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카페 가입 거부당한 육아빠, 밖에 나가면 "엄마는 어딨니?"

홍현진 입력 2018. 1. 16.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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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육아빠로 산다는 것①] 육아빠 3인이 말하는 '현실육아'

[오마이뉴스 글:홍현진, 편집:최은경]

‘육아=엄마의 일’이라는 구닥다리 공식을 벗어나 적극적으로 육아에 참여하는 아빠들, ‘육아빠’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최악의 저출산 사회, 2018년 대한민국에서 육아빠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육아빠와 워킹맘의 솔직한 목소리를 들어봅니다. 또한 새로운 ‘아빠 노릇’을 고민하는 이들을 만나봅니다. <편집자말>

아빠들이 달라지고 있다. EBS <하나뿐인 지구>는 '신인류의 탄생-모던파더'라는 제목의 방송을 내보냈다. '아이와 자신의 취미를 나누고 일상을 공유하며 친구처럼 살아가는 것을 인생의 가장 소중한 가치로 두는 아빠'. 현대판 아빠 '모던파더(Modern Father)'의 정의다.

이전의 아빠들이 가정보다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고 '육아는 엄마의 일, 회사에서 돈 버는 건 아빠의 일'이라고 생각했다면, 모던파더들은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일보다는 가정을 중시한다.

이러한 '대담한' 아빠들을 위한 잡지도 나오고 있다. 김치호 <볼드저널>(bold journal) 발행인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버지'들을 위한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스스로 아버지이기도 한 김 발행인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야근이 잦았고 가족관계가 흐트러지기 시작했다며, 삶의 기본을 가정에 둬야 한다고 생각해 사표를 내고 잡지를 만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독박육아와 경력단절로 지친 여성들이 급기야 '출산파업'을 선언한 저출산 시대. '아빠 육아 참여'는 저출산을 극복할 핵심 키워드이기도 하다. 고용노동부는 2022년까지 아빠 유급 출산휴가를 현행 3일에서 최대 10일로 확대하고, 오는 7월부터는 부부가 모두 육아휴직을 쓸 경우 두 번째 육아휴직자(90%가 아빠)의 첫 3개월 급여를 150만 원에서 200만 원으로 올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2018년 새해를 맞아 적극적으로 육아에 참여하는 '육아빠'(육아하는 아빠) 3인을 한 자리에 모았다. 이들은 모두 직장생활과 육아를 함께 하는 '워킹대디'이기도 하다. 좌담회는 7일 일요일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이날 좌담회엔 3살, 5살 아이들이 함께 했고 대화는 종종 갈 길을 잃고 끊겼다. 이후 추가로 인터뷰를 했다. 2018년 한국 사회에서 육아빠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육아빠를 힘들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저출산 대책에 대한 생각은 어떤지 등 허심탄회한 이야기가 오고갔다.

인터뷰 참가자

빅베어(35세, 전문직 직장인, 3살 아이 1명, 맞벌이)
선기자(37세, 언론사 기자, 5살 아이 1명, 맞벌이)
늘이아빠(40세, 애니메이션 감독, 3살 아이 1명, 맞벌이)

 2016년 6월 19일 오후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김구기념관에서 보건복지부 개최로 열린 '100인의 아빠단 6기 발대식'에서 참여한 아빠와 아이들이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2011년 시작된 '100인의 아빠단'은 육아에 관심이 있는 아빠들이 육아를 즐겁게 하기 위한 고민을 서로 나누고 노하우를 공유하기 위해 보건복지부에서 만든 모임으로, 2018년 1월 현재 7기까지 진행되었다.
ⓒ 연합뉴스
아내와 자신의 육아 분담 정도를 평가해 달라는 질문에 '빅베어'는 자신이 4, 아내가 6인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직 직장인인 빅베어는 업계 특성상 출근 시간이 일반 직장에 비해 늦다. 대신 언제 퇴근할지 모르고 야근이 잦다. 아내는 출퇴근 시간이 규칙적이다.

아이가 오전 7시 전후로 일어나면 아내가 출근한다. 이후 어린이집 등원 시간인 9시까지 2시간 넘게 빅베어 혼자서 아이를 본다. 아이와 놀아주고 밥 챙겨 먹이고 옷 입히고... 그렇게 전쟁을 치르고 출근하면 일도 시작하기 전에 피곤하다.

