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list] 라이벌 팀에 스타 보내고 후회한 역사 9

편집팀 2018. 1. 17.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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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투=Matt Gault]

아스널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알렉시스 산체스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보낼 준비를 하고 있다. 혹자는 이렇게 되묻고 싶을지도. “이 후폭풍, 감당할 수 있겠어요?”

라이벌 팀으로 떠나서 잘하면 곱절로 배가 아프다. 스타 플레이어라면 더더욱. 월드No.1 풋볼매거진 <포포투>는 이런 사례를 꽤 많이 알고 있다. 스타 플레이어를 라이벌 팀에 보내고 후회한 사례 9가지를 소개한다. 쿨하지 못해 미안해~.


#1. 안드레아 피를로 (AC밀란->유벤투스, 2011)

안드레아 피를로는 21세기 가장 우아한 미드필더로 평가받는다. 2000년대 AC밀란의 전성기를 이끈 주역인 그는 세리에A와 챔피언스리그에서 각각 두 차례씩 우승 트로피를 들었다.

밀란의 전설로 남을 줄 알았던 피를로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2011년이었다. 노장 반열에 접어든 그는 밀란에서 계속 뛰길 원했다. 하지만 밀란의 생각은 달랐다. 당시 사령탑 마시밀리아노 알레그리는 시즌 구상에서 피를로를 제외했다. 구단도 피를로와 재계약에서 한발 물러났다. 그렇게 피를로는 유벤투스로 떠났다. 이적료는 0원이었다.

유벤투스 입장에선 대환영이었다. 안토니오 콘테 감독의 시나리오에 피를로는 핵심 선수였기 때문이다. 기대에 부응했다. 이적 첫 시즌에 13개 도움을 기록해 유벤투스의 무패우승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후 유벤투스는 피를로와 함께 4년 연속 세리에A 왕좌에 올랐다. 반면 밀란은 끝없이 추락했고, 밀란의 아드리아노 갈리아니 대표이사는 ‘피를로를 떠나 보낸 건 가장 큰 실수’였다고 시인했다.


#2. 앤디 콜 (뉴캐슬->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995)

70경기 55골. 뉴캐슬 시절 앤디 콜의 리그 기록이다. 독보적인 주전 공격수였다. 하지만 케빈 키건 감독과 말다툼 이후 상황이 뒤바뀌었다. 사건의 발단은 훈련장이었다. 훈련 태도에 대한 언쟁을 벌였다. 화가 난 콜은 자리를 떠났다. 키건은 그를 말리지 않았고, 방출을 결정했다.

1995년 1월. 뉴캐슬이 콜을 600만 파운드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보냈다. 당시 뉴캐슬 팬들은 키건에게 해명을 요구했다. 키건은 전술적 판단에 의한 이적이라고 설명했다. 비극의 시작이었다. 1996-97시즌 뉴캐슬은 리그에서 맨유에 밀려 통한의 준우승을 거뒀다. 당시 콜은 눈부신 활약으로 맨유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뉴캐슬 입장에선 배가 아플 수밖에 없었다.


#3. 요한 크루이프 (아약스->페예노르트, 1983)

36세 요한 크루이프는 1983년 아약스의 더블을 이끈 주역이었다. 하지만 아약스는 재계약을 제안하지 않았다. 그의 헌신을 무시한 처사였다. 크루이프는 아약스에 복수하기로 마음먹었다. 가장 큰 라이벌 페예노르트로 이적했다.

당시 페예노르트는 1974년에 리그와 UEFA컵을 차지한 이후 하락세를 걷고 있었다. 아약스와 맞대결에서도 열세였다.

1983-84시즌 크루이프 이적 후 양 팀이 처음 만났다. 결과는 8-2. 아약스의 대승이었다. 페예노르트 팬들은 충격에 빠졌다. 하지만 오래 가지 않았다. 이를 악문 페예노르트는 이후 15경기 무패행진을 달렸고, 리그 왕좌에 올랐다. 시즌이 끝나고 크루이프는 올해의 선수로 선정됐다. 크루이프만이 할 수 있는 통쾌한 복수였다.


#4. 로빈 반 페르시 (아스널->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012)

간혹 아스널은 셀링 클럽처럼 보인다. 선수를 팔아 돈을 버는 자급자족 방식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파트리크 비에라, 티에리 앙리, 세스크 파브레가스의 판매는 아스널의 지갑을 두둑하게 만들었다.

2012년, 반 페르시는 아스널 운영진에게 이적 정책과 구단 운영 방식의 변경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반 페르시가 팀을 떠나도 좋다는 의미였다.

이를 놓치지 않고 유벤투스가 제안을 보냈다. 하지만 충분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끼어들었다. 유벤투스보다 훨씬 큰 금액이었다. 무려 2400만 파운드. 아스널 보드진은 서른 줄에 접어든 선수를 이 가격에 파는 건 이익이란 결정을 내렸고, 결국 반 페르시는 아스널을 떠났다.

반 페르시는 이적 첫해부터 맹활약했다. 26골을 넣어 맨유의 20번째 리그 우승에 일조했다. 반면 아스널은 가까스로 4위에 올랐다.


