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간 美 FDA 승인 치매치료제 4개.. 성과 더뎌도 희망 있다

2018. 1. 19.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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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의 최전선]치매
<3> 치료제 개발 긴 싸움 시작됐다

[동아일보]

랭커스터대
실험실의 쥐는 몇 달 뒤 치매를 앓을 예정이다. ‘APP/PS1’이라는 이름의 이 쥐는 치매를 앓도록 유전자 변형을 한 모델 동물. 생후 두 달 뒤 실험에 투입되고, 40주(10개월)차가 되면 기억력 저하 증세를 보인다. 뇌를 살펴보면 여지없이 치매와 관련된 뇌 속 노폐물인 아밀로이드 베타가 쌓여 있다. 쥐에겐 미안하지만 사람의 치매 과정을 밝히고 치료제의 효과를 측정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박기덕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치매DTC융합연구단 책임연구원은 “연간 억 단위의 돈이 들고 기간도 오래 걸려 결코 쉽지 않지만 효과 좋고 부작용 없는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 실제 치매 동물로 실험을 한다”고 말했다.

박 책임연구원의 말대로 치매 연구의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긴 시간에 걸쳐 진행되는 노년의 질환이다 보니 원인을 밝히거나 치료제로 동물실험 또는 임상시험을 할 때 다른 질병에 비해 오래 걸릴 때가 많다. 긴 안목으로 계획을 해야 한다.

○ 암보다 유독 더딘 치매 치료제 개발

그렇다 보니 치료제 개발이 암 등 다른 주요 질병에 비해 유독 더디다. 미국제약연구제조사협회(PHRMA)가 지난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998년부터 2014년까지 16년 동안 임상시험에 들어간 치매 치료제 후보 123개 가운데 최종적으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약은 4개에 불과하다. 확률이 3%대다. 전 임상 단계의 후보약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확률은 1% 미만으로 떨어진다. 다른 질병이 2∼4%대인 것에 비해 몇 배 어렵다. 치매 치료제 개발에 도전하고 있는 연구자들이 ‘바늘구멍에 낙타를 통과시키기보다 어렵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이유다.

김기웅 중앙치매센터장(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은 “워낙 복잡한 질병이다 보니 막대한 투자에도 실패가 많다”며 “신약을 개발하는 기업 입장에서 연구개발(R&D)을 계속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은 상황”이라고 했다. 그나마 그동안 승인받은 약 가운데 진정한 의미의 치매 치료제는 아직 없다. 뇌의 인지 기능을 보완해 눈에 보이는 증상만 조금 완화시켜 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치매 연구자들은 단순히 증상을 보완하는 약보다 치매의 진행을 늦추거나 기억력 등 인지 기능을 근본적으로 회복시키는 차세대 치매 치료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분야는 비관과 낙관이 공존한다. 제프리 커밍스 미국 로루보 뇌건강치료센터장은 매년 전 세계 치매 임상시험 현황을 체계적으로 분석해 치매 분야 국제 학술지 ‘치매 및 알츠하이머’에 논문을 발표한다. 가장 최근인 작년 9월 논문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임상시험 중인 치매 치료제는 2017년 초 기준으로 105개다. 이 중 마지막 시험 단계인 임상 3상에 와 있는 후보 약은 28개다. 암 등 다른 주요 질환에 비하면 무척 적다. 암의 경우, 면역 치료제라는 분야의 임상 단계 약만 해도 2017년 9월 기준으로 940개에 이른다. 커밍스 교수는 “2017년 새롭게 임상 1상에 진입한 치매 치료제 후보는 8개에 불과하다”며 “알츠하이머 병 치료제 개발이 절망적으로 느리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고 했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묵인희 서울대 의대 교수는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지만 3상에 있는 후보 가운데 임상을 통과하는 새로운 약이 반드시 나올 것으로 보는 사람도 많다”며 “5∼10년 내에 치료제 분야에 새로운 사례가 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 책임연구원은 “과거에는 치매 치료제라고 하면 심각하게 진행된 중증 치매를 떠올리고 이를 다시 정상으로 되돌리는 데 집중해 개발이 더 어려웠는데, 요즘은 가벼운 수준의 인지장애(MCI)나 초기 치매 때 병의 진행을 늦추는 데 더 관심이 많다”며 “지금 임상시험 중인 약 가운데 일부도 충분히 성공 가능성이 있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 아밀로이드 제거 등 임상시험 성과