아내는 하원 이후 아이가 잠들 때까지 저녁 시간을 담당한다. 시간상으로는 '반반육아'다. 다만 노동강도가 강하고 근무시간이 불안정한 자신보다는 아내의 육아부담이 더 큰 것 같아서 아내의 비중을 60%라고 답했다. 아이가 아프거나 급한 일이 생겼을 때 휴가를 내는 건 주로 아내다.

언론사 기자로 일하고 있는 '선기자'는 자신의 육아 비중을 60%라고 평가했다. 아이와 물리적으로 보내는 시간이 더 많기 때문이다. 출산 후 한동안 경력단절 상태였던 아내는 구직과 이직을 반복하다 최근 재취업을 했다. 육아로 경력이 단절되었던 아내의 새로운 커리어를 위해 선기자는 자신이 적극적으로 지원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어린이집 알림장을 쓰고 어린이집 상담을 가는 것, 아이를 소아과에 데려가는 것도 주로 선기자가 한다. 하원도 그가 담당하고 있다. 퇴근 후 아이와 놀아주고 씻기고 재우다 보면 정작 자신은 밥도 못 챙겨 먹고 잠들 때가 있다.

덕분에 저녁 취재나 취재원과의 저녁 약속은 거의 잡지 못한다. 불가피한 취재가 생기면 아내와 일정을 조율하느라 애를 먹기도 한다. 가끔씩은 '무능한 기자'가 된 것 같아 불안하다. 다만 그동안 아내의 희생 덕분에 자신이 하고 싶었던 취재를 마음껏 하고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을 위안 삼는다. 이날도 선기자는 인터뷰에 아이를 데리고 왔다. 함께 노는 모습이 노련하다.

조부모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는 두 사람과 달리 '늘이아빠'는 장모님이 아내가 출근해있는 동안 아이를 봐준다. 빅베어와 마찬가지로 출근 시간에 여유가 있는 늘이아빠는 아침에 비몽사몽인 아이를 깨우고 옷을 입혀서 처가까지 데려다 준다. 차로 40분 정도 걸리는 쉽지 않은 여정이다. 초반에는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아이를 데려다 주다가 차를 한 대 장만했다. 퇴근 후 친정에 들러 아이를 찾아오는 것은 주로 아내 몫이다.

애니메이션 감독인 늘이아빠는 작은 애니메이션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아이가 태어난 후 그는 1개월간 출산휴가를 썼다. 신생아 시절만 해도 육아비중이 거의 반반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아내가 7, 자신은 3이다. 새로운 일이 시작되면서 바빠졌기 때문이다.

늘 야근을 하고 밤에는 자는 아이 얼굴 잠깐 보는 게 전부다. 그나마 주말에는 같이 육아를 하려고 신경을 썼는데 그마저도 요즘은 힘들다. 아내에게 너무 미안하다. 그래도 최대한 시간을 내서 육아에 참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같이 낳았으니까 당연히 같이 육아하는 거죠"

 "같이 낳았으니까 같이 (육아) 하는 거죠. 여자 혼자 키우는 건 맞지 않다고 봐요. 당연히 같이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공평하니까요."
ⓒ unsplash
세 사람에게 물었다. 아버지 세대와 달리 요즘 아빠들 가운데 '육아빠'가 늘어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냐고.

선기자 : "제 인생에서는 가족이 제일 중요하니까요. 저희 세대 같은 경우에는 대부분 아버지랑 별로 사이가 안 좋을 것 같아요. 저희 아버지는 좀 엄했고 육아에 관심이 없었고 늘 바빴어요. 아빠랑 사이가 데면데면 했던 것 같아요. 제 인생 최고의 목표는 아들과 잘 지내는 거예요. 성인이 돼서도 아들과 일주일에 한 번씩 맥주 한번 먹는 게 소망이에요. 제 사회적 성공도 물론 중요하기는 한데 둘 중에 어떤 게 중요하냐고 하면 가족, 아들과 함께 하는 거예요. 육아를 안 한다고 해서 정말 유명하고 대단한 기자가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보다는 아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더 중요해요."

