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손으로 그린 호돌이, 지금 봐도 세련"
인형·부채 등 기념품 1000점 수집
영화 포스터 디자인회사 '프로파간다'에 들어서는 순간 오래된 문구점이나 비디오 가게에 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낡은 비디오테이프, 아기자기한 장난감과 피규어(인형) 따위가 가득했다. 그 사이사이로 호돌이가 보였다. 호돌이라고? 맞다. 88 서울올림픽 마스코트였던 그 호돌이다.
이 회사 최지웅(42) 실장은 자타공인 서울올림픽 마니아다. 1988년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미술을 좋아했던 소년은 귀여운 호돌이가 좋았다. 그때부터 호돌이 인형부터 컵·재떨이·부채 같은 기념품까지 올림픽과 관련된 것이라면 뭐든 모았다. 지난 연말 그 수집의 기록인 '88서울'을 펴냈다. 예사로운 물건도 모으면 예사롭지 않게 된다는 걸 보여주는 책이다. 16일 서울 신사동 프로파간다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호돌이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최지웅은 "달리기 동호회원들이 유니폼으로 맞춘 티셔츠"라며 "호돌이는 30년 된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고 어릴 적 친구 같다"고 했다. "3D(입체) 그래픽을 쓰는 요즘 캐릭터와 달리 평면에 손으로 그린 호돌이는 독특한 빈티지 느낌이 매력적"이라고도 했다.
서울올림픽 당시 강원 원주에 살았던 그는 경기를 직접 보진 못했다. 그러나 "거리마다 포스터가 붙고 매일 저녁 6시면 올림픽 주제가 '손에 손잡고'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던 그 설렘이 좋았다"고 했다. 올림픽 열기가 잦아든 뒤에도 수집은 계속됐다. "물건 모으는 걸 좋아해서 일요일마다 서울 동묘 앞 벼룩시장에 가는데, 매번 호돌이 인형 같은 게 하나씩 보여요. 친구들이 대청소하다 찾았다며 건네준 기념품도 많아요. 그간 모은 게 1000점은 될 거예요."
최지웅은 '프로파간다 시네마 그래픽스'라는 독립 출판사를 함께 운영하면서 매년 말 인디 도서전 '서울아트북페어'에 참가하고 있다. 88올림픽 30주년을 맞아 작년 12월 출품한 책이 '88서울'이었다. 그는 "일본에서 주문이 많이 들어와 놀랐다"며 "일본에서도 '호돌이쿤(君)'을 기억하고 있더라"고 했다. 책은 소규모 독립 서점에서 판매한다. 초판 1000부가 모두 팔렸고 2쇄를 준비 중이다.
책에는 당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디자이너들 이야기도 나온다. 올림픽 공식 휘장을 디자인한 양승춘 전 서울대 교수는 지난해 별세해 직접 만나지 못했지만, 호돌이를 만든 김현 디자이너로부터 당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요트 타는 호돌이, 축구하는 호돌이처럼 응용 동작을 디자인할 때마다 스무 개가 넘는 종목별 협회에 가서 도안을 승인받아야 했다고 들었다"며 "후배로서 이런 디자인 역사를 구술로 정리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최근엔 평창 동계올림픽 성화 봉송에 참여해 인천에서 뛰었다. 주자 모집에 응모하면서 자신을 '서울올림픽 덕후(마니아의 은어)'로 소개했다고 한다. 그는 "평창올림픽은 1988년처럼 분위기가 뜨겁지 않은 것 같지만 대회가 시작되면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2002년 월드컵도 개막식 때까지 열기를 느끼기 어려웠는데 우리 선수들이 이기기 시작하면서 확 타올랐죠. 평창도 분명히 그렇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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