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MB "대한민국 근간 흔들린다" .. 수사 죄어오자 배수진

최민우.허진 2018. 1. 18.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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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진 때 이어 66일 만에 회견 자청
'노무현' '죽음' 단어 직접 골라
성명 읽다 기침으로 6차례 중단도
국정원 특활비는 언급 안 해

이명박(MB) 전 대통령이 언론사 카메라 앞에 선 건 지난해 11월 12일 이후 66일 만이다. 당시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구속되자 다음 날 바레인으로 출국하던 중 인천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났다. 이번엔 자신의 ‘집사’로 불리는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에게 17일 새벽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곧바로 이날 오후 사무실로 기자들을 불렀다. MB 청와대에 근무했던 한 측근은 “아침에 (내가) 직접 나설 테니 성명서를 준비해 달라는 연락이 MB로부터 왔다”며 “더는 늦춰선 안 된다고 판단한 듯 보였다. 결기가 느껴졌다”고 전했다.

이 전 대통령의 발언 강도는 예상보다 강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역사 뒤집기와 보복 정치로 대한민국의 근간이 흔들린다”며 수위를 끌어올리더니 곧바로 “검찰 수사는 보수를 궤멸시키는 정치공작이자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동안 야권에서 금기시돼 온 노 전 대통령 죽음에 대한 언급을 MB가 직접 전국에 전파한 것이다.

이에 대해 한 참모는 “노 전 대통령 죽음과 MB 수사가 연관돼 있다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거 아닌가. MB도 이 대목을 넣는 데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측근 역시 “성명서 초안을 참모진이 작성하긴 했지만 ‘노무현’ ‘죽음’ ‘정치보복’ 등 핵심 어휘는 MB가 명시했다”고 전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17일 서울 삼성동 사무실에서 검찰 수사와 관련한 입장을 발표한 뒤 차에 오르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은 ’검찰수사는 처음부터 나를 목표로 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오종택 기자]
이 전 대통령이 정면돌파를 택한 데엔 그만큼 검찰의 칼끝이 본인에게 근접해 있음을 직감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에 구속된 김백준 전 기획관은 30여 년간 이 전 대통령을 보필하며 “MB보다 MB의 금고 상황을 더 잘 안다”는 얘기를 듣는 최측근이다.

자유한국당 관계자는 “두 달 전 김관진 전 장관 구속 때와 상황이 다르다. 그때는 국가 원수로서의 정당한 행위인가 등 정무적 다툼의 여지가 있었지만 이번엔 돈이 오고 간 의혹 아닌가. MB로서도 초조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5분이 채 되지 않은 이날 발표 중 이 전 대통령은 마지막에 평창올림픽을 꺼냈다. 성명서에 없는 즉흥 발언으로 “국격을 다시 한번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소망한다”며 덕담을 했으나 사실상 본인이 재임 중 올림픽 유치를 성사시켰다는 것을 환기하려는 목적이 커 보였다.

반면 현재 검찰 수사의 핵심인 국정원 특수활동비에 대해선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반박해 봤자 검찰 프레임에 끌려가는 것”이라는 게 MB 측 설명이다.

회견장엔 정동기 전 민정수석, 김두우·최금락·이동관 전 홍보수석, 김효재 전 정무수석 등 MB 청와대 핵심 참모들이 배석했다. 이 전 대통령이 성명을 읽는 도중에 기침 등으로 여섯 차례나 발언이 끊겼다.

정치권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2007년 대선 당시 ‘BBK 의혹’과 관련해 MB저격수로 나섰던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대리인 김백준이 구속되니 (MB가) 매우 움찔한 것으로 보인다”며 “막다른 골목에서 어쩔 수 없이 본인이 검찰에 출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한 대목”이라고 적었다.

반면 홍준표 한국당 대표는 기자들에게 “MB가 의논해 (국정원) 돈을 받았다는 것이 입증되지 않는 한 대통령이 사후 보고받은 것은 아무 범죄가 안 된다”고 주장했다. 김철근 국민의당 대변인은 “사법부 판단에 의해 결정될 문제를 정치 쟁점화한 것은 전직 대통령의 도리가 아니다”고 비난했지만 유의동 바른정당 대변인은 “수사가 정치보복이 돼선 안 된다는 국민의 염려를 검찰이 잘 새겨야 한다”고 말했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MB의 이번 발언은 나름 치밀하게 계산된 것 같다”며 “자칫 불리할 수 있는 섣부른 설명은 하지 않고 검찰 수사의 의도만 부각시켜 정치보복 프레임을 짜려는 전략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최민우·허진 기자 min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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