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아르바이트 하면서 올림픽 준비했는데"..총리님, 아이스하키 좀 아세요?

최고운 기자 2018. 1. 19.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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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선수가 23명인가 이럴 텐데 북한 선수가 우리 선수의 쿼터를 뺏어가는 것이 아니라 선수단 규모가 커지는 것으로 지금 협의가 되고 있는 거 아니겠어요? (우리 선수)23명+(북한선수)5명이 될지 뭐가 될지 모르겠는데요. 우리 선수들의 출전 기회가 박탈되는 것은 아니다. 이 말씀을 분명히 드리고요."

"여자아이스하키가 메달 권에 있거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여러분 잘 아실 겁니다. 세계랭킹이 우리가 22위, 북한이 25위 이런 선일 텐데요, 그런 선수들 중에서 역량이 빼어난 선수는 북한선수라 하더라도 1분이 될지 또는 1분씩 여러 번 뛸게 될지 모르지만 그렇게 섞어서 뛴다는 거기 때문에 선수들께서도 그다지 큰 피해의식이 있지 않고 오히려 선수들로서도 좋은 기회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있다고 듣고 있습니다."

 
-이낙연 총리의 사흘 전(16일) 간담회 中-

여자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 문제가 뜨겁습니다. 단일팀 문제를 다룬 기사에 수많은 댓글이 달리고,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도 단일팀 반대 청원이 등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정치부 기자이지만, 한때 아이스하키 국가대표가 되는 어쭙잖은 꿈을 꾸었던 사람으로서 정말 우리 선수들의 출전 기회가 박탈되는 것은 아닌지, 역량이 뛰어난 북한 선수가 오면 우리 전력에 도움이 될지 궁금해졌습니다. 아마 다들 궁금하시겠죠. 단일팀 구성 결정만 났을 뿐 선수 구성이나 선발 등에서는 정해진 건 없지만 현직 아이스하키 선수와 지도자에게 질문을 던져봤습니다.

- 정부에서는 우리 선수를 빼지 않고 예를 들어 23명 엔트리에 북한선수를 더 추가해 28명이 되는 방식으로 협상을 한다고 해요.

= 여자아이스하키 팀의 최종 엔트리는 23명입니다. 이 중 3명은 ‘골리’(*아이스하키에서는 골키퍼를 골리라고 지칭)고 20명이 공수를 주고받는 플레이어입니다. 5명씩 4개 조로 나뉘어 번갈아 투입합니다. 체력 소모가 심하기 때문이죠.

정부 바람대로 예외를 인정받아 28명이든 그 이상이든 23명을 넘기는 엔트리가 된다고 치면, 일단 골리 3명을 제외하고 5명씩 5조를 편성하는 방안을 가정해볼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와 붙을 다른 나라 팀이 그걸 용납할까요? 우리 조에는 일본도 있어요. ‘4교대’가 ‘5교대’로 되면 교대 시간이 길어지고, 그만큼 선수들이 덜 지칩니다. 그걸 상대편에서 과연 공정한 경기라고 여길지, 저는 회의적입니다.

또 우리나라 선수 입장에선 5개조가 되면 출전 횟수가 줄어드는데 그게 달가울 리 없잖아요? 그럼 다른 나라도 똑같이 28명으로 맞추면 되지 않느냐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겠죠. 선수 선발을 마친 지가 언젠데 이제 와서 추가로 선수를 뽑고 훈련을 통해 손발을 맞추려고 하겠습니까.

정부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규정대로 23명의 엔트리로 가면 우리나라 선수 중에는 결국 경기에 못 뛰는 선수가 생길 거예요. 1조부터 4조 사이에 북한 선수를 한 명씩 끼워 넣든, 아니면 한 조를 북한 선수만으로 편성하든 어쨌든 북한 선수를 출전시켜서 단일팀을 이룬 이유를 보여줘야 하니까요.

- 엔트리 인원이 늘어나면 모두 벤치에 들어갈 수는 있나요?

= 국제연맹 규정에 벤치에 들어가는 인원은 30명입니다. 이 중 선수는 22명이고요. 감독, 코치, 트레이너 등을 포함해 임원으로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나머지 8명입니다. 엔트리가 늘어날지도 장담할 수 없지만, 늘어난 인원이 모두 벤치에 들어갈지, 아니면 임원을 줄이고 플레이어를 더 넣을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 북한 선수들을 엔트리에 포함만 시키고 출전을 시키지 않을 수 있을까요?

= 감독 입장에서 북한 선수들을 아예 출전 안 시킬 수 있겠어요? 그럼 우리 선수 중에서는 누구를 뺄 것인지 고민하겠죠. 아이스하키는 국가별 실력 차를 감안해 캐나다, 미국, 러시아, 핀란드 이 네 나라가 A조입니다. B조는 스웨덴 스위스 일본 한국이죠. A조 1,2위는 4강으로 먼저 갑니다. A조 3,4위와 B조 1,2위가 플레이오프를 치러 나머지 4강 진출 팀을 가립니다.

총리 말대로 우리 팀은 올림픽 메달권이 아니니 예선 탈락할 공산이 크고, 결국 3게임으로 올림픽을 마치겠죠. 올림픽 무대만을 바라보고 몇 년을 피땀 흘린 선수들인데, 무장(*아이스하키를 하려고 착용하는 각종 보호대 등 장구)도 못 입어보고 퇴장하면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 북한 선수들이 오면 2월로 예상되는데, 경기력 측면에서는 도움이 될까요?

