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노무현 소환, 그리고 죽음.. 앙금의 싹, 9년전부터 자랐다

이민석 기자 2018. 1. 19.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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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대통령·MB 충돌]
文대통령·MB 악연의 시작.. 盧 전 대통령 수사부터 장례까지
박연차 비자금 640만달러 관련 권양숙 여사·자녀들까지 줄소환
盧 전 대통령 투신으로 수사 끝나..
당시 변호·상주 맡았던 文대통령 "너무 참기만 했던 게 후회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이명박 전 대통령을 향해 '분노' '모욕' 등의 표현을 썼다. 그 배경에는 '2009년의 악연(惡緣)'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5월 검찰 수사를 받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저 인근 산에서 투신해 사망했다. 문 대통령은 자신의 책 '운명'에서 "노 대통령의 죽음은 정치적 타살이나 진배없었다"고 했다.

노 전 대통령 수사는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 대한 세무조사가 발단이었다. 박 전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의 '후원자'로 불렸던 인물이다. 2008년 중반 '국세청의 특수부'로 통하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은 태광실업 세무조사를 통해 비자금 조성, 세금포탈 혐의를 잡아내 검찰로 넘겼다. 그해 12월 검찰은 조세포탈 혐의 등으로 박 전 회장을 구속했다.

이후 검찰은 그 사건을 '박연차 정관계 로비 의혹' 수사로 확대했다. 그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 가족에게 전달됐다는 '640만달러'와 관련된 박 전 회장 진술이 나왔다고 한다. 핵심은 그 돈이 전달될 때 노 전 대통령이 알았는지 여부였다. 박 전 회장이 노 전 대통령도 알고 있었다고 진술했다는 게 당시 검찰 설명이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본인은 몰랐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검찰 소환이 임박하자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권양숙 여사에게 전달됐다는 100만달러에 대해 "(나는 몰랐고) 저의 집(권양숙 여사)이 요구해서 받은 것으로 빚을 갚는 데 사용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권 여사와 아들 건호씨도 검찰에 소환됐었다.

2009년 4월 30일 노 전 대통령을 태운 대형버스가 봉하마을을 출발해 서울 대검청사에 도착했다. 노 전 대통령은 "면목없는 일"이라 사과했다. 하지만 뇌물수수 혐의는 부인했다. 노 전 대통령의 변호인이었던 문 대통령도 그 버스에 동승했다. 문 대통령은 변호인으로 노 전 대통령 조사 과정에도 입회했다.

그때 노 전 대통령을 직접 조사했던 검사가 최근 구속 수감된 우병우 전 민정수석(당시 대검 중수부 1과장)이다. 문 대통령은 나중에 노 전 대통령을 제대로 변호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피력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자신의 책에서 "노 대통령과 우리는 그때 엄청나게 인내하면서 대응했다. 너무 조심스럽게 대응한 게 아닌가 하는 회한이 있다"고 했다. 책에서 '정치보복의 먹구름'이란 소제목을 단 부분은 노 전 대통령 수사 시작 국면을 다뤘다. 노 전 대통령이 검찰에 출두한 날을 '치욕의 날'이라고 표현했다.

그 당시 언론에는 '논두렁 시계' 등 민감한 수사 상황이 여과 없이 보도됐다.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검찰은 중계방송 하듯 피의 사실을 언론에 흘렸다. 검찰 관계자라는 이름의 속칭 '빨대'가 이야기를 더 풍부하게 보탰다"고 했다. 나중에 국정원이 그 과정에 개입했다는 증언이 검찰 수사팀에서 나왔다. 검찰 수뇌부가 구속영장 청구 여부에 대해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20여 일 끌자 진보 진영에서도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비난이 제기됐다. 그 결과가 노 전 대통령 투신 사망이었다.

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 장례식 때는 장례집행위원장을 맡아 상주(喪主) 역할을 했다. 문 대통령은 당시 "서거 발표를 제가 병원에서 했었다. 그때 그 순간 정말 눈앞이 캄캄해서…"라고 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장례식 내내 담담한 모습을 유지하며 눈물 흘리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책에서 "내 생애 가장 긴 하루였다. 그날만큼 내가 마지막 비서실장을 했던 게 후회된 적이 없다"며 "시신 확인에서부터 운명, 서거 발표, 그를 보내기 위한 회의 주재까지. 나 혼자 있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했다"고 했다. 이후 문 대통령은 그해 9월 '노무현재단' 상임이사를 맡았다. 3년 뒤인 2012년 부산 사상구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인이 됐다. 이런 과정을 문 대통령은 '운명'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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