빅베어 : "같이 낳았으니까 같이 (육아) 하는 거죠. 여자 혼자 키우는 건 맞지 않다고 봐요. 당연히 같이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공평하니까요. 육아를 하지 않는 남자들은 '애는 여자가 보는 것'이라는 사회 통념이 있으니까 그런 기득권을 놓고 싶지 않은 것 같아요." 

늘이아빠 : "비슷한 생각이에요. 합리적이지 않아요. 육아는 인생의 가장 큰 숙제 같은 건데, 성역할로 나눈다는 게 납득이 안 돼요."

- 보통 '주양육자'는 엄마로 인식 되는데요. 육아를 해보니 아빠도 주양육자가 될 수 있을 것 같나요?
빅베어 : "조부모의 도움을 받기 어려우니까 신생아 시절부터 적극적으로 육아에 참여했어요. 기저귀, 분유, 젖병 등 육아용품은 다 제가 인터넷으로 알아보고 샀고요. 일찍 퇴근하면 목욕시키거나 재우는 건 제가 맡아서 했어요. 이유식도 제가 만들었고요. 아내가 모유수유를 했는데 남자도 젖 주는 것 빼고는 다 할 수 있는 것 같아요(웃음). 엄마 아빠 역할이 딱히 다른 것 같지 않아요. 아이가 밤에 잘 때는 오히려 저를 더 많이 찾아요."

선기자 : "인류의 역사가 여자는 아이를 돌보고 남자는 수렵채집을 하고 그랬다고는 하는데 저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이가 많은 시간을 보내다 보니까 하루 종일 저 하고만 같이 있어도 엄마를 안 찾더라고요."

늘이아빠 : "아내가 좀 더 아이의 변화나 상태에 대해 섬세한 건 있는 것 같아요. 이게 남자의 성향인지 개인의 성향인지는 모르겠는데 저는 '얘가 왜 이러지? 왜 이러지?' 이럴 때가 아내보다 훨씬 많았던 것 같아요. 신생아 시절에는 반반 육아를 했는데도요. 감성적인 부분에서 차이가 나는 것 같아요."

빅베어 : "저는 제가 더 잘 알아챘던 것 같아요. 개인 차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건 있어요. 아이에게 필요한 책 같은, 아이 발달과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잘 신경을 못 써요. 어린이집 정보도 그렇고요. 저는 잘 놀아주고 먹이고, 교육 관련 부분은 아내가 정보를 얻어 와요."

- 엄마와 아빠가 얻을 수 있는 정보의 격차가 있는 것 같아요.
늘이아빠 : "아내는 아무래도 또래 엄마들 커뮤니티가 있으니까 아이 월령대에 맞는 육아법이나 그런 걸 잘 알아 와요. 그런데 제 친구들은 이미 아이가 초등학생이라 레벨이 안 맞고, 회사 사람들은 아이가 없거나 훨씬 어리고... 젖병은 뭐가 좋다, 기저귀는 뭐가 좋고. 이런 디테일한 걸 남자들끼리 대화에서 알아내기 어려워요. 의존할 곳은 인터넷밖에 없는데 우리 아이한테 꼭 맞는 정보를 찾기 어렵고요."

선기자 : "아내는 처형과 장모님에게 배울 수 있고 조리원 동기들도 있는데 저는 나름 노력한다고 이것저것 하는데 아내 입장에서는 미덥지 않거나 '왜 그것밖에 못해?'라고 할 때가 있어요. 조금씩 알아가려고 하는데 울컥 하더라고요. 어차피 아내가 잘 아니까 그냥 아내가 하면 안 되나, 그런 생각도 들고요. 괜히 방해만 하는 것 같기도 해요. '너도 같이 알아보자, 잘 할 수 있어' 그럼 관심 가지고 할 텐데..."

늘이아빠 : "'이거 어때, 저거 어때, 어떻게 생각해.' 물어봐주면 같이 정할 수 있을 텐데 기저귀나 이런 것들을 아내가 혼자 알아보고 다 사요. 저는 모르고 있다가 택배 오면 아내가 '왜 자기는 관심을 안 가져, 나만 왜 이걸 사야해? 나 없으면 혼자 애 볼 수 있겠어?' 이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어요. 점점 자신감이 떨어지고요."

