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 그늘에서, 자본 권력에 맞서 싸우는 '예술 게릴라'

김종목 기자 입력 2018. 1. 16. 21:44 수정 2018. 1. 17.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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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전천후 독립 예술창작집단 ‘리슨투더시티’
ㆍ“비정치적 예술은 없다” “체제의 근본을 흔들자”

리슨투더시티 멤버인 장현욱·박은선·윤충근씨(왼쪽부터)가 지난 10일 서울 수표동 사무실에서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잡다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김종목 기자

전시장에서 ‘리슨투더시티’ 작품을 처음 본 건 지난 12월이다. 이들은 서울 통의동 보안여관에서 열린 ‘따뜻한 밥상’전에 <옥바라지-끝나지 않은 편지 : 무릎 꿇고 사느니보다 서서 죽기를 원한다>를 내놓았다. 영상은 콜트콜텍 노동자, 파인텍 노동자, 궁중족발 사장 부부와 연대자들이 김근태·인재근의 편지를 읽는 행위로 구성됐다. 두 사람의 ‘편지를 통한 연대’를 지금 투쟁하는 이들의 연대로 확장하는 작품이다. 관람객을 연대로 이끌어내는 작업이기도 하다.

<옥바라지-끝나지 않은 편지>는 리슨투더시티의 활동·지향을 보여주는 척도다. 이들은 한국 사회의 권력·모순·폭력 문제를 시각화하는 작품을 주로 만든다. ‘공간을 소유하는 권력 관계’에 관심이 많다. 한국 사회의 모순과 폭력이 땅을 두고 나타나기 때문이다. 제5회 도시영화제는 김동원의 <상계동 올림픽> <내 친구 정일우>, 김일란·홍지유의 <두 개의 문>, 김경만의 <골리앗의 구조> 같은 잔인한 철거폭력을 소재로 한 영화를 틀었다. 자신들이 만든 <청계천-DDP 젠트리피케이션>도 출품했다. 뉴타운 이후 도시 해체를 영상화한 감독과의 이야기를 담은 <도시의 목격자>는 서울시립미술관 ‘2017 서울 포커스 [25.7]’에도 초대받았다. 연말연시 가장 활발한 창작 결과를 내놓은 예술집단이다.

리슨투더시티는 한국 사회의 모순·폭력을 다룬다. 위부터 ‘옥바라지 골목’ 보존 퍼포먼스(2016), 내성천보존을 위한 영주댐 반대(2014), 거리 투쟁 사진집 ‘싸움’ 발간(2016). 리슨투더시티 제공

리슨투더시티의 작품은 사회적이고 정치적이다. 어떻게 불러야 할까? 정치·사회 예술운동 집단? 지난 10·12일 청계천 인근 수표동 사무실과 체부동 궁중족발에서 두 차례 이들을 만났다.

수식어에 관해 물었더니 이렇게 답한다. “사회적 예술, 정치적 예술이란 게 어디 따로 있나요. 사회적이지 않은 예술부터 가져와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우리 보고 정치적 미술 운동을 한다는 말을 들을 때면 답답해요.” 디렉터 박은선씨의 말이다. 그가 보기에 ‘비정치적 미술 또는 예술’은 없다. “예술의 장점은 여러 장르를 탄력적으로 흡수하고, 혼합할 수 있다는 점이죠. 예술가는 글을 써도 되고, 퍼포먼스를 해도 되고, 영화를 만들어도 되고, 집회를 해도 됩니다.” ‘도시에서 보이지 않는 것들을 여러 매체·방식으로 드러내는 것’, 리슨투더시티의 예술 창작 모토다.

자본 권력에 맞서는 이들에게 항상 부족한 건 ‘자본’이다. 리슨투더시티 멤버들은 보통 두 가지 이상 일을 한다. 1인당 월 20만~30만원가량 번다고 한다. 최저임금에도 턱없이 못 미친다. 그렇게 번 돈을 또 작품에 넣는다. 후원 회원을 따로 두진 않는다. 작품 때마다 연대하는 이들이 나와 수고를 조금 던다. “왜 하세요?” 세속적인 질문에 박씨가 웃으며 답한다. “그러게 말이에요.” 지난 10년간 멤버들은 길면 4년, 보통 2년 안팎을 하다 나갔다. 박씨는 “돈을 벌겠다는 희망을 전혀 안 가지고 있다”며 다시 웃었다.

이야기는 2009년 리슨투더시티 만들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명박·오세훈 두 서울시장 때 청계천 개발, 4대강사업, 디자인서울을 두고 제대로 다루는 이들이 없었다. 박씨는 “다들 개발주의 환영에 빠져 있었다. 더 비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다. 잡지도 만들고, 전시도 하고, 세미나도 열었다. 한국 사회 불평등과 불합리의 근저엔 개발과 토건 문제가 있었다. 영주댐 건설로 파괴 위기에 내몰린 내성천을 지율 스님과 함께 답사하고, 재개발에 내몰린 무악동 ‘옥바라지 골목’ 보존에 나서고, 건물주의 퇴거 조치에 맞서 점거투쟁 중인 궁중족발 현장을 지키는 것도 이런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 리슨투더시티는 대중이나 미술계가 불편해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2018평창동계올림픽반대 모임에도 연대한다. 리슨투더시티는 3일짜리 경기를 위해 가리왕산 나무를 자른 것이나 결국 시민들이 부담해야 할 사회간접자본 시설 투자는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돈도 못 벌고, 화제를 일으키기도 어려운 일을 왜 할까? 이들의 활동은 체제의 근본을 뒤흔들려는 시도다. 하지만 체제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다시 리슨투더시티의 의의를 물었다. 멤버 장현욱씨가 도시영화제를 예로 들며 말한다. “우리가 기획한 영화제를 함께 보면서 당사자들이나 연대자, 관객들이 함께 의미를 만들어갈 수 있다. 다른 작품들도 마찬가지다. 관객 수가 중요한 건 아니다”라고 했다.

윤충근씨가 처음으로 말문을 연다. “경제적 가치를 추구했다면 여기 오진 않았을 것 같아요. 돈으로 재단할 수 없는 가치들이 있죠. 저는 거기에 공감해 리슨투더시티에 참여했어요. 다들 우리 말을 들어줄 것이라고 기대하지도 않아요. 하지만 계속 신호를 보내면 한 명이라도 들어주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요? 저도 그랬어요. 우리 작업 메시지를 한 사람이라도, 한 번이라도 생각하면 가치가 있지 않을까요.”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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