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文대통령 전례없는 '분노'.. MB성명 하루만에 직접 반박

입력 2018.01.19.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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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現 대통령 충돌]

[동아일보]

2009년 노무현 前대통령 영결식 참석한 MB 2009년 5월 29일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에 이명박 전 대통령 내외(오른쪽)가 참석한 가운데 노건호 씨(왼쪽에서 두 번째)가 참석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동아일보 DB
18일 오전 9시 5분, 청와대 여민1관 3층 집무실에 앉아 있는 문재인 대통령의 표정은 매우 굳어 있었다.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윤건영 국정상황실장 등 핵심 참모와 매일 갖는 ‘티타임 회의’에 참석한 문 대통령은 전날 발표한 이명박(MB) 전 대통령의 성명에 대한 반응을 직접 밝혔다.

두 문장으로 된 짧은 내용이었지만 문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분노’ ‘모욕’ 등 거친 표현을 썼다. 문 대통령의 발언을 받아 적은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문 대통령이 분노를 말했다. 청와대 대변인 하면서 처음 듣는 표현”이라고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거론한 MB의 발언에 문 대통령이 전례 없는 강경한 태도를 보이면서 전·현 정권 충돌의 파열음은 더 커지게 됐다.

○ 개인적 분노까지 터뜨리며 전례 없이 강경한 文

문 대통령의 강한 발언을 대신 낭독한 박 대변인은 “문 대통령의 분노는 국가와 민주주의 근간을 흔드는 것과 연관이 있다”고 말했다. “최근 역사 뒤집기와 보복 정치로 대한민국의 근간이 흔들리는 데 대해 참담함을 느낀다”는 MB의 발언을 그대로 반박한 것이다.

특히 문 대통령은 MB가 적폐청산에 대해 “정치공작이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 보복이라고 보고 있다”고 말한 것에 강한 불만을 표했다. “금도를 넘었다”는 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직접 거론한 것에 대해 해서는 안 될 금도를 넘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결국 노 전 대통령의 친구라는 개인적인 인연과, 법 집행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이라는 신분 두 가지 측면에서 “분노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이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상당한 분노와 불쾌감이 있을 텐데 그런 게 (성명에) 다 포함되어 있다”고 전했다.

여기에 문 대통령은 MB 측이 청와대가 검찰을 지휘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처럼 말한 것에 ‘모욕’이라고 했다. 박 대변인은 “검찰 수사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고 하는데, 청와대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게 국민의 명령이고 적어도 우리는 그런 꼼수를 쓰지 않는다. 그래서 모욕스럽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 靑, “그동안 많이 참았다” 폭발

전날 MB의 발표 직후 청와대는 “할 말이 없다”며 반응을 자제했다. 즉각 청와대가 반박하는 모양새를 취하지 않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참모들은 “진짜 공작과 보복을 한 세력이 누구냐”며 들끓었다.

이런 기류는 이날 오전 8시 임 실장 주재로 열린 현안점검회의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어진 티타임 회의에서 문 대통령이 먼저 성명 이야기를 했고, 참모들의 의견을 들은 임 실장도 뜻을 같이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는 문 대통령에게 큰 상처인데, 책임 당사자(MB)가 그걸 거론하면서 정치 보복을 운운한 것에 화가 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정치인들의 발언이 정치를 극단적으로 만들고, 사회를 극단으로 갈라지게 한다. 이런 식으로 해서야 되겠느냐”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청와대의 반응에 여권 관계자는 “임 실장이 아랍에미리트(UAE) 관련 온갖 공격을 받으면서도 청와대는 MB 측을 건드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런데 MB가 ‘정치 보복’이라고 역공하니 더는 참을 수가 없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변인 역시 “정부를 맡고 있는 책임감 때문에 그동안 많은 인내를 해왔지만 정의롭지 않은 것에 인내하지 않는 것이 진짜 책임감이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문 대통령은 2011년 펴낸 자서전 ‘운명’에서 MB 정부 당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를 두고 “우리는 그때 엄청나게 인내하면서 대응했다. 그 일을 겪고 보니 적절한 대응이었는지 후회가 많이 남는다. 너무 조심스럽게만 대응한 게 아닌가”라고 적었다. 전례 없는 강한 발언은 같은 후회를 반복하지는 않겠다는 문 대통령의 의지인 셈이다.

문제는 전·현 정권의 ‘강 대 강’ 대치가 불러올 후폭풍이다. 청와대는 “검찰이 법과 질서에 따라 수사할 것이고, 청와대는 지켜만 볼 뿐이다”며 일단 추가 확전은 않겠다는 태세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