海風에 몸 맡긴 大口.. '날 좀 보이소' 아우성

박경일 기자 2018. 1. 17.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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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안에서 ‘겨울의 맛’으로 빼놓을 수 없는 대구. 해풍에 사나흘 말린 대구가 경남 거제 외포항의 좌판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말린 대구로 찜이나 탕을 끓이면 맛이 훨씬 더 진해진다. 거제 외포항은 치어 방류사업의 성과로 대구 금어기인 1월에도 조업을 한다.
경남 통영 추도 ‘큰산’의 난대림 숲속을 헤매다 찾아낸 바위 위의 유일한 조망 지점에서 서쪽 바다를 봤다. 군데군데 햇살이 쏟아져 은박지처럼 반짝이는 바다 너머로 남해도의 모습이 보인다.
거제 외포항에서 어부들이 배에서 아귀를 내리는 모습.
추도의 대항마을 구판장에서 내놓은 물메기 회무침.
추도의 가장 높은 산인 ‘큰산’으로 오르는 길. 미조마을에서 오르는 산길에는 나무들이 성근 데다 소나무를 휘감은 덩굴의 초록으로 사람의 손으로 가꾼 정원처럼 느껴진다.

거제·통영서 만난 ‘겨울의 맛’

겨울의 맛을 찾아 남쪽 바다로 갔습니다. 지금은 겨울의 한복판. 매서운 추위와 황량한 풍경의 한겨울에도 여전히 여행을 충동질하는 것이 바로 ‘맛’입니다. 겨울 바다의 맛이라면 흔히 과메기와 도루묵, 혹은 대게나 양미리를 떠올리겠지요. 그런데 이건 대개 다 동해에서 나는 것들입니다. 그렇다면 남해에는 겨울 맛이 없을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대방어도 있고, 학꽁치도, 도치도, 청어도 있습니다. 그중에서 대구와 물메기를 골랐습니다.

경남 거제와 통영에는 대물(大物) 대구와 깔끔하고 시원한 맛을 내는 물메기가 있습니다. 겨울철에 최고의 맛을 내는 대구와 물메기를 찾아 거제 북부로, 통영의 작은 섬으로 들어갔습니다. 겨울 포구 난전의 좌판마다 대구는 흔전만전이고, 섬마을 골목의 담벽에는 물메기가 잘 말라가고 있었습니다. 포구를 끼고 있는 빼어난 전망대도, 작은 섬 안에 숨어 있는 짙은 난대림 숲도 근사했습니다. 겨울의 맛을 찾아 나섰다는 건 어쩌면 핑계였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말입니다.

# 어디에도 없는 1월 대구…거제에는 있다

남해안 겨울의 맛으로 첫째가는 건 ‘대구’다. ‘큰 대(大)’에 ‘입 구(口)’. 대구(大口)란 이름은 입이 커서 얻었다. 대구의 제철은 겨울이다. 대구는 겨울에 산란을 위해 냉수층을 따라 남해안으로 내려왔다가 산란을 마치면 북쪽으로 올라간다. 이른바 ‘산란회유’다. 산란을 위해 대구 떼가 내려오는 12월 초부터 2월까지 남해안에서 대구를 잡는다.

겨울 대구로 이름난 곳이 거제다. 거제는 2004년 대구를 ‘시어(市魚)’로 정했다. 거제를 대표하는 물고기란 얘기다. 겨울 대구는 뜨끈하게 맑은 탕을 끓여놓으면 시원한 국물맛이 그만이다. 입안에서 녹는 듯한 부드러운 살의 식감도 훌륭하다. 산지에서만 맛볼 수 있는 회도 좋고, 살짝 말린 뒤에 쪄내는 찜도 좋다.

거제 외포항 포구의 난전에는 대물 대구가 늘어섰고, 방파제 건조장에는 반건조 대구들이 ‘구득구득’ 말라가고 있다. 튼실한 것들은 생물 그대로 거래하고, 산란을 마쳐 이리가 없는 수컷이나 알집이 여물지 않은 암컷을 골라내서 내장을 발라낸 뒤에 건조한다. 사나흘쯤 해풍에 말린 대구는 살이 쫀득해지고 풍미가 더해지는데, 말린 대구로 국을 끓이면 뽀얀 색깔이 더 짙어진다.

