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때릴수록 강남 세졌다.. 4억 오른 은마, 매물 2개
거래량도 증가하면서 가격 상승세 계속
외지인 투자 늘고 '갭 투자' 성행
정부 규제 엇박자로 수요 부채질
당정, 보유세 인상 등 본격 검토
"투기 억제 위주보다 강남 공급 늘려야"
정부가 "강남 집값을 잡겠다"며 꺼낸 잇단 고강도 대책이 강남권으로 수요 쏠림을 부채질하며 시장 불안을 가중한다.
━ 1월 강남권 아파트값 상승률, 역대 최대 전망
매물이 적은데도 거래량은 크게 늘었다. 서울시 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아파트 거래 신고 건수는 총 1865건으로, 전달보다 37% 급증했다. 이달 들어서도 17일까지 1040건이 거래돼 2006년 이후 1월 기준 최다인 2011년 1395건을 넘을 전망이다.
가격이 뛰면서 수도권이나 지방 등 외지인의 '원정 투자'가 늘어나는 추세다. 8·2 대책 전인 지난해 6~8월과 직후인 9~11월을 비교하면 서울 이외 거주자의 강남권 아파트 매입 건수 비중이 21%에서 23%로 높아졌다. 특히 송파구의 서울 외 매입자 비중은 20% 선에서 28%까지 치솟았다. 강남구 개포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지방 주택 경기가 안 좋다 보니 지방 '큰 손'들이 집값이 오를만한 강남으로 눈길을 돌리는 것 같다"며 "이들은 매물이 나오기만 하면 가격 흥정도 하지 않고 바로 사버린다"고 말했다.
강남권 아파트 매입 건수 상당수는 전세보증금을 지렛대 삼아 집을 사는 '갭 투자'다. 상당한 자금을 가진 수요자가 대출을 받지 않고 매매가격과 보증금 간 차액을 자기 돈으로 보태 사들이는 것이다. 강남권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과 전세보증금 간에 3억~5억원 차이 난다. 재력가가 아니면 뛰어들기 힘들다.
━ '규제 악재'가 호재로 작용
전문가들은 정부의 부동산 규제책이 역설적으로 강남 선호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한다. 정부 대책이 서로 엇박자를 내면서 시장이 정부 기대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오는 4월 부활하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重課) 제도가 대표적이다. 현재는 주택 보유 수와 관계없이 양도차익에 따라 6~40%의 양도세가 매겨진다. 하지만 4월부턴 2주택자에 기본세율에 10%포인트, 3주택 이상 보유자에게는 기본세율에 20%포인트의 세율을 더 부담시킨다. 2주택 보유자는 양도차익의 최대 50%, 3주택 이상은 60%의 세금을 낼 수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이로 인해 다주택자가 주택 여러 채를 정리하고 한 채만 남기려는 경향이 강해졌다는 점이다. 이왕이면 집값 등락에 따른 리스크(위험)가 작은 강남 아파트는 유지해 정작 강남권 매물은 별로 늘지 않는다고 분석한다.
어기다 수요는 더 강남권으로 향한다. 어차피 한 채만 보유해야 한다면 집값 상승 기대감이 큰 강남권을 찾는 것이다.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재건축 부담금제) 시행으로 강남권 주택 공급이 줄 것이라는 우려도 수요를 부채질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이남수 신한금융투자 부동산팀장은 "수억원을 세금으로 내면서 재건축 사업을 하려는 곳은 거의 없을 것"이라며 "사업을 중단하는 곳이 늘면, 장기적으로 주택 공급이 줄어들어 강남권 아파트의 희소가치만 높여주는 격"이라고 말했다.
대출 규제 역시 강남권에선 '약발'이 안 먹히고 있다. 정부는 8·2 대책을 통해 서울에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을 각각 40%로 낮추고 강남권 등 투기지역 내에서는 주택담보대출을 1가구당 1건으로 제한했다.
하지만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갭 투자자에게는 별다른 영향이 없는 실정이다. 서초구 반포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대부분 전세를 주고 집을 사는 데다, 자금 여력이 풍부한 수요자가 많아서 그런지 대출을 받지 못해 집을 못 사는 분위기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주거복지 로드맵'을 발표하며 5년간 100만 가구를 공급하겠다고 했지만 임대주택 위주여서 시장에 호소력이 떨어졌다.
