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모의 세종이 펼친 '진짜 정치'>서둘러 제안하고 금방 유명무실해지는 관리들의 가벼움 '경계'

기자 2018. 1. 17.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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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 박현모

“우리나라 법은 3일 만에 폐지된다(我國之法 三日而廢).” “우리나라 사람들은 뭐든지 빨리빨리 하려 한다(凡事欲速).”

공효(功效) 없이 중단되고 마는 나라의 정책이나 제도를 가리켜 세종이 한 말이다. 세종은 또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성품이 가벼워서 모든 일에 떠들고 비밀을 지키지 아니한다(喧화不秘)”고 지적한다. 여기서 우리나라 사람(本國之人)은 대부분 관리들을 가리킨다. 일 맡은 사람들이 어떤 제안을 해서 서둘러 시행하는 것 같더니 금방 유명무실해지곤 하는데, 성과를 거두기도 전에 자랑부터 하고 다닌다는 것이다.

‘세종실록’을 읽다 보면 깜짝 놀랄 때가 있다. 600년 전과 지금이 어찌 그리도 닮았는지, 특히 나랏일 하는 것을 보면 추진하는 사람이나 따라가는 사람 모습이 그대로라는 것을 실감하곤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따라가는 사람, 즉 백성을 바꾸는 일은 오랜 시간이 걸리고 쉽지 않다는 점, 따라서 ‘추진하는’ 관리들의 일하는 방법을 바꾸는 게 세종의 목표였다.

“사람들은 비록 생활에 절실하게 이익됨이 있더라도 관청에서 시키면 꺼리는 마음을 내게 된다. 모름지기 강제로 심게 하지 말고, 관에서 먼저 솔선수범하여 따르게 하라.” 재위 18년째 되는 1436년 1월에 평안도와 함길도(함경도)의 관찰사들에게 목면(木綿) 종자와 심는 방법을 적어 내려보내면서 세종이 한 말이다.

북쪽 지역은 다른 곳보다 배나 추워서 겨울을 이겨내는 계책이 절실히 필요한 곳이다. 하지만 백성은 목면처럼 꼭 필요한 작물조차도 관청에서 시키면 꺼리는(忌憚) 경향이 있어서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게 세종의 판단이었다.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남이 시키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심지어 먹고 노는 일까지도 억지로 시키면 꺼리는 마음이 생긴다. 인간의 가장 중요한 욕구인 ‘자기 존중의 욕구’가 좌절됐기 때문인데, 매슬로(A. Maslow)에 따르면 인간은 “이 욕구가 저지되면 열등감이나 무력함, 나약함을 느끼며 결국 실의(失意)로 이어지거나 보상받으려는 성향 내지 심지어 신경증까지도 유발한다”고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세종이 제시한 해법은 세 가지다. 첫째, 정부가 할 일은 효유(曉諭), 즉 깨우치고 알리는 일이다. 이른바 연구·개발(R&D)에 집중 투자하여 민간 영역에서 하기 힘든 ‘좋은 씨앗을 개발하는 일’이 그것이다. 세종에 따르면 “무 씨는 흉년에 백성 살리는 데 크게 도움을 주는 것”이니, 가뭄을 이겨내는 무(菁根) 품종을 개발하고 그것의 유리함을 널리 알리는 게 나라의 책무이다.

둘째, 담당자의 사명(業) 의식이다. 정책과 제도는 시행해봤느냐가 아니라 성과를 거뒀느냐로 평가받는데, 이를 위해서는 우선 담당 관리의 책임 의식이 중요하다. 각 도의 관찰사들에게 가을갈이(秋耕)의 유익함을 말하면서 세종은 “대저 농정(農政) 및 조정에서 명령하는 일은, 처음에는 준행하는 것 같으나, 곧 다시 해이해져서 끝을 잘 마치는 것이 드물다”고 지적했다.

관 주도 행정의 한계에 대한 그의 통찰이 무릎을 치게 하는데, 이 문제를 극복하려면 일 맡은 관리가 “그 일에 마음을 붙여야(著心)” 한다는 게 세종의 처방이다. 지방에 부임해 내려가는 수령들을 왕이 일일이 만나서 왕과 수령의 업(業)은 백성을 먹여 살리는 일이라고 그 책임을 다시 일깨우고 당부한 것은 이 때문이다.

셋째, 유구(悠久), 즉 성과를 거둘 때까지 오래 시행해야 한다. 나랏일은 “오래도록 행하여 폐가 없게 해야 마침내 반드시 공효가 이루어질 것”인데, 그러려면 백성의 자발적인 참여가 매우 중요하다. 사람들은 “대개 나라에서 불러서 일을 시키면 반드시 싫어하고 꺼리지만, 스스로 서로 불러 모이면 즐겁게 일에 나선다”는 세종의 관찰이었다. 국민이 하고 싶은 일을 제안하고, 나라에서는 그것을 지원하고 지속시켜서 마침내 공효를 거두는 모습을 자주 보길 소망한다.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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