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존엄한 마지막' 누가·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엄주엽 기자 2018. 1. 1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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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죽음이 삶이 되려면 / 허대석 지음 / 글항아리

내달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 커져

가족 대리권·의료진 결정 등

한국적 상황속 시행착오 예상

환자·보호자·의료진이 겪을

법과 문화의 충돌 미리 짚어

1990년대 이전만 해도 10명 중 9명은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집에서 임종을 했다. 외지에서 사망하는 걸 ‘객사’라며 극히 꺼렸고, 부모의 임종을 하지 못하는 걸 ‘불효’로 여겼다. 그런 문화가 바뀐 건 순식간이었다. 2014년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10명 중 7∼8명은 병원에서 죽음을 맞는다. 하지만 같은 조사에서 한국인의 10명 중 6명은 병원보다는 가정에서, 2명은 호스피스에서 생을 마감하기를 바라고 있다. 서너 개의 호스를 몸에 삽입한 상태로 ‘차가운’ 병원에서 세상을 하직하는 걸 좋은 임종으로 보지 않는 심성은 여전하다.

연명의료는 1960년대 이후 급발전한 심폐소생술과 인공호흡기 같은 의료과학의 ‘성과’다. 애초 급성질환이나 사고에 의한 외상으로 생명이 위독한 환자를 구하기 위한 연명장치들이 자연스레 임종을 앞둔 만성질환자에게도 적용되면서부터다. 의료산업과 병원의 수입은 늘리겠지만, 사람들은 고통스럽게 생명을 연장하며 죽음을 맞는다. 이를 ‘존엄한 마무리’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다음 달 4일부터 ‘연명의료결정법’(임종과정에 있는 환자가 연명의료의 시행 여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이 시행된다. 의사나 가족의 판단에 내맡겨졌던 데에서, 죽음을 앞둔 사람이 ‘존엄한 마무리’를 할 수 있는 자기결정권이 커지게 됐다. 30여 년간 서울대병원 교수로 재직하며 많은 환자의 죽음과 그 과정에서 연명치료를 둘러싼 무수한 갈등을 지켜봤던 저자는 1998년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를 창립해 회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저자는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면서 환자와 보호자, 의료진이 겪게 될 고민과 법의 미비점을 짚어보고, 더 나아가 사회적으로 새로운 죽음문화에 대한 합의점을 찾을 것을 제안한다.

책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서구에 비해 연명의료 의존비율이 더 높다. 병원에서 죽음을 맞는 비율이 미국은 10명 중 1명, 영국은 절반 정도로 우리보다 훨씬 낮다. 나머지는 집이나 호스피스 시설 등에서 최후를 맞는다. 2004년 국내 17개 대형병원에서 암으로 사망한 3750명의 환자를 조사한 결과, 그중 30%는 죽기 한 달 전까지 항암치료를 받았다. 미국의 10% 수준과 대조된다. 2009년 국내의 중환자실을 갖춘 256개 의료기관에 대한 조사에 따르면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 1500여 명이 연명장치에 의존해 생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는 또 다른 과잉진료를 낳아 유족이나 국민의료보험의 부담을 높인다.

연명의료결정법 시행을 코앞에 두고 있지만, 많은 사람이 이 법의 존재를 모르거나 심지어 의료진조차 충분히 숙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사회적으로도 여전히 ‘존엄사’ 대 ‘소극적 안락사’의 논쟁은 그치지 않고 있다. 저자는 ‘호스피스·완화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이라는 이 법의 긴 이름을 줄여 ‘연명의료결정법’으로 부르다 보니 호스피스와 연관성을 모르는 이들이 많다고 지적한다. 만성질환자가 남은 생을 의미 있고 편안하게 마무리하려면 호스피스 제도가 확립돼야 하고, 그러려면 연명의료 중단이 전제돼야 한다. 이미 2017년 8월부터 보건복지부가 정한 질환의 말기 환자가 호스피스 병상에 입원했을 때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연명의료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이 법의 시행은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당사자가 연명의료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밝히지 않는 사례가 많은 데다 가족이 대리 결정할 경우 서로 갈등을 빚기도 한다. 환자가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려면, 앞서 환자에게 불치병임을 알려야 하는데 우리 문화에서 이 또한 쉽지 않다. 환자가 자신의 임종과 관련해 병의 진행 상태를 알고, 연명의료와 완화의료 문제까지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만 우리의 ‘죽음의 질’은 한 단계 높아질 수 있다. 가족이 퇴원을 강행해 환자가 사망하자 담당의사에게 살인방조죄가 적용돼 실형이 선고된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 이후 연명의료 문제에서 방어적 태도를 보이는 의료진의 문제도 있다. 자기결정권에 대한 법이기는 하지만 주로 의료진과 가족이 상의해서 결정하는 만큼 법과 문화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좁혀 나갈 것인가가 풀어야 할 숙제다.

연명의료결정법은 환자의 의사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면 문제가 없으나, 그렇지 못할 경우 복잡해져 현실적인 적용이 어렵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우리나라 법률은 환자 본인이 직접 작성한 서류만 유효하다고 정의하고 있어, 가족 중심 문화가 강하면서도 1∼2인 가구가 50%가 넘는 현실에서 연명치료 중단을 위한 법적 서류를 갖추는 데 어려움이 있다. 또 호스피스 신청은 말기를 기준으로, 연명의료 결정은 임종기를 기준으로 하게 했지만, 이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 의료진으로서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저자는 “연명의료 문제는 법을 시행하고 단속한다고 해서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며 “어떤 모습으로 삶을 마무리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사회가 함께 생각하고 새로운 규범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바뀔 것 같지 않던 ‘매장’ 장례문화가 짧은 시간에 ‘화장’으로 바뀐 것처럼, 사람들의 규범이 바뀌면 임종문화도 연명의료에서 호스피스로 자연스럽게 변화할 수 있다. 책은 병원에서 벌어진 다양한 사례와 법적 다툼 등을 소개하고 있다. 256쪽, 1만4000원.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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