= 2월 9일부터 대회 시작인데 언제 온다는 거죠? 아이스하키는 하루 이틀 호흡 맞춘다고 되는 경기가 아니에요. ○○○라는 선수가 있으면 그 선수가 ‘레프트(왼쪽)’인지 ‘라이트(오른쪽)’인지 찰나에 떠올려야 패스를 찔러줘요. 늘 예상된 대로만 된다면 센스가 있는 선수들은 새로 만나는 선수들과도 잘 적응해 문제 없이 경기를 치르겠죠. 그런데 아이스하키는 그런 경기가 아니잖아요. 수시로 이뤄지는 교체 상황에서 기량이 뛰어난 NHL 선수들도 패스 미스가 빈번하게 나옵니다. 사실상 머리가 아닌 몸으로 기억해 동물적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북한 선수가 아니라 제아무리 잘하는 선수가 온다 한들 짧은 시간에 호흡을 잘 맞추는 게 될 것 같지 않아요.

- 남북 선수가 호흡을 맞추기 위한 최소한의 시간은 얼마나 될까요?

= 고등학교 선수들도 한 시즌 준비하려면 합숙훈련 한 달은 기본이에요. 또 3∼4개월 시합해도 정확한 패스가 나오기 힘들어요. 적어도 6개월 정도는 돼야 손발이 맞는다고 봐요.

- 새라 머래이 여자아이스하키 감독도 ‘충격적’이라는 말을 했어요.

= 지도자 입장에서는 짜증날 거예요. 우리나라는 스웨덴이든 일본이든 한 게임이라도 이기려고 준비하는 거예요. 안방에서 한 게임이라도 이기고 싶은 거죠. 일본도 나가노 올림픽 때 12팀 중 11등 했어요. 순위 결정전에서 한 번 이겨서 아시아 팀으로는 최고의 성적을 낸 것이거든요. 심지어 여자팀은 2월 초에 스웨덴과 인천에서 연습게임을 해요. 북한 선수들이 오면 그때부터 투입할 수 있을까요?

- 아이스하키 하는 사람들은 정부의 결정에 어떤 반응이에요?

= 기분 좋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아이스하키가 비인기 종목에 메달과 거리가 먼 종목은 맞죠. 그래서 총리 말에 빗대 이런 얘기도 해요. 앞으로 메달과 거리가 먼 종목은 다 단일팀 구성하면 되겠다고. 북한이 자력으로 월드컵 축구 본선에 나가지 못하면, 남북 단일팀 구성해 나가면 되겠다고.

- 단일팀 구성으로 국민적 관심을 받고, 실업팀이 생기면 장기적으로 이익 아닌가요?

= 대기업에 압력을 넣어서 남자도 실업팀 하나 더 만들고 여자도 실업팀 두 개 정도 만들 수 있다면 값진 희생이라고 위안 삼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렇지만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할까요?

정부가 남북 단일팀을 구성한 이유는 이낙연 총리의 말에서 충분히 드러납니다. 북한과 대화의 통로를 확보하는 게 긴요하다는 겁니다. 거기서 얻는 것은 무형이라도 소중한 만큼 국민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반대 목소리가 높은 걸까요? 우리 국민은 그 소중함을 몰라서일까요? 그보다는 ‘공정성’을 훼손한다고 보기 때문일 겁니다. 남북 단일팀 구성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1991년 세계 탁구선수권 대회를 비롯해 여러 번 있었습니다. 27년 전에는 감동으로 다가왔었죠. 그러나 이미 핵을 보유한 북한이 이번 단일팀 구성으로 갑자기 달라질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단일팀 구성으로 우리가 뭘 얻을지 분명치 않아 보이는데, 실업팀 하나 없는 상황에서 올림픽 출전만 바라보고 뛴 우리 선수들의 출전 기회가 줄어들 수 있다니 이걸 누가 올바른 결정이었다고 받아들이겠습니까?

올림픽은 스포츠 제전입니다. 우리가 올림픽을 보면서 반칙에 함께 눈물을 흘리는 건 그 순간을 위해 셀 수 없는 시간을 바쳐온 선수의 마음을 이해하기 때문이겠죠. 여자아이스하키 팀 중에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뛰거나 클럽팀에서 용돈벌이를 하면서 운동해 온 선수들이 있습니다. 선수촌에 들어가서 한 달에 받는 훈련비는 100만원 남짓인데도 올림픽 하나만을 보며 버텨온 선수들입니다. 올림픽은 당연히 평화적으로 치러야겠지만, 평화올림픽이 곧 정치에 이용되어도 좋다는 말은 아닐 겁니다. 북한이 좋든 싫든, 올림픽을 목전에 둔 선수들을 배려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했으면 합니다.

"지금부터라도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 하겠다던 문재인 정부의 국정철학을 실천하길 바란다."  (국민의당)
                                                                 
"역사적 명장면 연출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 이거야말로 전체주의적 발상." (바른정당)

"오랫동안 올림픽에서 성과를 내겠다고 땀을 흘려온 선수들이 단일팀 구성 과정에서 소외되거나 배제돼 상실감을 느낄 가능성이 크다." (정의당)          

최고운 기자gowoo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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