빅베어 : "저는 반대로 제가 다 사는데 안 좋으면 아내가 엄청 뭐라고 해요. 자기는 신경도 안 썼으면서(웃음). 그런데 인터넷으로 알아보는 데는 한계가 있어요. 정보가 편향돼있고 광고성으로 올라오는 게시물도 많으니까요. 그래서 결국에는 제일 유명하고 잘 팔리는 걸 사게 되는 것 같아요."

"아빠들이 '애 때문에...' 잘 안 먹히는 것 같아요"

- 엄마들 같은 경우에는 아이를 낳고 사회적 관계가 단절되기는 하지만 대신 엄마 커뮤니티라는 새로운 관계가 생기는데 육아빠들은 그게 어려운 것 같아요.
빅베어 : "이직 하고 나서 아이가 바로 생겼어요. 임신했을 때는 아내랑 시간을 많이 보내고 아이 낳고 나서는 아이랑 시간을 많이 보내고. 회사 사람들이랑 술 먹는다든가 그런 관계를 전혀 생각 못했어요. 솔직히 저는 전문직이니까, 저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아니더라고요. 집단에서 도태됐어요. 그래서 아내에게 양해를 구하고 회사에서는 조금씩 관계를 복원하려고 하고 있어요. 비슷한 시기에 결혼한 또래 친구들은 다 애가 있으니까 만나기 어렵고 서로 시간 맞추기도 쉽지 않아요. 아내가 한번씩 나가서 친구들 만나고 오라고 하는데 갑자기 약속은 혼자 잡나요." 

선기자 : "저도 아내랑 크게 싸우고 밖에 나갔는데 만날 사람이 없더라고요(웃음). 지난 연말에 송년회를 딱 한번 했어요. 엄마아빠들 아이들 다 같이 모인 송년회였는데 애들 놀이방이 있는 감자탕 집에서 1차를 하고, 집에 가서 2차. 그게 유일한 송년회였어요. 사회적 관계가 많이 단절된 거죠." 

늘이아빠 : "제 육아 비중이 줄어들면 줄어들수록 아내 눈치가 많이 보여요. 제가 자리를 비우는 만큼 육아를 해야 하니까요. 정말 최소한의 모임만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술 먹고 집에 들어가면 오히려 정신을 더 바짝 차려요. 술 먹은 티 날까봐(웃음)."

빅베어 : "저는 술 먹고 늦게 들어가도 애가 새벽 6시 반에 일어나요. 아내는 출근하고. 몇 시간 자고 일어나서 애 봐야 하니까 그런 이유에서 술을 자제하는 것도 있어요. 그런데 남자들끼리는 술 마시고 야근도 같이 해주고 그러면서 유대감을 형성하는 문화가 있는 것 같아요."

- 아빠들이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회사 분위기'도 있어요.
빅베어 : "유난스럽게 보는 게 힘들어요. '애 때문에 일찍 집에 간다, 애 때문에 술도 못 먹는다' 그러면 유난스럽게 보더라고요. 그런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요. 같이 배우자를 욕하면서 친밀감을 쌓아야 하는 집단에서 혼자 튀면서 행동을 한다는 게... 회사에 또래들이 많은데 확실히 요즘 아빠들은 육아에 많이 참여하려는 것 같아요. 육아 안 하려고 야근 더 열심히 하는 윗분들도 계시지만요."

늘이아빠 : "애 때문에, 라는 말이 잘 안 먹히는 것 같아요. 그 당사자가 아이가 있어도 우선순위가 가족이나 아이가 되면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가정이 훨씬 소중하다'라고 말하면 '나도 내 가족이 소중해. 그런데 이 일이 더 급해' 이러는 거죠."

선기자 : "다행히 제가 다니는 직장은 대한민국 평균보다는 육아하는 것에 대해서 더 이해를 해주는 편인 것 같아요. 그래도 눈치는 보이죠. 아이가 중이염에 자주 걸리는데 3일에 한번씩 계속 병원에 가서 중이염이 아예 없어질 때까지 약을 먹어야 해요. 그런데 아침에 아이 병원 들렀다 가겠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왜 그렇게 워킹맘 선배들이 애 병원 때문에 늦게 왔는지 알 것 같더라고요. 그때는 잘 이해를 못했는데...