남해안에서 대구는 12월을 제철로 친다. 대구 산란의 절정은 1월이지만, 남해안의 포구에 대구가 흔전만전한 건 이보다 한 달 앞선 12월이다. 거제의 대구 축제도 12월에 연다. 1월부터는 대구 포획이 철저히 금지되는 금어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1월 금어기에도 대구잡이가 허용되는 곳이 있다. 바로 거제다. 거제 북쪽 장목면의 외포항과 관포항에서는 1월에도 대구를 잡는다.

# 대물 대구들만 잡아내는 까닭

거제 외포항에는 보는 것만으로도 탄성이 절로 나오는 거대한 대구들이 즐비했다. 좌판에 펼쳐진 대구는 몸길이 1m에 육박하는 대물들이 대부분이었다. 큰 놈들은 아예 몸이 반쯤 상자 밖으로 나왔다. 덕장에서 줄줄이 걸려 말라가는 대구들도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컸다. 12월까지만 해도 간간이 작은 대구가 섞였는데, 1월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작은 놈들이 없다.

1월에 대물 대구만 나오는 건 다 이유가 있다. 1월은 금어기라 배마다 잡을 수 있는 대구의 숫자가 할당돼 있다. 그러니 어부들은 그물 안으로 들어온 작은 대구는 다 놓아주고, 큰 놈들만 골라서 잡아온다. 외포항에서 대구 조업을 나가는 배는 70척. 배 한 척당 1월 한 달 동안 잡을 수 있는 대구가 570여 마리다. 이 중 20마리를 방류할 치어 부화를 위해 수협에 가져다주고 나머지 500여 마리를 거래한다.

거제 해역에서 이즈음 대구 500마리쯤은 며칠만 조업해도 잡을 수 있다. 회유해온 대구들이 많을 때라 한 번 그물을 던지면 찢어질 정도로 올라온다. 아예 사나흘 조업만으로 할당된 숫자를 채우고 남은 날에는 다른 어종을 쫓는 배들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 배는 조업 일을 스스로 조정한다. 다른 배가 나가지 않을 때 조업을 나가고, 다른 배가 나갈 때는 쉰다. 대구 물량이 적절해야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있어서다. 그래서 어부들 사이에서는 조업 시기를 두고 ‘눈치싸움’을 한다.

외포항에서 겨울 대구는 ‘관광거리’다. 우선 그 크기부터가 그렇다. 팔뚝보다 훨씬 더 큰 물고기의 덩치부터가 감탄을 자아낸다. 이런 큰 대구들이 덕장에 줄지어 매달려 있는 모습도 눈길을 끈다. 갓 잡은 대구나 잘 말린 대구를 사갈 수도 있다. 외포항에는 회와 찜, 탕 등 대구 요리를 내는 식당들이 늘어서 있다. 대부분 대구를 사고파는 유통을 겸하는 집이니 대구의 싱싱함이야 묻지 않아도 좋다.

# 거제 북부의 전망대…망월산

거제의 내로라하는 관광지들은 주로 남쪽 해안에 몰려 있다. 거제의 명소로 꼽히는 해금강도, 신선대도, 바람의 언덕도 모두 남쪽이다. 구조라, 와현을 비롯한 이름난 해수욕장도 마찬가지다. 거제 북쪽에는 익히 알려진 이름난 관광지가 없다. 눈이 번쩍 뜨일 만한 명소가 없어 여태 소박한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거제 북부의 소박한 매력은 이제 막 알려지고 있다.

외포항을 끼고 있는 망월산도 그중 하나다. 망월(望月)이란 이름은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에 보름달이 뜨는 모습에서 유래된 이름. 해발 고도가 고작 226m에 불과해 산이라고 하기에는 좀 민망하지만, 망월산은 능선을 따라 세 개의 빼어난 전망대를 갖고 있다. 외포항에서 목제 계단을 따라 망월산을 오르다 정상을 앞두고 2, 3전망대를 알리는 표지판을 따라 오른쪽 길로 접어들면 외포항 일대와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주변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는 자리가 있다. 이보다 더 빼어난 풍경이 제1전망대인 망월산 정상에 있다.

망월산 정상에 서면 발밑으로는 자그마한 섬, 이수도가 있다. 이수도 뒤쪽으로는 거제와 부산을 길게 잇는 거가대교가 길게 이어져 있다. 거가대교는 저도와 중죽도, 대죽도를 딛고 가덕도 앞에서 해저침매터널로 들어간다. 아득하게 섬을 징검다리처럼 딛고 이어지는 다리는 그것만으로도 볼거리다.

