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가는 첫 길목 '부끄러운 민낯'

최재원,김강래 2018. 1. 16.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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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 지나가는 용산역 일대, 폐가 등 낙후지 그대로 노출
외국에 국격 높일 올림픽이 되레 국가이미지 훼손 우려
"임시 가림막이라도 설치를"

◆ 평창올림픽 D-24 ◆

평창으로 향하는 KTX평창 열차가 폐가와 쓰레기 더미로 가득한 용산역 인근 한강로3가 40 일대를 지나가고 있다. 뒤편으로는 최첨단 디자인을 갖춘 서울 드래곤시티의 모습이 보여 뚜렷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김호영 기자]
16일 서울 용산역 인근 한강로3가 일대. 성인 두 명이 겨우 지나갈 정도인 골목 곳곳에는 폐가가 줄을 잇고 있었다. 우편함에는 주인을 찾지 못한 우편이 쌓여 있다. 버려진 단독주택 지붕에서는 기와가 흘러내리고, 일부 집은 비닐을 기와 대신 쓰고 있었다. 골목을 따라 철길 건널목에 이르니 기차가 지나가는 바로 옆에는 방치된 점포들이 눈에 띄었다. 전봇대 주변은 작은 쓰레기장이었다.

이곳에서 철물점을 운영하는 60대 A씨는 "10년 전쯤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이 좌초된 이후 방치되더니 이제는 워낙 낡아서 실제 사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23일 앞으로 다가온 평창동계올림픽. 외국 선수단과 관람객이 몰려올 예정이지만 이들에게 서울은 부끄러운 민낯을 드러내야 한다. 외국인들이 평창을 찾아가려면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후 공항철도로 서울역에 와서 다시 강릉행 고속철도(KTX)에 올라야 한다. 강릉행 KTX는 용산역을 거쳐 경의중앙선 노선을 따라 청량리로 향한다.

용산역을 지나자마자 열차 창문 밖으로 무너져가는 노후 주택과 녹슨 철제지붕, 폐타이어와 쪼개진 기왓장이 그대로 보인다. 멀리 보이는 한강트럼프월드 등 고층 빌딩들과 겹쳐지면 서울은 엄청난 빈부 격차를 지닌 도시로 보일 수밖에 없다. 국격을 높여야 할 올림픽 개최가 철저하지 못한 준비로 자칫 국가 이미지만 떨어뜨릴 수 있는 상황이 된 셈이다.

이런 안타까운 모습이 만들어진 것은 도심 역세권 개발 지체의 산물이다. 2007년 시작된 용산 개발이 막혀버린 탓이다.

여기에는 글로벌 금융위기 영향도 있지만 코레일·롯데관광개발·삼성물산 등 사업자 간 분쟁, 지역 거주민 생존권 문제 등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사실상 '강 건너 불 구경'만 한 정부나 서울시의 리더십 부재가 종합적으로 맞물려 있다는 지적이다.

용산 개발의 핵심 프로젝트였던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은 2008년 금융위기 발생 이후 자금 조달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서 2013년 최종 무산됐다. 아직까지도 사업 시행사였던 '드림허브PFV(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와 코레일이 토지 반환 문제 등을 놓고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서울시가 뒤늦게 지난해부터 무게중심을 잡고 용산 일대 종합개발계획인 '용산마스터플랜' 마련에 착수했지만 결과는 올해 2분기께나 나올 예정이다.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평창동계올림픽에 대비해 이 지역을 당장 정비할 방법은 없다. 단기 대책으로 임시 펜스라도 설치해 서울 도심의 민낯이 드러나는 걸 최소화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용산구청 측은 "펜스를 설치하려면 해당 정비구역 사업자가 담당해야 하는데 아직 선정이 안 된 지역도 있어 여의치 않다"고 말했다.

김유경 한국외대 국가브랜드연구센터장은 "평창동계올림픽은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30년 만에 달라진 서울과 대한민국의 위상을 지구촌에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며 "관계기관들이 이동 경로 등을 고려해 좀 더 능동적으로 거주민들 이익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환경 개선 작업을 했어야 하는데 허송세월한 것이 안타깝다"고 꼬집었다.

부끄러운 민낯을 드러낸 용산의 현주소에 대해 전문가들은 근원적으로는 도심 개발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방식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한다.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은 30여 개 민간기업이 출자한 이른바 프로젝트파이낸싱(PF) 방식으로 진행됐다.

삼성물산을 주간사로 한 시행사가 2007년 철도창 용지를 코레일로부터 당시 토지평가액인 5조원보다 2조~3조원이나 높게 사들이면서 비극이 시작됐다. 애당초 사업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여기에 불과 1년 뒤 예상하지 못한 대형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사업자들은 자금을 제대로 조달하지 못해 갈팡질팡했다. 30개 사업자는 사업을 어떻게 이끌고 갈 것인가보다는 누가 먼저 빠져나와 손해를 줄이느냐에만 골몰했고, 결국 사업은 2013년 최종 무산에 이르렀다.

미국 뉴욕의 경우 맨해튼의 옛 철도 차량기지 및 창고 등으로 사용되던 허드슨 강변의 낙후한 용지를 뉴욕주와 뉴욕시, 메트로폴리탄교통공사(MTA) 등이 개발 주체가 돼 뉴욕시 산하에 허드슨야드기반시설개발공사(HYIC)를 만들었다. 공사가 중심이 돼 개발을 이끌어 가면서 민간자금 투자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이창민 한양대 부동산융합대학원 교수는 "뉴욕의 허드슨야드나 배터리파크 개발은 주정부와 시정부의 체계적 지원과 조정자 역할, 공공과 민간의 파트너십을 통해 도시의 기능을 회복하고 활기 있는 도시공간을 창출한 도시재생의 성공 사례"라면서 "용산 개발도 이러한 모델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재원 기자 / 김강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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