 끊어져 있다면, 취약계층은 육아에 대한 정보를 얻기 어렵다. 이들의 양육을 도울 공적 시스템이 필요하다. 게티이미지뱅크

네 아이를 낳고도… 이유식을 몰랐다

경남 소도시에 사는 김희란(가명ㆍ35)씨는 스물둘에 첫 아이를 임신, 남편과 혼인신고를 하고 함께 살기 시작했다. 중학교 1학년인 큰딸 밑으로 연년생 아이 셋을 더 낳았지만, 결혼식은 아직 올리지 못했다. 어린 시절 엄마와 연락이 두절돼 할머니 손에서 자란 김씨는 말 그대로 혼자 아이를 낳아 혼자 길렀다. 양육에 대한 정보나 지원을 누구로부터도 받지 못했다. 부부 모두 혼자 크다시피 한 외로운 형편이라 생기는 대로 아이를 낳았다. 하지만 남편과는 다툼만 늘어갔다. 아무것도 모른 채 집에 틀어박혀 홀로 연년생 네 남매를 키우는 동안 누구도 이유식을 먹지 못했다. 분유를 먹이다 생후 8개월쯤 되면 그냥 밥을 먹였다. 육아정보는커녕 육아고민을 토로할 친구조차 없었다.

“육아정보를 얻을 데가 없으니 어떻게 아이를 보살펴야 할지 알 수가 없었죠. 어떻게 안아야 할지, 씻겨야 할지조차 모르겠더라고요. 그냥 막 키웠어요. 예방접종 맞혀야 한다고 보건소에서 문자가 오면 그것만 간신히 맞히면서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인 김씨는 자활센터(취약계층에게 취업이나 창업 기회를 제공해 자립을 돕는 곳)에 취업해 현재 청소와 방역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사는 집은 손을 댈 수조차 없을 만큼 지저분했다. 양육과 가사노동의 압박, 경제적 곤궁으로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리느라 무엇 하나 제대로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제가 엄마 역할을 제대로 못 해서 네 아이 모두 우울과 정서불안 증세를 보였어요. 첫째는 사춘기라 저랑 매일 싸웠고, 둘째는 학교에서 왕따를 당했죠. 셋째는 초등학교 4학년, 넷째는 2학년 때까지 한글을 제대로 읽고 쓰질 못했어요. 다 제 탓인 것만 같았지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알 수가 없었죠.”

신체폭력만 학대가 아니다. 정서적ㆍ언어적 폭력도, 제대로 돌보지 않는 방임도 학대다. 초등 2학년에 욕설을 뱉으며 밤 8시가 넘도록 귀가하지 않은 둘째를 엉덩이에 피멍이 들도록 때린 적이 있다. 5학년이 돼서야 회초리를 내려놨지만, 김씨는 그걸 학대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의 매’였고, 효과도 있었다고 믿는다. 하지만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방치한 얘기를 하면서는 자꾸 울먹인다.

“자활센터에서 부모교육을 한번 받아보라고 권하더라고요. 어떤 제도가 있고,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애만 낳은 거예요, 저는. 아이들 우울증은 청소년 상담 바우처를 통해 치료를 받으러 다니고 있고, 저도 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 10회짜리 양육상담을 받기 시작했어요.”

김씨는 아이들을 잘 키우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게 가장 답답하고 괴로웠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사랑을 주는 방법을 그는 몰랐다. 네 아이를 키우며 누구에게도 사랑한다는 말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징징대면 짜증을 내며 소리를 질렀고, 엄마의 생각을 강요하고 명령했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무관심했다. “저는 나쁜 엄마였어요.”

교육과 상담은 김씨의 가정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전문상담사 선생님이 오고 난 후 엄마가 청소를 깨끗이 하려고 한다’며 아이들이 엄마를 칭찬한다. 매일 다투던 남편은 ‘나와 결혼하고 아이들 엄마가 되어줘 고맙다’는 놀라운 말로 김씨를 울렸다. 부모 됨이 무엇인지 몰라 미로를 헤매는 어려운 사람들끼리 모여 서로를 지지하고 공감해주는 센터의 자조 모임에도 김씨는 열심히 참여한다.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해서 부모의 역할을 포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자활센터에서 번 돈으로 자부담비 2만원을 지불하며 아이 우울증도 상담 받고 있다. “아이 성향을 몰랐어요. 아이마다 다른데 어떻게 그 감정을 알아봐 주고 공감해주는지 그걸 몰랐어요. 사람이 갑자기 변하지는 않으니까 여전히 무덤덤하긴 하죠. 그래도 노력하고 있어요. 상담 받고 오면 ‘수고했다, 애썼다’ 머리라도 쓰다듬어주면서요.”

