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_창업을_응원해] "더 늙기 전에" '캐통령' 키워낸 캐릭터 장인

정혜진 기자 입력 2018. 1. 17. 10:48 수정 2018. 3. 6.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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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구로구 캐리소프트 사옥에서 권원숙 대표가 디자인팀 직원과 캐릭터 작업과 관련해 의논을 하고 있다. /홍태화 인턴기자
[서울경제] “더 늙기 전에 뭔가를 배워야겠다.”

2014년 국내에서 유튜브를 중심으로 영상 콘텐츠를 만들고 공유하는 크리에이터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들 가운데 옥석을 가려 성장시키고 수익모델을 만드는 크리에이터들의 기획사인 멀티채널네트워크(MCN)도 함께 생겨났다. 유튜브라는 플랫폼을 활용하는 세대는 20대가 대부분이었다.

이 시기에 ‘캐리와 장난감 친구들’ 채널을 시작으로 키즈 콘텐츠 시장에 뛰어들어 업계 최강자로 우뚝 선 캐리소프트도 태어났다.

권원숙(47) 캐리소프트 창업자 겸 대표는 대학에서 독일어를 전공한 뒤 20년 가까이 유럽 일대를 담당하는 관광기획자로 일했다. 연수나 출장을 계획하는 정부 부처나 기관, 기업이 대상이었다. 이들이 출장 주제를 정하면 배울 점이 있는 유럽의 기업이나 정부 기관을 찾아내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일이었다. 4차 산업혁명을 주제로 정부가 산업 시찰을 나선다고 하면 인공지능(AI) 등 분야에서 앞선 기술을 있는 기업이나 연구소를 탐방할 수 있도록 섭외하고 좋은 정책을 만들어가는 정부 관계자를 섭외하는 형태다. 자연스럽게 국내에 있는 정보보다 한발 빨리 움직이기 위해 구글링을 많이 하는 편이었다.

“요새는 주로 검색할 때 쓰는 플랫폼을 기반으로 세대를 나누곤 한다는데 해외 자료에 대한 검색을 많이 하는 편이라 유튜브를 애용해왔어요. 유튜브 플랫폼에는 없는 게 없더라고요. 사람들이 유튜브의 수많은 콘텐츠로 접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유튜브 세계의 가능성을 인식했지만 바로 창업 결심을 한 건 아니었다. 계기는 다른 방향으로 왔다.

일이 끝날 때마다 녹초가 되기 십상이었는데 언제부턴가 퇴근하고 집에 가도 피곤하지 않은 날들이 많아졌다. 이제 경륜이 쌓였다고 위안할 수 있는 순간이었지만 권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새로운 분야를 배워야 할 때라고 느꼈다. 하루 종일 에너지를 써서 파김치가 될 정도로 새로운 분야 말이다. 그렇게 20년간 일했던 업종을 떠나 캐리소프트를 창업했다. 여기까지가 권 대표의 창업 프롤로그다.

권원숙 캐리소프트 대표 /사진제공=캐리소프트
최근 서울 구로구 구로디지털단지의 사옥에서 만난 권 대표는 그야말로 ‘파김치가 될 정도’로 일하고 있었다. 인터뷰 직전에는 자회사인 어웨이크 플러스에서 운영하는 오프라인 키즈 카페에서 쓸 놀이기구의 자재를 찾기 위해 직접 발품을 팔고 왔다.

“이 도안에 맞는 자재를 찾으려고 한다면 저희 직원들은 인터넷으로 각자 서칭을 하고 회의를 거쳐서 최종적인 자재를 정했을 거예요. 이럴 땐 저의 경험이 요긴하게 쓰이죠. 20년간 해온 노하우가 있으니까 이렇게 하면 되겠다 감이 오는 게 있어요”

40대 대표와 20대 직원들은 이렇게 서로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캐리소프트의 구성원들은 대부분 상당수가 20대 초반으로 이뤄져 있다. 간판 채널인 ‘캐리와 장난감 친구들’을 책임지는 오선희 피디도 22살에 불과하다. 권 대표가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 태어난 직원들과의 소통하기 위해 권 대표가 눈높이를 낮추는 방법을 택했다. 권 대표는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야 한다는 생각으로 직접 소통을 한다. 단계를 밟는 것보다 직접 소통하는 게 효율적”이라며 “콘텐츠 제작은 특히 나이가 영향을 주지 않는 분야”라고 말했다.

권 대표에게 40대 창업의 좋은 점이 뭐냐고 묻자 좋은 점이 너무 많다는 답이 돌아왔다. “사업을 해보니까 일에 대한 경험의 완결판 같아요. 열정이나 의지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더라고요. 창업하면 아이템을 키우는 것과 동시에 재무, 회계, 인력관리 굉장히 다양한 부분을 끌어가야 하는데 일에 대한 경험이 쌓이고 나니 실패 가능성이 낮아지는 것 같아요”

오선희 PD가 서울 구로구 캐리소프트 본사 ‘캐리와장난감친구들’ 녹화 스튜디오에서 카메라를 만지며 구도를 조절하고 있다./백주연 기자
캐리소프트는 창업 원년부터 특성화고 졸업생들을 많이 채용해왔다. 인턴으로 특성화고 졸업생들을 선발한 뒤 졸업과 동시에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방식을 삼 년째 지속하고 있다. 현재는 열두 명이 정직원, 5명이 인턴으로 일하고 있고 인턴은 올해부터 정직원으로 전환된다. 딸 박혜리(21)씨와 비슷한 또래인 만큼 엄마 같은 마음이 들 때가 많다.