━ 정부 "투기가 원인...대책 검토"
정부는 시장에 경고 메시지를 주면서도 세부 대책 마련을 서두르지는 않고 있다. 당장 쓸 카드가 마땅치 않고 섣부른 대책이 오히려 시장에 기름을 부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정책당국 관계자들이 한결같이 “8·2 부동산 대책 효과를 좀 더 지켜봐야 한다”며 속도 조절에 나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와 정치권 일각에서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가 시행되는 4월이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때까지도 강남권 부동산 시장 과열이 진정되지 않으면 정부가 강경 모드로 전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와 여당이 준비하고 있는 '빅카드'는 보유세 인상이다. 강남권과 다주택자를 겨냥해 주택 보유 부담을 늘려 수요를 꺾으려는 목적이다.
━ 종부세 상향 통한 보유세 인상 유력
정부와 여당은 1월 말 출범할 예정인 조세재정개혁특별위원회(이하 조세특위)에서 보유세 인상을 본격적으로 다룬다는 입장이다. 다양한 방안이 가능하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간사인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보유세 인상과 관련된 여러 시나리오를 놓고 정교하게 다듬는 중”이라고 말했다.
현재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것은 재산세보다 종합부동산세(이하 종부세)를 손 보는 것이다. 세금 산정 기준금액을 올리거나 세율을 높이면 된다.
공시가격의 일부만 세금 산정 대상으로 삼는 공정시장가액비율을 폐지하거나 상향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공정시장가액비율은 박주민 민주당 의원이 발의를 준비 중인 종부세 개정안에도 이런 내용이 담겼다. 발의안은 종부세 납세자의 세 부담을 덜어주는 공정가액비율(현행 80%)을 폐지하고, 과세표준 구간에 따라 현행 0.5~2%인 종부세율을 0.5~3%로 올리는 방안이 담겼다.
새로운 세목 신설을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민주당 관계자는 “일각에서 말하는 부유세 개념은 아니다”면서도 “완전히 새로운 세목이거나 새로운 성격의 세목이 나올 수는 있다”고 에둘러 말했다.
2005년 폐지돼 재산세와 통합된 종합토지세 개념을 부활해 강남권과 투기과열지구 같은 특정 지역에만 적용하는 방안도 아이디어 차원에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시중 매물 늘려 '매물 기근' 해소해야"
시장에서는 투기로 보는 정부의 진단이 잘못됐다는 비판이 많다. 잇단 정부 대책에도 공급 부족이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어서다.
보유세 인상 같은 또다른 수요 억제책에 대한 시장 반응은 회의적이다. 한 시중은행 PB센터장은 “종부세율을 올려봤자 수백만 원 더 올라가는 정도인데 강남 다주택자들은 꿈쩍 않을 것”이라며 “집값이 더 안 오르면 그냥 갖고 있다가 나중에 자식에게 물려주면 그만이라는 고객도 있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가 보유세 강화를 위해 종합부동산세를 2005년부터 시행했지만 종부세 도입 후 강남권 집값이 더 많이 올랐다.
수요 억제에 주력하기보다 공급 확대로 공급과 수요의 '병목현상'을 풀어야 한다는 주문이다.
재건축 조합원 물량 거래 제한도 느슨하게 할 필요가 있다.
━ "안정적인 주택 공급 필요"
중·장기적으로 강남권 신규 주택공급 부족에 대한 불안감을 풀 필요가 있다. 정부는 신규 공급이 충분하다고 하지만 시장 불안감은 크다.
국토부 관계자는 “올해 강남권을 포함한 강남 4구 아파트 준공 물량이 전년 대비 76%(1만600가구) 늘고 분양 물량도 지난 5년 평균보다 30%(1만7000가구) 많다”고 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강남은 핀셋 규제를 할수록 더 튀어 오르는 경향이 있다”며 “강남 부동산 시장을 잡을 단기적 방법은 사실상 없다”고 말했다. 심 교수는 “강남은 물론 강남 인근에 안정적인 주택을 공급하는 중장기 대책을 포함해 종합적인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윤·황의영 기자 pin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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