작은 섬 이수도의 본래 이름은 학의 형상을 닮았다 해서 학섬이었다. 그러다 대구와 멸치잡이로 마을이 부유해지자 ‘바닷물이 마을을 이롭게 한다’해서 이수도(利水島)로 이름이 바뀌었단다. 이수도는 작은 섬인데 섬을 한 바퀴 도는 3.5㎞ 남짓의 둘레길이 놓여 있다. 작고 소박한 섬의 풍경을 즐기며 둘레길을 걷는 맛이 훌륭하다. 둘레길을 다 걷는 데는 1시간 30분 정도가 걸린다. 이수도를 오가는 도선은 시방마을 선착장에 있다. 시방마을에서 이수도까지는 10분이면 닿는다. 두 시간 간격으로 도선이 오가는데 왕복 도선료는 8000원이다.

# 패전의 바다, 칠천도

거제 북부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거제의 부속 섬인 칠천도다. 다리가 놓여 차로 드나들 수 있지만 칠천도는 섬이다. 칠천도 앞바다에서 정유재란 때 우리 수군과 일본군 사이에 해전이 벌어졌다. 이른바 ‘칠천량 해전’이다. 임진왜란 때 다른 해전에 비해 칠천량 해전이 잘 알려지지 않은 건 그 해전이 완벽한 패전이었기 때문이다. 칠천량 해전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통틀어 조선 수군이 유일하게 패배했던 해전이었다. 이 싸움에서 자그마치 1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칠천량 해전은 전란의 와중에 선조의 명으로 이순신 장군이 삼제수군통제사 직에서 파직돼 한양으로 압송되고, 대신 원균이 조선 수군을 이끌던 때 벌어졌다. 원균은 이순신이 수군을 지휘하던 때 ‘수군 단독으로 선제공격을 해야 한다’며 압박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이 통제사가 되자 수군의 독자 전투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선조는 수군의 단독 공격을 명령했고, 결국 원균은 수군 160여 척을 이끌고 부산 근해까지 가서 왜군을 급습했다. 그러나 교란작전에 말려 고전하다 철수하던 중 기습을 받아 400여 명의 병사를 잃었다. 원균이 칠천량으로 물러나자 왜군은 대부대를 이끌고 기습작전을 펼쳤다. 전라우수사와 충청수사가 이 전투로 죽고, 원균은 육지로 탈출했으나 끝내 붙잡혀 죽임을 당했다. 삼도수군이 이 전투로 일시에 무너졌고, 왜군은 남해 일대를 무시로 드나들게 됐다.

칠천량에는 칠천량 해전공원이 있다. 승전의 영광이 아니라, 패전의 기억을 되새기기 위해 조성한 곳이다. 해전공원에는 전시관이 있다. 전시관은 입장료를 받다가 지난해 12월 1일부터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 조선시대 수군 복장으로 기념사진을 찍는 공간도 있고, 3D 영화관도 있다. 전시관 앞마당에는 칠천량 앞바다를 바라보는 전망대가 있다. 해 질 무렵 붉게 물드는 바다의 모습이 근사하다.

# 겨울의 맛…추도 물메기

겨울 남해안의 맛으로 꼽히는 것 중 하나가 물메기다. 동해안에 곰치국이 있다면 남해에는 물메기탕이 있다. 곰치국은 ‘꼼치’로 끓이고, 물메기탕은 ‘물메기’로 끓인다. 살이 흐물흐물하다는 것만 같지 전혀 다른 종의 물고기이지만, 어찌 된 게 꼼치로 끓인 것이나 물메기로 끓인 것이나 맛은 거의 비슷하다. 둘 다 살이 부드러워 입안에서 녹는다.

물메기의 제철은 대구와 마찬가지로 12월부터 2월까지다. 동해안의 곰치국을 말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게 ‘못생겨서 옛날에는 다 버리던 생선’이라는 말인데, 물메기는 사정이 다르다. 못생긴 건 꼼치와 우열을 가리기 힘들지만, 물메기는 남해안 일대에서 오래전부터 먹어왔다. 다만 대구 같은 고급생선 축에는 감히 끼지 못했다. ‘동지 전후에 잡은 물메기가 겨울 대구보다 낫다’는 말은 대구의 ‘한 수 아래’인 물메기의 위상을 드러낸다.

