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이야기 쓰려 했는데..내면 세계를 그리다 보니 사랑 이야기가 됐다

김향미 기자 2018. 1. 16.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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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신작 장편 ‘홀딩, 턴’ 펴낸 서유미 작가

서유미 작가는 두 사람이 선택한 결혼과 5년 간의 결혼생활에서 어떻게 균열이 일어나는가를 써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스윙댄스에서 춤을 시작하기 전 파트너의 손을 잡는 자세를 ‘홀딩’이라 하고, 각자의 방향으로 돌아서는 걸 ‘턴’이라고 한다.

서유미 작가(43)의 신작 장편소설 <홀딩, 턴>(위즈덤하우스)은 명료한 제목을 가졌다. 결혼 5년, 사랑했던 두 사람이 이혼하는 과정을 그렸다. 이 이야기에는 흔한 이혼의 서사, 이를테면 불륜이나 경제적 어려움, 고부갈등, 아이 문제 등이 등장하지 않는다. 단지 결혼을 선택한 두 사람의 관계가 어디서부터 어그러지는가를 작가는 깊게 파고들었다. 지난 11일 오후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서유미 작가를 만났다.

극 중 지원과 영진은 스윙댄스 동호회에서 만나 사랑에 빠졌다. 아동복 판매점 점장인 지원과 9급 공무원인 영진의 “밋밋하고 평범한 삶”에도 사랑은 낭만적 기호로 가득했다. 작가는 이별 이야기를 쓰려고 했는데 쓰고 보니 사랑 이야기가 됐다고 했다.

“이혼하려는 인물을 그리려는데 이들의 움직임에 울림이 없었어요. 두 사람이 사랑한 이야기를 쓰지 않을 수 없었죠. 저 역시도 사랑 이야기를 쓸 때는 신나고 즐거웠어요.”

작가는 결혼이 두 사람의 선택에 의한 관계맺음인데도, 왜 균열이 일어나는가를 쓰고 싶었다고 했다. 둘의 다툼은 영진이 퇴근 후 발을 씻지 않았고, 그 냄새를 지원이 참지 못하서 시작됐다. 그 다툼으로 둘은 한 공간에서 일주일 이상 말도 하지 않고, 서로를 견딘다. 그 ‘숨 막힘’은 지원이 이혼을 생각하게 되는 직접적인 감정이다. 작가는 소설을 쓰기 위해 결혼한 여러 사람들에게 ‘언제 가장 이혼을 하고 싶은가’를 묻고 이야기를 들었다. “의외로 사소한 것들을 못 참겠다는 답이 많았어요. 결혼생활 속에서 상대 특유의 습성이나 습관 때문에 버티기가 어렵다고요. 영진이 연애 때라면 발에서 냄새가 난다는 걸 먼저 인지했겠죠. 결혼을 하면서 편하다는 이유로 서로에게 막말을 하기도 하죠. 그런 것들이 쌓여가면서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지원에게는 매달 모임을 가지는 친구 두 명이 있다. 한 명은 이혼 경험이 있고, 다른 한 명은 결혼해서 아이가 있다. 지원의 언니는 비혼이다.

“여성들의 보편적인 모습을 담아보려 했다”는 작가의 말처럼, 결혼과 관련해 여성들은 각기 다른 경험을 한다. 이들은 모두 지원에게 “스스로에게 행복한 결정”을 권유한다. “한쪽의 관계가 끝나지만 다른 관계는 따뜻하고 돈독하게 그리고 싶었어요. 관계가 상처를 주지만 또한 관계가 사람을 위로하고 사람을 살게 하잖아요.”

소설을 읽다 보면 영진에게도 설득당한다. 결혼한 남성에게도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아보고 싶은 열망이 있고, 지원의 행동에도 영진이 이해 못할 부분이 있다. 작가는 “결혼한 남성에게는 직장생활을 할지, 전업주부를 할지 등 선택권이 거의 없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한편으로는 한 인간의 내면에 지원도 있고 영진도 있기 때문에 영진의 입장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유미 작가는 2007년 <판타스틱 개미지옥>으로 문학수첩작가상을, <쿨하게 한 걸음>으로 창비장편소설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번 소설은 2015년 <틈>, <끝의 시작> 이후 3년 만에 발표한 작품이다. 사회 비판적인 시선을 유지하면서 다양한 인간 군상을 그려왔던 작가는 근래 발표작에선 인물 내면에 집중한다.

“초반엔 노동하는 인간에 관해 많이 썼어요. 한 사건에 여러 인물이 얽혀 지나가는 관망하는 글을 주로 썼었죠. 그런데 요즘에는 사람을 함부로 대한다든지 하는 사회적 문제는 늘 있는 것이고, 거기에 저항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일을 겪는 사람들이 내면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고 무너지는 게 더 큰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가는 지난 7일 문재인 대통령과 블랙리스트 피해 작가로 점심을 함께 먹었다. 그는 블랙리스트에 자신이 올랐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땐 별거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최근 블랙리스트가 실행돼 실제 지원배제가 이뤄졌다는 사실을 접하고는 새삼 놀랐다고 했다. “한 8년간 단 한 번도 지원금을 받지 못했어요. 제가 잘 못 써서 지원받지 못한 것이라고만 생각했어요. 저쪽을 탓하는 게 아니라, 나를 탓하게 하는 것. 그게 인간 말살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올해로 12년차 소설가. 작가는 그사이 여섯 살 아이의 엄마가 됐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달라진 것 같다고 했다. “부쩍 쓸 수 있을 때 많이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다”는 작가는 올해 소설집과 에세이를 각각 출간할 예정이다. 장편으로는 재개발, 도시개발로 사라진 것들에 관한 이야기를 구상 중이다.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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