임상 3상 시험 중인 차세대 치매 치료제의 절반 이상(53%)은 가장 오랫동안, 가장 많은 연구자들이 치매의 원인으로 주목해온 뇌 속 노폐물 단백질인 아밀로이드 베타를 잡는 기능을 한다. 방식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먼저 뇌에 들어가 아밀로이드 베타 덩어리 자체 또는 그 단백질 일부를 찾아내 제거하는 방식이다. 비유하자면 범인의 냄새를 기억한 경찰견을 풀어 딱 범인만 찾아 추격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를 위해 인체 내 면역 물질인 항체를 변형해 이용한다. 이 방식의 약 가운데 미국 생명과학회사 일라이 릴리의 솔라네주맙과 제약사 화이자의 후보 약물이 임상 3상까지 가며 큰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각각 2016년 말과 올해 초에 임상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다며 결국 연구 중단을 선언했다. 하지만 기대는 남아 있다. 최근 바이오젠의 아두카누맙이 임상 3상 과정에서 실제로 뇌 속 아밀로이드 베타를 제거하고, 인지 능력도 개선한다는 사실이 확인돼 임상시험 기간이 연장되는 등 성과를 내고 있다.

또 다른 방식은 뇌 안에 아밀로이드 베타가 아예 생기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아밀로이드 베타는 체내에서 몇 개의 효소가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의 ‘재료’ 물질을 잘라 만든다. 이 과정에서 효소가 단백질을 정상 길이보다 약간씩 길게 자르면 마치 머리카락이 뭉치듯 아밀로이드 베타가 자신들끼리 엉기면서 뇌 속 노폐물이 된다. 이 문제를 일으키는 효소를 억제하면 노폐물 생성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는 셈이다. 이 방식으로 치매 치료제를 만드는 대표 주자인 글로벌 제약사 머크는 유력 후보였던 MK8931의 임상 3상 실패를 2017년 초에 선언했다. 하지만 노바티스, 릴리, 얀센 등이 아직 임상 2, 3상 시험을 계속하고 있다.

○ ‘타우 단백질’ 노리는 약 급부상

‘주류’인 아밀로이드 베타 대신 또 다른 뇌 속 노폐물 단백질인 타우 단백질을 노리는 약도 최근 급부상하고 있다. 타우 단백질은 뇌세포 안에 존재하는 단백질로 정상일 땐 신경세포의 구조를 이루지만 치매가 진행되면 자기들끼리 엉켜 덩어리가 돼 신경세포를 죽인다. 뇌세포 안에 위치해 약으로 치료하기가 한층 어렵다.

학회에서는 아밀로이드 베타 연구파와 타우 연구파가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한국도 5년여 전부터 연구가 크게 늘었다. 전 세계적으로 임상 3상에 이른 약은 아직 많지 않아 2017년 기준으론 하나뿐이지만 후보가 점점 늘고 있다.

아밀로이드 베타와 타우 단백질이란 ‘노폐물’을 청소해 치매를 치료하는 방식을 떠나 아예 다른 대상으로 관심을 바꾼 연구도 있다. 박 책임연구원은 ‘성상교세포’라는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성상교세포는 뇌세포 중 신경세포를 제외한 세포의 일부다. 과거에는 신경세포에 영양을 공급하는 등 신경세포를 돕는 역할로 알려졌지만 다른 중요한 기능들이 하나둘 밝혀지고 있다. 치매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지고 있는데, 치매에 걸린 경우 성상교세포가 과하게 활동하면서 신경을 억제하는 물질인 가바(GABA)가 지나치게 많이 만들어진다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박 책임연구원은 “가바는 ‘마오비(MAOB)’라고 하는 효소가 만든다”며 “이 효소에 일시적으로 결합해 가바 생성을 억제시킬 수 있는 새로운 후보 약물을 개발했다”고 했다. 박 책임연구원은 비슷한 후보 물질을 추가 발굴하는 한편 이런 일이 생기는 메커니즘도 밝혀 다른 질병에 확대 응용하는 방안도 연구하고 있다.

치매는 근본 원인, 조기 진단, 치료제 개발 등 무엇 하나 쉬운 게 없는 난제다. 뇌가 인류 최후의 블랙박스이듯, 치매 역시 의학계의 마지막 블랙박스 중 하나일 가능성이 크다. 치료제는 이런 침묵을 깨기 위해 다른 어떤 분야보다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크든 작든 성공 사례가 나와야 치매 정복이라는 긴 여정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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