물메기탕으로 이름난 곳이 바로 통영이다. 물메기는 통영에서 맛볼 수 있는 대표적인 겨울 맛이다. 통영산 물메기 중에서 가장 높이 쳐주는 게 추도 물메기다. 추도는 통영 여객선터미널에서 배를 타면 40분이면 닿는, 다도해의 중심에 있는 자그마한 섬이다. 같은 바다에 사는 물고기를 어디서 잡느냐가 뭐 그리 중요할까 싶은데, 추도에서 내는 물메기는 다른 산지의 것들보다 경매가가 30% 정도 비싸다. 그런데도 없어서 못 판다.

추도 물메기 몸값의 비결은 절반쯤은 ‘잡는 법’과 ‘손질하는 법’의 정성에 있고, 나머지 절반은 햇볕과 바람 덕이다. 우선 추도에서 물메기는 전통방식의 대나무 통발로 잡는다. 손이 적게 가는 철제 통발을 쓰지 않는다. 잡은 물메기는 선창의 공동 우물가에서 ‘그렇게까지 할 게 뭐 있냐’ 싶을 정도로 깔끔하게 손질한다. 물메기 등을 갈라 내장을 꺼내고는 맑은 물로 열 번이 넘게 씻는다. 섬 안에서 맑은 민물이 흔전만전 솟아서 가능한 일이다. 표백한 것마냥 깨끗하게 손질된 물메기가 일주일쯤 섬의 겨울 볕과 바닷바람을 맞아 꼬들꼬들하게 마르면 그제야 추도 물메기는 육지의 위판장으로 나간다.

# 큰산, 작은산, 그리고 샛갯끝

추도는 작은 섬이다. 섬 전체 면적이 1.65㎢, 서울 여의도 면적의 절반이 좀 넘는다. 인구는 130명 남짓. 섬 안에는 마을이 네 곳이라는데, 마을이라 부를 만한 규모는 여객선이 닿는 대항마을과 미조마을 두 곳뿐이다. 미조마을에서 배에 내리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 물메기 덕장이다. 추도 주민들은 겨울철이면 빈 공간만 있으면 덕장을 만들어 물메기를 말린다. 창고 처마 아래도, 옥상에도, 바다를 바라보는 비탈진 언덕에도, 골목 담벼락에도 덕장이 있다. 다른 섬은 물론이고, 육지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풍광이다.

겨울 물메기로 이름난 섬이지만, 물메기가 아니라도 추도는 가볼 만하다. 추도를 한 바퀴 도는 둘레길이나 섬 안의 산길을 이은 트레킹 코스도 훌륭하다. 추도에는 산이 두 개 있는데, 산 이름이 이보다 더 직관적일 수 없다. 산 하나가 ‘큰산’이고 다른 산은 ‘작은산’이다. 이름대로 큰산(194.6m)은 높고 크고, 작은산(120.1m)은 낮고 작다.

큰산은 정상까지 이어진 길이 ‘만들다 만’ 것이어서 자칫 길을 잃기 쉽다. 섬 안의 난대림은 나무와 덩굴들이 빽빽해 길을 잃으면 낭패를 겪게 마련인데 추도 큰산의 난대림 숲은 성근 편이어서 마치 정원처럼 느껴진다. 초록의 덩굴식물이 둥치를 감고 올라간 여윈 소나무가 늘어선 숲에서는 계절을 잊게 된다. 추도에서 경관의 최고 명소라면 단연 샛갯끝이다. 샛갯끝은 바다 쪽으로 가늘고 길게 내민 땅인데 바위 끝까지 가는 길의 양쪽에 바다가 있다. 큰산과 작은산을 한데 이어 걸으면 4.2㎞쯤 되고, 여기다 섬을 한 바퀴 도는 일주도로를 걷고 샛갯끝까지 다녀온다면 9㎞ 남짓이다. 여유작작 섬 전체를 돌아보고 구석구석 다 걷는다 해도 하루 두 번 오가는 여객선 첫배로 섬에 들어왔다가 오후 3시 30분 막배를 타고 나가는 당일치기 여행은 여유 있다. 대항마을과 미조마을에 하나씩 있는 구판장에서 새큼하게 무쳐낸 물메기 회무침을 곁들여 말린 물메기로 끓여낸 시원한 물메기탕을 맛봐야 하는 건 당연하다.

거제·통영=글·사진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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