#3.

장애 의심 아들 7년간 집에서만

겨울에 하의 안 입고 나와 경찰 신고

반지하 집 처참할 정도 위생 불량

전문 상담 받으며 한없이 눈물만

신체적 폭력만 아동학대가 아니다. 아이의 성장과 발달을 저해하는 방임도 학대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게티이미지뱅크

7년간 집에만… 방임도 학대다

지난해 2월 한지영(가명ㆍ32)씨는 경찰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둘째 동훈(가명ㆍ7세)이가 추운 겨울 하의도 입지 않은 채 동네를 배회하는 게 순찰 중이던 경찰의 눈에 띄어 아동방임 혐의로 신고 접수된 것이다. 사실혼 관계이던 남편과 헤어져 홀로 아이들을 양육하는 한씨는 그날 외출 중이었다. 외할머니는 동훈이를 재워놓고 목욕탕에 갔고, 낮잠에서 깬 동훈이는 혼자 밖으로 나가 거리를 서성였다.

아이는 말을 하지 못했다. 경찰과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관계자들이 이것저것 묻는데도 눈을 제대로 맞추지 않았다. 자폐성 장애가 의심됐다. 엄마 한씨는 서너 살이 되도록 말을 하지 못하는 동훈이를 보며 이미 장애를 의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린이집도 유치원도 보내지 않고 그냥 아이와 집에서만 지냈다. 혹시 교사나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지 않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현장조사를 위해 찾아간 동훈이네 반지하 집은 처참했다. 내외부의 위생상태가 동훈이에게 위험요소가 되기 충분할 정도로 불결하고 불량했다. 물리적 방임에 해당했다. 아이가 만 0~5세에는 어린이집에 가고, 3~5세에는 유치원에 간다는 일반적 상식이 한씨에게는 없었다. 동훈이의 장애가 걱정돼도 어디에 가서 뭘 해야 하는지를 전혀 몰랐다. 위험하고 불결한 집 안에만 묶여 지내며 한씨는 동훈이를 방치했다. 22세에 첫 아이를 낳고 10년 가까이 집에서만 지내며 사회적 관계망도 전혀 없이 살아온 탓이다. 전문상담사 앞에서 눈물만 쏟으며 한씨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기관의 공적 개입이 시작됐다. 병원 진료를 통한 동훈이의 장애 진단, 한씨의 자활근로, 주민센터의 벽지 및 창문 교체를 비롯한 청소 서비스, 난방비 긴급 지원 등 다양한 복지 서비스와 연결됐다. 특수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 동훈이는 언어 및 심리치료를 받으며 옹알이를 시작했다. 기초적 행동양식을 하나씩 배워나가기 시작한 덕분에 이젠 식당에서 제자리에 앉아있기가 가능해졌다. 재학대를 방지하기 위해 초록우산의 홈케어플래너가 주 1회 집으로 찾아와 가족 구성원별로 6, 7회씩 개별 심리상담도 진행하고 있다. 자폐 아동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양육에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에 아동의 발달ㆍ재활 지원, 양육정보 및 기술 코칭 등이 제공된다.

동훈이는 언어치료를 받으며 점점 외향적으로 바뀌고 있다. 한씨는 그게 너무 기쁘고 감격스럽다. 최근에는 재단의 지원으로 생애 첫 가족사진을 촬영하고 너무 행복하다. 몰라서 저질렀던 방임, 그것이 학대라는 인식. 반지하 집에 걸린 가족사진 액자를 보며 뒤늦게나마 좋은 부모가 되겠다고 다짐한다.

아무 준비 없이 덜컥 부모가 되는 사람들에게는 양육에 대한 이해를 돕고 지원해주는 부모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 민간시장에 맡겨진 이 역할을 국가는 더욱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처음부터 부모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온 마을이 아이 하나를 함께 키우던 대가족 중심의 공동체 사회도 아니다. 어린 나이에 아무것도 모르고 아기를 낳는다. 경제적으로 빈곤하고, 양육을 지원해줄 사회적 관계망도 단절돼 있다. 아기는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어려운 존재다. 저절로 좋은 부모가 되기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 지난해 11월 발간된 보건복지부의 ‘전국아동학대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한 해 신체학대, 정서학대, 성학대, 방임 등으로 아동학대 판정을 받은 사건은 1만8,700건이었다. 이 중 77.9%(1만4,563건)는 아동이 주양육자에 의해 지속적으로 보호받는 ‘원가정보호’ 처분을 받았다. 교육과 상담치료가 없다면, 이 아이들이 다시 학대당하지 않을 가능성은 과연 얼마나 될까.

박선영 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박재현 기자 remake@hankookilbo.com

오희수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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