#5. 카를로스 테베즈 (웨스트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체스터 시티, 2009)

웨스트햄 소속이던 테베즈는 2년 임대 후 완전 이적 조건으로 2007/08시즌 맨유에 합류했다. 공격수로서 재능을 만개했다. 테베즈와 함께 한 2년간 맨유는 빅이어도 들었다. 하지만 그는 떠나길 원했다. 맨유가 자신의 활약을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이 과정에서 퍼거슨과 불화를 겪었다. 영국 신문사와 인터뷰가 계기였다. 당시 테베즈는 본인의 거취에 대해 서슴없이 얘기했다. 이후 퍼거슨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라며 비난했다. 둘은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했고, 결국 테베즈는 맨체스터 시티로 적을 옮겼다.

맨시티에서도 그의 실력은 여전했다. 두 시즌 동안 52골을 넣었다. 문제는 세 번째 시즌이었다.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2차전 바이에른 뮌헨과 경기 중 테베즈는 교체 출전을 거부했다. 로베르토 만시니 당시 맨시티 감독은 테베즈의 태도를 비난했다. 맨유 팬들은 테베즈가 라이벌 팀에서 떠나길 빌었다. 그의 능력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테베즈는 돌아왔다. 다시 한번 정상급 기량을 뽐낸 그는 맨시티가 44년 만에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6. 은골로 캉테 (레스터->첼시, 2016)

캉테는 2015-16시즌 레스터의 프리미어리그 우승 주역이었다. 강한 체력과 성실함, 뛰어난 경기 조율 능력으로 팀을 이끌었다. 당시 10위로 추락한 첼시는 명가 재건을 위해 캉테 영입을 준비했다.

레스터는 다음 시즌을 위해 우승 멤버들을 붙잡으려 했다. 캉테도 그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가 떠난다고 선언했을 땐 막을 수 없었다.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대체자 영입도 늦었다. 겨울 이적시장에서 윌프레드 은디디를 영입했지만 캉테만큼 활약하진 못했다. 그 결과, 디펜딩 챔피언 레스터는 12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7. 루이스 피구 (바르셀로나->레알 마드리드, 2000)

세계 축구사에 한 획을 그은 충격적인 이적이었다. 바르셀로나에서 주장 완장까지 찼던 루이스 피구가 라이벌 레알 마드리드로 떠났다. 3700만 파운드의 이적료 신기록을 세웠다. 피구에게 온갖 욕설을 퍼붓고 돼지 머리까지 던졌던 사건을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 팬들은 기억할 것이다.

피구의 이적 후 레알 마드리드는 ‘갈락티코’ 시대를 알렸다. 7개월 뒤, 그는 레알 마드리드 유니폼을 입고 라리가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피구는 레알의 정책을 마음에 들어 했다. 지단이 왔고, 뒤이어 베컴이 왔다. 호나우도도 함께 뛴다. 그에겐 이보다 더 좋은 환경이 없었다. 갈락티코 1기는 2001-02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지단이 챔피언스리그 역사상 가장 멋진 골을 넣은 그 경기다.


#8. 애쉴리 콜 (아스널->첼시, 2006)

2006년 여름 이적시장 마지막 날, 첼시는 아스널에서 애쉴리 콜을 데려왔다. 윌리엄 갈라스와 스왑딜이었다. 12년 전에 일어난 이 사건은 많은 이야기를 낳았다. 이적시장이 닫히기 전, 급박하게 이뤄진 계약 속엔 두 팀 팬들이 알지 못하는 이야기가 숨어있었다. 콜은 자서전에서 아스널이 주급 5만 5000파운드를 제시했고, 그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아 첼시로 발 빠르게 움직였다고 밝혔다.

로만 아브라모비치 첼시 구단주는 조세 모리뉴를 앞세워 팀의 부흥을 이끌었다. 실력이 출중한 선수들을 데려와 단숨에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콜도 로만 구단주와 모리뉴의 플랜에 있는 선수였다. 아스널 팬들은 라이벌 팀으로 떠난 콜에 분노했다. 나중에 아스널 팬들은 같은 사례로 화가 치밀었다. 나스리가 맨체스터 시티로 갔고, 파브레가스가 첼시로, 판 페르시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가서 우승을 맛봤다.


#9. 로베르토 바조 (유벤투스->AC밀란, 1995)

유벤투스는 1994-95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차지했다. 바조는 팀의 핵심 멤버였다. 1990년부터 5년 동안 유벤투스를 위해 뛰었지만, 새로운 출발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팬들은 실망했다. 라이벌 AC밀란으로 떠났기 때문이다. 유벤투스는 바조와 함께 ‘판타지 스타’ 델 피에로를 데리고 있었다. 델 피에로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지만 바조를 라이벌 팀으로 보내긴 싫었다.

유벤투스 팬들은 68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받고 바조를 밀란으로 보낸 팀을 비난했다. 바조는 밀란에서 유벤투스에 있었을 때만큼 엄청난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적 첫해에 스쿠데토를 차지했다. 유벤투스는 배가 아팠다. 하루빨리 바조가 밀란을 떠나길 바랐다. 델 피에로가 유벤투스를 정상으로 이끌 때까지.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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