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 앞둔 中年'의 깨달음.. 귀 기울여 주고, 져 주리라

김인구 기자 2018. 1. 17.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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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약(柔弱)이 승강강(勝强剛) 지는 게 이기는 거예요. 때론 질 줄도 알아야 강자를 이기는 법입니다."

"칸트는 70대 중반에 인간학을 썼고, 미켈란젤로는 팔순을 넘기면서 성 베드로 대성전의 천장을 어떻게 만들지 고민했다"며 "70∼80대도 이젠 중년, 인생 최고의 시기"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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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문집 ‘처음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출간 유안진 詩人

골목길 걸으며 다져온 생각들

33편 에세이엔 섬세한 감수성

柔弱이 勝强剛… 지는게 이겨

‘이목구비’표현, 듣는 것 강조

부모는 자식 통해 성장 ‘감동’

30년 된 ‘지란지교를 꿈꾸며’

여전히 읽혀… 놀랍고도 과분

“유약(柔弱)이 승강강(勝强剛)… 지는 게 이기는 거예요. 때론 질 줄도 알아야 강자를 이기는 법입니다.”

산문 ‘지란지교를 꿈꾸며’로 잘 알려진 유안진(77) 시인이 산문집 ‘처음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가톨릭출판사)를 펴냈다. 1993년 클라라라는 가톨릭 세례명을 받은 이후 신앙인이자 작가로서 이어온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의 글이다.

30여 년 전 출간된 명작 에세이 ‘지란지교를 꿈꾸며’가 40대 중반의 나이에 고단한 삶에서 느낀 단상을 철학적 고민으로 승화시킨 작품이라면, 이번 에세이는 팔순을 앞둔 인생의 완숙기에서 바라본 자기 고백과 종교적 깨달음을 담고 있다.

5부로 나뉘어 실린 33편의 에세이들은 소제목에서부터 유 시인 특유의 섬세한 문학적 감수성이 묻어난다.

1부 첫 편 ‘발은 동사이고 머리라고’가 대표적이다. 유 시인은 오랫동안 즐겨온 늦은 밤의 산책 습관을 소개하며 걷기와 생각, 글쓰기를 연관시킨다. 그는 루소, 칸트 등 18세기 사상가들이 산책과 사유를 동일시했던 것처럼 지난 37년간 서울 서초구 방배동 집 근처의 골목길을 걸으며 엉뚱한 상상을 하고 시상(詩想)도 떠올렸다. 그는 “나의 시 ‘발로 생각한다’는 걷다가 얻은 것”이라며 “동네 골목길에는 여러 층위 삶의 모습이 배어 있다”고 말했다.

‘검정색 철학과 지는 게 이기는 것’에서는 검은색에서 모성(母性)을 발견한다. “모든 색이 다 모이면 검정색이 되듯, 우리의 모든 잘못이 모이면 흰 치마도 검정색이 되지. 그래서 위로와 평화의 색상, 모성성을 가장 잘 대변하는 색상”이라며 “지는 게 이기는 것”이라고 했던 자신의 어머니를 교차시킨다.

‘80살도 중년기! 인생 최고의 시기’에선 나이를 거스르는 에너지를 엿볼 수 있다. “칸트는 70대 중반에 인간학을 썼고, 미켈란젤로는 팔순을 넘기면서 성 베드로 대성전의 천장을 어떻게 만들지 고민했다”며 “70∼80대도 이젠 중년, 인생 최고의 시기”라고 강조한다. 그는 “2014년 남편(김윤태 서강대 명예교수)을 갑자기 떠나보낸 후 너무 막막하고 힘들었는데 차츰 ‘이러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고, 뭔가 의미를 찾고 싶었다”며 “나 스스로 삶의 한계를 정하지 말자, 누군가에게 짐이 되는 사람은 되지 말자는 생각에 썼다”고 밝혔다.

그런 점에서 ‘귀 먼저’와 ‘자식의 은혜로 부모님 은혜까지’는 중·노년의 삶을 어떻게 아름답게 만들어야 할지에 대한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귀 먼저’는 “이목구비의 시대는 가고, 요즘은 눈코입귀의 신시대가 된 것 같은데 우리 옛 문화는 이목구비 즉, 귀 먼저를 권장한 특징이 있다”며 “먼저 듣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리고 “모든 부모는 자식을 낳으면서 부모로 태어나 자식과 함께 성장해 간다… 자식의 은혜로 부모가 되어서 부모님의 은혜도 더듬어 뉘우치며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다는 것이, 평범하나 감동적인 영예요 성공이라면, 구닥다리의 철학일까”라고 반문한다.

유 시인은 “우리는 자라면서 성장할 수 있는 몇 번의 기회가 있다. 결혼과 출산이 그중 하나인데 이를 통해 현실을 느끼고 (인생에) 중요한 것이 바뀌어버렸다”면서 “애들이 자라고 부모는 같이 성장한다. 부모를 만드는 것은 자식이고, 사람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땜빵 원고’에서 시작된 ‘지란지교를 꿈꾸며’가 30여 년이 지나도록 읽히는 걸 보고 놀랍고 과분함을 느낀다”며 “이번 글 모음도 부끄러운 마음이 앞서지만 글을 통해 폭로되는 치부와 약점이 독자에게 한 모금의 위로와 치유가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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