그리고 보통 팀 회의를 하면 퇴근 가까운 시간에 하고 회식 하는 코스를 밟아요. 몇 번은 애 봐줄 사람이 없어서 애를 데리고 회식에 갔는데 민폐 끼친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회식에는 잘 참석을 못해요. 후배들한테 미안한 것도 있어요. 저는 선배들이 술도 사주고 밥 사주고 그랬는데 그러지 못하니까요."

늘이아빠 : "일이랑 개인 사생활이랑 딱 분리가 됐으면 좋겠어요. 회사 일이 많으면 어쩔 수 없는데 일이 끝나면 뭘 하든지 신경 안 쓰고 가족에 돌아가서 즐길 수 있었으면... 저는 아무래도 제가 제일 윗사람이다 보니까 집에 가서도 계속 들여다보고 있어야 하는 거예요. 일이 없어서 먼저 집에 들어가겠다고 하면 후배들이 동공지진을 해요. '벌써요? 어딜 가시는 거예요? 같이 옆에 있어야죠.'" 

선기자 : "저도 팀장 비슷한 역할을 했는데 정시에 퇴근을 해서도 후배들 기사를 봐줘야 하는 경우가 있었어요. 애 보면서 같이 일을 하니까 쉽지 않더라고요. 그렇다고 TV 보여 주면 죄책감 들고."

빅베어 : "얼마 전에 애 재워놓고 일하는데 엄청 힘들더라고요. 회사에 관리자 직급인 워킹맘이 있는데 저녁에는 애 봐야 하니까 일찍 퇴근하고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일을 하더라고요. 이런 상황에서 무조건 애를 많이 낳으라고 하면 안 돼요."

"매일 술 마시는 남자들 보면 궁금해요, '애는 누가 보지?'"

 한 어린이집 알림장. 대화의 대상이 '엄마'로 설정돼있다.
ⓒ 홍현진
-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육아는 엄마의 일'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어요.
선기자 : "어린이집 알림장을 매일 제가 써요. 선생님도 제가 쓰는 걸 알고 있어요. 그런데 항상 '어머니, 오늘 ○○이는 잘 지냈어요.' 이렇게 쓰는 거예요. 단 한번도 아버지라고 쓰는 경우가 없어요. 소아과도 제가 자주 데리고 가요. 거의 주치의예요. 의사선생님이 꼭 물어봐요. '엄마 회사 갔니?' 당연히 엄마가 회사 갔으니까 아빠랑 왔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엄마든 아빠든 서로 숨통 트일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엄마가 집에서 쉴 수도 있는 건데.... 그런 질문들이 불편해요."

- 엄마가 아이 혼자 데리고 다니는 건 당연하게 생각하잖아요.
선기자 : "아빠는 주중에 일하고 주말에는 쉬어야 하고, 엄마는 주말에 애를 보는 게 바람직한 부모상이라고 보는 것 같아요. 저는 아이가 좋고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힘들기는 하지만 즐거워서 아이를 데리고 나가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엄마는 어딨냐고. 그 맥락에는 '엄마는 뭐하냐' 이런 생각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반대로 요즘 혼자 애 데리고 나온 엄마를 보면 '저 집 아빠는 뭐하지' 궁금해요. 매일 술 마시는 남자 선배들을 보면서도 '저 선배 애들은 누가 볼까, 부인들은 경력단절이 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요."

빅베어 : "저도 제가 어린이집 등원을 매일 시키는데 선생님은 아내랑만 커뮤니케이션을 해요. 무슨 일 생기면 아내한테 연락하고. 남자라서 부담스러운 건지도 모르겠어요. 한번은 혼자 아내 없이 아기띠를 하고 마트에 간 적이 있었어요. 아줌마들이 지나가면서 아빠가 애기 혼자 보니까 콧물을 흘려도 닦아주지도 않는다고 무시하더라고요.

