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사이 두고 내-외국인 줄.. 새벽 인력시장도 둘로 갈렸다
[동아일보]
17일 오전 5시경 서울 구로구 지하철 7호선 남구로역 근처 인력사무소 앞에 건설현장 일자리를 찾아 나온 일용직 근로자 170여 명이 서 있다. 이들은 대부분 중국 동포를 비롯한 외국인 근로자다. 같은 시간 한국인 근로자 30여 명도 이곳을 찾았지만 외국인 근로자들과 떨어진 곳에 따로 모여 일감을 기다렸다. 정다은 기자 dec@donga.com |
어림잡아 170여 명. 사무실 앞 인도가 비좁아 일부는 도로 옆 횡단보도에까지 내려가 있었다. 이들은 거의 다 조선족 등 중국인과 동남아 출신 외국인이다. 이곳은 서울의 대표적인 인력시장. 외국인 근로자가 대세가 된 지 이미 오래다. 기자가 다가서자 누군가 어눌한 한국말로 물었다. “일거리 있어요?”
횡단보도 건너편에도 일용직 근로자가 모여 있었다. 30명 남짓이었다. 대부분 한국인 근로자다. 정모 씨(64)는 외국인 근로자를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보름 동안 딱 하루 일했어. 중국 애들 들어오면서 일당도 2만, 3만 원이나 떨어졌다고.”
같은 날 오전 5시 경기 안산시 단원구 지하철 4호선 안산역 앞 인력시장에 승합차와 버스가 줄지어 서 있었다. 일용직 근로자들이 5, 6명씩 무리 지어 올라탔다. 일감을 찾아 건설 현장으로 가는 길이다. 차량 안에서는 중국말만 들렸다. 근처 인력사무소로 들어서자 아직 ‘선택’받지 못한 근로자 수십 명이 있었다. 사무소 직원이 “○○○ 씨 혈압 높아요?”라고 큰 소리로 물었다. 한 근로자가 어색한 한국말로 “혈압 안 높아. 몸 좋아”라고 외쳤다.
직원은 건설 현장에 보낼 명단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이름 옆에 일당을 적었다. 13만 원부터 19만 원까지 금액이 적혔다. 19만 원은 한국인 근로자가 받는 일당이다. 외국인은 13만∼18만 원이다. 명단이 ‘팀장’에게 건네졌다. 이름이 불리자 근로자들이 줄지어 팀장을 따라 나섰다. 한국인은 10명 중 2, 3명꼴이다. 오전 5시 20분경 안산역 앞에 서 있던 승합차와 버스가 일제히 시동을 걸었다. 한국인 근로자 한 명이 마지막 차량에 올라타며 말했다. “우리는 작은 데야. 큰 데는 다 중국 애들이 가거든.”
같은 시간 경기 성남시 수정구 태평고개에서도 차량들이 하나둘 현장으로 출발했다. “이제 끝났어요. 하루 쉬세요”라고 인력사무소 직원이 외쳤다. 10분 후 사무실은 문을 닫았다. 불을 켠 지 1시간 만이다.
이곳은 비수기에도 200명 이상이 몰리는 수도권 최대 인력시장 중 하나였다. 서울 지역 건설 현장에서도 늘 사람을 찾아 이곳에 들렀다. 그러나 요즘은 30∼40명밖에 모이지 않을 정도로 침체됐다. 41년간 철근작업을 한 손모 씨(66)는 “‘오야지’들이 불법 외국인 근로자를 미리 현장에 꽂는 바람에 우리가 갈 수 있는 자리가 확 줄었다. 걔들 때문에 일을 못해 먹는다”고 말했다.
이날 모인 사람들 중 건설 현장으로 ‘출근’한 사람은 8명뿐이었다. 50, 60대 한국인 근로자를 찾는 곳은 거의 없었다. 일을 나가지 못한 사람들은 아쉬운 듯 주변을 서성거렸다. 30년 차 목수 이모 씨(63)는 “혹시 알아? 술 먹고 못 나온 사람 있어서 자리 빵꾸(펑크)난 팀 있으면 불러줄지. 지금 다른 데 가봐야 소용도 없고…”라고 말했다.
몇몇 근로자는 “밥이나 먹으러 가자”며 인근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 주인은 “요즘 나이 든 한국인들은 인력시장에 왔다가 아침 먹고 소주 사서 귀가하는 게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스물두 살 때부터 현장에서 일했다는 박모 씨(73)는 “외국인 근로자를 실컷 두들겨 패고 싶다”며 언성을 높였다.
외국인 근로자 사이에서도 일자리를 놓고 갈등이 빚어진다. 건설 현장에 합법적 취업이 가능한 외국인들은 불법 체류 외국인에게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냈다. 한국에 온 지 8년 됐다는 조선족 박모 씨(33)는 중국말로 대화하던 사람들을 가리키며 “쟤네 좀 신고해 달라”고 기자에게 부탁했다. 박 씨는 “불법 체류자들이 일당 5만 원 받고도 일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우리까지 일자리를 빼앗기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권기범 kaki@donga.com / 성남=김은지 / 안산=윤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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