“아침을 먹지 않고 회사에 오는 친구들이 많다는 걸 알게 돼 아침을 제공하기 시작했고 회사에 와서는 먹고 마시는 일로 돈을 쓰는 일이 없도록 했죠. 콘텐츠 분야는 늦게까지 근무하는 게 다반사다 보니 안전하게 귀가하라고 택시비를 지급하게 됐어요. 고시원에 살고 있던 직원이 ‘다리를 쭉 펴려면 방문을 열어야 할 수준’이라고 한 말에 충격을 받아 직원용 아파트형 기숙사를 두기 시작했죠” 올해는 남자 직원을 위한 기숙사 아파트도 확충할 계획이다.

부모의 관점에서 직원들에 대해 걱정되는 부분을 해소하다 보니 자연스레 복지로 연결된 경우였다.

캐리TV를 이끌어가는 케빈(왼쪽부터), 캐리, 엘리 캐릭터 친구들 /사진제공=캐리소프트
현재 서울 본사에 일하는 직원 75명을 포함해 중국 상해와 홍콩에 있는 해외 법인까지 합하면 직원은 100명에 달한다. 삼 년만에 100명 규모의 회사로 성장하기까지 우상향의 그래프만 거친 건 아니었다. 2014년 8월 ‘캐리와 장난감 친구들’ 채널을 론칭하고 네 달 뒤인 12월 말 결산을 하니 매출이 17만원에 불과했다. 고민도 많았지만 아이들이 댓글을 통해 남겨주는 반응을 받는 게 너무 재밌었다. 피드백을 보며 다음 콘텐츠를 올리고 또 그걸 반복하면서 6개월 하고 10일 만에 구독자 수가 1만명을 돌파했다.

캐리와 장난감 친구들을 사랑하는 구독자들이 늘어나면서 행복과 동시에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도 생겼다.

캐리와 장난감 친구들에서 애완동물을 소개하는 콘텐츠에 출연자인 케빈(왼쪽)과 루시와 나란히 캐릭터인 캐리가 동시에 등장하고 있다. 캐리소프트는 출연자와 캐릭터 간 시너지를 중요시한다. /사진제공=캐리TV
“크리에이터 중심이라면 출연자가 바뀌는 순간 채널의 정체성도 달라져요. 출연자에 좌우되는 게 아니라 세대를 넘어서도 유효한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 답이 캐릭터였죠”

그해 겨울부터 디자인팀을 신설한 뒤 캐리소프트의 미래를 책임지는 베이스캠프로 삼았다. 캐리·엘리·케빈 캐릭터를 만들어 각기 다른 성격과 취향, 출신 배경 등 세계관을 구축했다. ‘캐리와 장난감 친구들’을 비롯해 캐리앤북스, 캐리앤송, 엘리가 간다 등 10개에 달하는 채널에는 크리에이터인 캐리와 친구 엘리·케빈 외에도 별도의 캐릭터 캐리·엘리·케빈이 개성 강한 인격체로 등장한다. 사람을 캐릭터화하면 실패한다는 업계의 징크스도 깼다. 그 결과물은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최한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에서는 캐릭터 부문 대통령상으로 나타났다. 회사가 자리를 잡아가면서 언론사에서 일하던 남편인 박창신(50) 대표도 캐리소프트에 합류해 부부가 이끄는 회사가 됐다.

캐리는 동양인, 엘리는 북미, 케빈은 중남미계로 설정해 해외진출까지 노렸다. 중국에서는 벌써 25억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했다. 유튜브 채널로 시작했지만 지적재산권(IP)을 확보한 만큼 공연, 420종의 캐릭터 제품, 게임, 키즈카페까지 콘텐츠 영역을 점차 키워가고 있다. 캐릭터 장인의 손에서 성장한 캐리는 지금의 캐리 세대가 어른이 되면 캐릭터 중 가장 높은 20조원의 가치를 가진 일본 ‘헬로키티’ 같은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권 대표의 목표는 캐리소프트의 콘텐츠를 엄마·아빠 몰래가 아니라 함께 보도록 만드는 것이다. 키즈 콘텐츠 업계의 성장 가능성에 대해 묻자 “저출산으로 인해 어린이는 줄지만 어린이 하나를 중심으로 한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고모 등의 가족 구성원은 더 끈끈해지는 것 같다”며 “키즈 콘텐츠에서 가족 구성원을 아우르는 패밀리 콘텐츠로 방향을 확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패밀리 콘텐츠 기업인 만큼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며 “아시아의 디즈니 같은 오리지널 콘텐츠들을 만들겠다”고 했다.

“캐리는 1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캐릭터가 될 거예요 . ‘순간순간 아이들의 시선을 받고자 트래픽 올리려고 하는 건 하지 말자’는 게 아직도 일순위에요” /정혜진기자 made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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