수유실도 아빠는 못 들어오게 하는 경우가 많아요. 수유실이 수유만 하는 공간이 아니잖아요. 기저귀 갈 때는 아빠가 필요한데. 그런 건 정비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제일 유명한 인터넷 육아카페가 있는데 거기는 남자는 아예 가입이 안 돼요. 육아 정보 얻으려고 가입신청 했다가 거절당했어요. 아빠도 같이 육아하라면서 맘카페 가입은 안 돼요."

늘이아빠 : "저도 가입 거절당했어요."

- 그래도 엄마가 육아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아빠가 육아하면 '대단하다', '훌륭하다'고 찬양받지 않나요.
선기자 : "육아빠는 뭔가 쿨한 느낌이에요. 그런데 엄마가 애 데리고 나가면 '맘충'이 되죠."

빅베어 : "애 키워본 입장이 되니까 어떻게 그런 말(맘충)이 있을 수 있나 싶더라고요."

- 부부가 함께 육아를 하니까 좋은 점과 힘든 점은 뭔가요. 특히 빅베어와 선기자는 조부모 도움 없이 육아를 하고 있는데. 
빅베어 : "엄마도 있고 아빠도 있는데 똑같이 육아를 한다는 데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아이도 엄마 아빠 모두와 애착형성이 잘 되고요. 보통의 남편들은 부모님이 근처에 계시니까 육아에 대해서 크게 걱정을 안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희는 그게 전혀 안 되니까 둘이서 무조건 할 수밖에 없어요. 그렇다고 시터에게 아이를 맡기고 싶지는 않고요.

그래도 누군가 한 명은 희생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제가 덜 희생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아내에게 빚을 갖고 있어요. 저나 아내나 중간 연차가 되면서 각자 회사에서 역할이 있는데. 아내가 충분히 일을 할 수 없으니까 커리어가 단절되는 것도 있고요. 그래서 제가 할 수 있을 때는 최대한 많이 하려고 해요."

선기자 : "애와 정말 가까워지는 건 있는 것 같아요. 대한민국 보통 남자들이 하루에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평균 6분이라고 하더라고요(2015년 기준). 그런데 저는 하루에 3시간 이상 아이를 보니까 유착관계가 잘 형성된 것 같아요. 아이에 대해서도 잘 알게 되고.

저녁에 서로 도저히 일정 조정이 안 돼서 어쩔 수 없이 늦게 되는 경우가 있어요. 지금은 구립어린이집이라서 늦게까지 하는데 그 전에는 민간어린이집에 보냈는데 늦게 데리러 간 경우가 있었어요. 갔더니 선생님들이 어린이집 불 다 꺼놓고 가방 싸놓고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너무 죄송하고. 아이는 갑자기 뛰어나와서 안기고. 너무 서글프더라고요."

늘이아빠 : "장모님이 아이를 많이 좋아해주셔서 감사한 일인데 TV를 많이 보여준다거나 단 음식을 자꾸 준다거나... 그런 부분이 있어요. 그래도 웬만하면 말을 아껴요. 애 보는 것만으로도 힘든 일이니까. 확실히 더 오래 같이 있으면 아이와 친해지는 건 있는 것 같아요. 보통은 아이가 저보다 아내를 더 따르는데 제가 휴가를 내서 같이 있으면 아빠아빠 하면서 따라와요. 제가 바쁘면 엄마랑만 있으니까 저랑은 눈도 안 마주치고요. 금요일 밤에 집에 가면 아이가 엄마만 찾다가 일요일 밤 되면 아빠 아빠 하면서 안겨요."

"노동시간 단축, 남의 이야기 같아요"

 서울역 수유방. 수유실은 수유를 하는 공간일 뿐만 아니라 기저귀를 갈거나 분유를 타고, 이유식을 데우기도 하는 등 육아와 관련된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하지만 아빠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어, 수유공간과 다른 공간을 분리하는 등 수유실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홍현진
- 문재인 정부는 저출산 대책으로 남편의 유급 출산휴가를 확대하고 육아휴직급여도 인상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육아휴직을 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할 의향이 있나요. 
빅베어 : "남자가 육아휴직을 거의 쓰는 사람이 없어요. 정부에서 강제를 하지 않는 이상 눈치가 보일 것 같아요. 아내는 뭐 해? 이러겠죠. 나라에서 남편 육아휴직을 의무화하거나 고용주에게 비용지원을 해준다면 눈치가 좀 덜 보이지 않을까요."

