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美를 이끄는 거인들, 그리고 동성결혼 합법화

한대수 음악가 겸 사진가 겸 저술가 2018. 1. 20.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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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수의 사는 게 제기랄]
환하게 웃는 미국의 여성 동성애 커플. 2015년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로 미국 전역에서 동성 결혼이 합법화됐다. /한대수 제공

12년 만에 뉴욕에 돌아오니 놀라운 일이 한둘이 아니다. 월세가 2.5배나 뛰었다. 생활비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엄청난 법 하나가 통과돼 미국 사회 구조를 바꿔놓았다.

동성결혼이 합법화됐다. 인류 역사상 엄청난 사건이다. 1968년 대학을 중퇴하고 뉴욕에서 사진 학교에 다닐 때 '세런디피티3'라는 식당에서 일했다. 면접 보는 날을 잊을 수 없다. 요리사 조수를 뽑는데 지원자는 25명, 나 빼곤 전부 젊은 백인이었다. 지금도 살아있는 미스터 브루스와 고인이 된 미스터 호는 눈을 크게 뜨면서 "너 요리는 잘하니?" 물었다. "잘은 못해도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답했더니 이들은 "You are hired!(당신 합격이야!)" 소리치며 면접을 기다리던 나머지를 돌려보냈다. 알고 보니 아주 고급 음식점이었다. 재클린 오나시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당시 인기 절정의 페이 더너웨이, 앤디 워홀 그리고 내 기억에 영원히 남은 존 레넌과 오노 요코가 단골이었다.

홀에는 전부 미남 웨이터뿐이었다. 알고 보니 브로드웨이 배우 아니면 영화배우 지망생이었다. 이들은 평범하게 인사하는 게 아니라 "달링" 하며 입에다 키스했다. 접시를 닦던 푸에르토리코 친구 티코에게 "여기 웨이터들 참 지나치게 친하네?" 묻자 그가 말했다. "이 바보야, 쟤들 마리콩(동성애자를 뜻하는 스페인어)이야!" 당장 그만둬야지! 생각했지만, 근무시간도 매우 좋고 월급도 후한 곳이었다. 뉴욕 상류사회를 경험하는 특권이 있었다.

동성애자의 삶을 부러워하지는 않았지만 이해하게 됐다. 파티 초청도 받았다. 무엇보다 음악이 죽여줬고 연꽃을 물 위에 띄운 파티장 분위기는 미(美)의 극치였다. '이야! 이런 미적인 감각을 가지고 동성끼리 사랑을 나누다니?' 하고 무엇이 정상인지 아닌지 되묻게 됐다.

여러 훌륭한 게이 로커들과 친구가 됐다. 엘튼 존, 조지 마이클, 퀸의 프레디 머큐리, 보이 조지, 알이엠의 마이클 스타이프, 리키 마틴…. 나의 첫 마누라가 뉴욕 패션계 중역이었는데 패션은 90%가 게이다. 칼 라거펠트, 이브 생로랑, 잔니 베르사체, 마이클 코어스, 캘빈 클라인, 발렌티노, 조르지오 아르마니, 끝이 없는 건 여기도 마찬가지다.

미술계도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부터 앤디 워홀까지 게이였다. 미국 석유 산업의 거인 진 폴 게티부터 현재 애플 CEO인 팀 쿡도 그렇다. 미국의 문화와 경제를 이끄는 거인들이라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되지 않았나 싶다.

미국은 과거 60년 동안 세계의 문화 취향을 바꿔놓았다. 만약 미국의 동성결혼 흐름을 따라간다면 세계 분위기는 확 달라질 것이다. 인터넷 혁명 이후 세상은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이해도 하기 전에 변화해버렸다. 열 살짜리 딸을 키우는 일흔 살 노인의 걱정이다.

2주 전 뉴욕에 '폭탄 사이클론'이라는 눈폭풍이 왔다. 모든 학교가 문을 닫았다. 딸 양호 보고 "내일은 이 눈폭풍이 끝났으면 좋겠다" 하니 양호는 "아빠, 희망은 답이 아니야(Hope is not the answer)"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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