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통화·블록체인 논쟁,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박병률 기자 입력 2018. 1. 17. 06:00 수정 2018. 1. 17.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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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손혁 계명대 교수, 화폐 불신 대중 블록체인으로, 기존 가상통화 거품은 꺼질 것

“블록체인이라는 신기술은 거래는 물론 회계정보 산출 등 모든 분야에서 사용되는 도구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손혁 계명대 회계학전공 교수(사진)는 16일 경향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나도 경제학을 공부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가상통화는 17세기 튤립과 같은 운명을 갈 것이라고 잠시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을 수정해야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튤립광풍이란 1637년 네덜란드에서 튤립에 대한 이상 선호현상이 생겨 구근 가격이 끝없이 치솟다가 한순간에 폭락한 사건을 말한다. 자본주의 역사에서 대표적인 버블 사례로 남아 있다.

손 교수는 “지금 가상통화는 그 자체로는 튤립처럼 아무런 쓸모가 없지만, 블록체인이라는 시스템은 튤립처럼 시들지 않고 (거래의) 신뢰성을 부여한다는 것이 다르다”며 “투명성과 신뢰성이 녹아든 가상통화는 가치가 생기고, 그러면 가상통화는 거래의 매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블록체인의 가치를 부여한 것은 정부와 기관에 대한 불신이라고 분석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돈을 모을 수 없는 현 경제체제에서는 정부가 주도하는 화폐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약화됐고, 대중은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해킹도 어렵고 조작도 어려운 블록체인에 더 높은 신뢰를 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손 교수는 “블록체인 시스템을 대중이 이해하고 사용하게 된다면 아마 돌이킬 수 없을 것”이라며 “설사 비트코인 등 기존 가상통화의 신뢰성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블록체인이 붕괴되기보다 더 진보된 가상통화가 이를 이어받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손 교수의 전공인 재무회계 분야에서도 혁명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고질적 문제였던 세무회계의 신뢰성이 대폭 향상될 수 있다. 그는 “지금은 기업 경영자 입장에서 재무제표가 작성되고, 이해관계자는 시차를 두고 그 정보를 취득해 때로 분식회계 등의 문제가 생긴다”며 “하지만 블록체인으로 실시간 장부를 공유할 수 있게 되면 기업에 유리한 정보만을 제공하기도 어렵거니와 이해관계자는 곧바로 정보를 얻을 수 있어 투자자를 속이기 매우 어렵게 된다”고 말했다. 이런 세상에서는 세무사·회계사는 역할이 축소돼 사라질 수 있다.

손 교수는 “물론 이는 블록체인과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이 접목되어야 가능한 일로 앞으로도 긴 시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최근 가상통화를 둘러싼 열풍에 대해서 그는 “결국은 꺼질 것”이라고 말했다. 손 교수는 “현재 시장가격을 움직이는 주체인 수요자와 공급자는 시장가격이 내재가치에 비해 과대 혹은 과소 평가되었는지 알기 어려운데, 이때 투기적 수요가 가미되면 내재가치와 상관없이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라간다”며 “하지만 희극은 여기까지고 어느 순간 내재가치와 시장가격의 차이가 큰 것을 깨닫게 되면 비극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문송천 카이스트 교수, 금융거래 응용에만 30년 걸려…블록체인도 해킹당할 수 있어

문송천 카이스트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사진)는 “블록체인은 30년 전에 나온 기술로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라는 말은 지나치게 과장됐다”고 말했다. 문 교수는 한국 전산학(컴퓨터공학) 1호 박사로 전산과 보안 분야를 이끌어온 대표적인 선구자로 손꼽힌다.

문 교수는 16일 경향신문과의 전화인터뷰에서 “블록체인 기술은 이제서야 금융거래 쪽에서 응용 분야를 찾은 것”이라며 “여기까지 오는 데도 30년이 걸렸는데 너무 장밋빛 이상형을 펼쳐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비유하자면 블록체인은 고속도로 같은 인프라고 가상통화는 자동차다. 길이 깔리면 자동차도 다닐 수 있고 트럭도 다닐 수 있다. 가상통화는 수많은 자동차 중 하나라는 것이다. 그는 “블록체인은 확실히 스마트계약, 공인인증서 이런 부분에는 좋은 수단”이라고 말했다.

‘블록체인이 해킹이 불가능한 기술이라서 신뢰를 받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문 박사는 “‘뚫을 수 없는 암호는 없다’는 애드거 앨런 포의 말처럼 어떤 시스템이든 허점은 있다”며 “블록체인도 해킹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암호기술은 음식으로 치면 양념으로 양념을 많이 쳐서 어떤 양념을 쳤는지 모르게 하는 것”이라며 “하지만 소비자가 무슨 양념을 쳤는지 끝내 알아내려 하고, 그러면 양념을 더 쳐서 헷갈리게 하는 ‘고양이와 쥐’처럼 쫓고 쫓기는 게 암호기술이지 완벽한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문 박사는 내부자에 의한 해킹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는 “역대 해킹 사례는 대부분 내부자에 의해 일어났다”며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내부자가 관련돼 있는데 그 내부자가 개발자 본인인지 혹은 개발자를 보조한 그룹인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전자상거래 보안체계인 보안소켓계층(SSL) 해킹을 예로 들었다. SSL은 가장 고난도 암호기법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미국 국가안전보장국(NSA)이 자신들만 드나들기 위해 마련해 놓은 뒷문을 통해 해커들이 침입했다는 것이다. NSA의 실수였던 것인지, 의도적으로 열어둔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문 박사는 “블록체인은 해킹이 불가능하다는 것도 너무 과장된 얘기”라며 “기술만 봐서는 안되고 사회가 법 제도로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큰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블록체인 기술의 응용 분야로 “쌍방 간 계약을 하는 분야에서 중개인이 끼는 분야라면 모두 적용가능하다”며 “유통에서도 거래비용이 획기적으로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다만 중개인들은 일자리를 잃게 될 수 있다”며 부동산중개인, 세무사·회계사 등과 중간 유통상 등을 사례로 꼽았다. 그는 “가장 민감한 것이 일자리인데 과연 사회가 그 같은 급격한 변화를 용인하겠느냐”며 “법제화돼 제도권으로 편입되는 것을 최대한 늦추려고 할 것이기 때문에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박병률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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