선기자 : "분위기 문제도 있지만 돈 문제도 있는 것 같아요. 제가 휴직을 위해서 쉬면 수입이 확 줄어드니까 생활에 큰 타격이 생기는 거예요."

늘이아빠 : "저는 고용주 입장인데, 정부 지원이 있어도 누군가는 일을 해야 하니까요. 많은 사람이 빠지게 되면 인력수급이 돼야 하는데 사람 구하기가 쉽지 않아요. 남은 사람들이 떠안게 되는 거죠."

- 늘이아빠는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출산휴가를 1달 동안 썼는데.
늘이아빠 : "그때 잘 쓴 것 같아요. 제가 없으면 아내 혼자서 신생아를 봐야 하는데 처음이라서 많이 무서워하고 힘들어했던 것 같아요. 그때 같이 있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아빠의 역할은 이후에도 계속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런데 공백이 생기니까 계속 대체할 사람을 찾아야 하고 엄마는 스트레스 받게 되고. 아이도 아빠의 존재가 희미하게 되니까 안타까운 거죠."

- 노동시간 단축도 저출산 대책으로 나옵니다.
늘이아빠 : "그런 건 출퇴근이 안정적인 사람들에게 해당이 되는 것 같아요. 직군 따라 차이가 있어요. 드라마, 영화, 애니메이션 등 저희 같은 예술업계에서 그런 게 가능할지... 노동시간 줄이자는 건 남의 이야기 같아요." 

빅베어 : "저 같은 경우에도 프로젝트 단위로 움직이고 마감 일정이 정해져 있다 보니까 효율성을 내기 위해서 지금으로서는 야근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 같아요." 

- 셋 다 지금 아이가 한 명이에요. 둘째 계획이 있나요? 
빅베어 : "저는 40%의 육아 지분을 갖고 있기 때문에 60% 지분을 갖고 계신 분이 동의를 해야죠. 낳으면 키울 수는 있을 것 같은데 너무 힘들 것 같아요. 옛날 아빠들은 그랬을 거예요. 난 안 힘드니까, 돈만 벌어오면 되니까. 많이 낳으면 되는데 지금은 내가 육아가 얼마나 힘든지 아니까 함부로 낳자고 말을 못하는 거죠. 저희 엄마가 둘째 이야기 꺼내면 제가 말해요. 이렇게 힘든데 어떻게 낳냐고."

늘이아빠 : "줄곧 하나 더 낳자는 입장이었어요. 만날 딸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건 제 마음일 뿐이고 현실 따로 마음 따로예요. 저는 30%밖에 못 해주니까 아내는 더 힘들어지는 거고 주변에 부탁을 해야 하고. 육아라는 고된 노동에 대해서 누군가 희생을 해야 하니까 차마 못 낳는 거예요."

선기자 : "1월 1일에 아내와 새해 계획을 세우면서 이야기 했어요. '둘째는 힘들다.' 경제적인 이유도 있고 주변에 보면 부부 둘이서만 아이 둘을 키우는 경우는 아예 없더라고요. 조부모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부모님들도 그분들의 인생이 있잖아요. 무엇보다 저는 아내의 경력이 또 다시 단절되는 게 마음이 쓰여요. (육아의) 60%를 담당하고 있는 제가 너무 힘들어질 것 같은 이유도 있고요."

- 마지막으로, 어떤 아빠가 되고 싶나요.
선기자 : "저는 애가 성인이 됐을 때도 잘 지내고 싶다는 게 꿈이에요."
빅베어 : "그냥 친구처럼 지내고 싶어요. 격의 없이. 저랑 아내 관계처럼." 
늘이아빠 : "아빠랑 아들은 크면 클수록 유대가 사라지더라고요. 저도 그랬고요. 많은 거 안 바라고 그냥 아이가 편하게 '아빠'라고 부를 수 있는 수준이었으면 좋겠어요."

ⓒ 고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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