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火요일에 읽는 전쟁사]'라데츠키 행진곡'은 왜 이탈리아에선 공연하지 못할까?

이현우 2018. 1. 16.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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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지난해 신년음악회 모습. 라데츠키 행진곡은 단골 앵콜곡으로 유명하며, 연주도중 관객들이 박자에 맞춰 박수를 치는 관례도 유명하다.(사진=EPA연합뉴스)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지난 1일, 이탈리아 전역에 생중계됐던 베네치아 라 페니체 극장에서 열린 신년음악회는 정명훈 지휘자가 지휘를 맡아 세계 음악계의 관심을 받았다. 한가지 특이한 점은 전 세계 신년음악회의 단골곡이라고 할 수 있는 '라데츠키 행진곡'이 끝까지 연주되지 못한 점이다. 이날 앙코르곡은 베르디의 나부코에 등장하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 연주됐다.

신년음악회마다 반드시 한번쯤은 라데츠키 행진곡을 들어온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의아할 수 있지만, 여기에는 나름의 사연이 있다. 라데츠키 행진곡은 이탈리아, 특히나 베네치아에서는 한마디로 '원수의 곡'이다. 요한 슈트라우스 1세가 작곡한 라데츠키 행진곡에서 라데츠키는 과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장군으로 19세기 중엽,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와 베네치아 일대에서 벌어진 반란을 매우 잔혹하게 진압한 장군으로 유명하다. 이 전쟁에서 30만명 이상이 학살당했고, 그러다보니 이탈리아 사람들은 이 곡에 대한 역사적 반감이 강하게 남아있다.

당시 오스트리아 제국은 이탈리아의 통일을 가로막고 있던 거대한 장애물 중 하나였다. 중세시대부터 이탈리아 내 정치와 각종 분쟁에 깊숙이 개입했던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등 주변 열강들은 필요에 따라 이탈리아를 자주 침공했다. 이탈리아 북서부의 사르데냐 왕국이 주축이 돼 통일 이탈리아 왕국이 1861년 세워졌지만, 오늘날 이탈리아의 국경이 완성된 것은 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패배해 오스트리아가 오늘날처럼 유럽의 소국으로 축소된 이후였다.

라데츠키 행진곡의 주인공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장군, 라데츠키의 초상화.(사진=위키피디아)

오스트리아에서 라데츠키 장군은 나폴레옹 전쟁을 비롯해 굵직한 전투를 승리로 이끈 명장으로 남아 그의 이름을 딴 행진곡까지 추서됐지만, 이탈리아 입장에서는 철천지 원수였던 것. 특히나 라데츠키 행진곡은 1848년, 라데츠키 장군이 롬바르디아 독립운동을 완전히 정벌한 후, 빈에 개선할 때 바쳐진 곡이라 더욱 이탈리아에선 공연할 수 없는 곡이 됐다.

이탈리아에서 또한 터부시 하는 곡 중 하나로 왈츠가 있다. 왈츠 역시 오스트리아 제국의 산물로 라데츠키 행진곡을 만든 요한 슈트라우스 1세가 특히 '왈츠'의 아버지로도 유명하다. 이 왈츠 역시 '나폴레옹 전쟁'과 엮인 전쟁의 산물이었다.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후, 전후 문제 처리를 위해 유럽 열강들은 9개월에 걸친 '빈 회의'에 돌입했는데 각종 회의와 치열한 로비, 무도회 속에서 각국의 이해관계가 오고갔다.

이 빈 회의에서 밤낮 치러진 무도회용으로 만들어진 것이 왈츠였다. 남녀가 상반신을 완전히 밀착하며 추는 윤무(輪舞)인 왈츠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빈 회의 이후 수많은 사생아를 양산하기도 했다. 베토벤도 왈츠를 두고 "쓰레기통에나 들어갈 저속한 음악"이라고 욕했다는 일화가 남았을 정도다.

19세기 오스트리아 제국의 대표적인 민족주의 음악가로 왈츠의 아버지이자 라데츠키 행진곡의 작곡가로 유명한 요한 슈트라우스 1세 모습(사진=위키피디아)

이처럼 전쟁의 산물들이 현대에 이르러 신년음악회 단골메뉴가 된 것은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세계적 명성을 얻으면서 시작됐다. 빈 필하모닉의 신년음악회에서 주로 연주하는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와 '라데츠키 행진곡', 모차르트의 '사냥', 하이든의 '황제찬가' 등 과거 19세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연주하던 행진곡과 음악들이 전 세계에 알려졌다. 피맺힌 유럽역사와 별 연결고리가 없는 아시아나 아프라카, 미주 지역에서는 흥겨운 행진곡이나 왈츠를 좋아하는 애호가들이 늘어나면서 제국의 노래는 새해맞이 음악회의 단골이 된 셈이다.

전쟁과 엮여 국가적으로 터부시된 또다른 음악으로는 유명한 바그너(Wagner)의 오페라가 있다. 주로 독일의 신화를 바탕으로 웅장한 곡을 연주했던 바그너는 생존할 당시에도 유태인 혐오자였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후 독일 나치정권의 비호를 받아 나치독일의 국민곡 반열에 오르면서 오늘날에도 이스라엘에선 상당히 터부시되는 음악이 됐다. 나치 정권의 지도자인 아돌프 히틀러는 바그너 음악에 매우 심취했던 것으로 알려져있으며, 가난했던 무명시절에도 바그너 음악을 시연하던 바이로이트 축제에 가기 위해 가진 돈을 다 털어 표를 샀던 일화도 유명하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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