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이 간다] "대통령은 날 풀어주실 것" 이호철 불출마에 부산 요동

강민석 2018. 1. 16.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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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이 간다] 이호철, “문 대통령은 날 풀어주실 것” … 부산 정치판 요동


강민석의 정치속으로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14일 쿠바에서 귀국해 기자와 만났다. 이 전 수석은 인터뷰에서 부산시장 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가 불출마를 결심한 이유중 하나는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사실상 은둔 중이었다. 부산시장 출마설이 지난해 불거진 뒤 언론, 정계인사들과의 접촉을 끊었다. 이 전 수석의 입장을 듣기 위해 수소문에 나섰으나 “지금 한국에 없다”는 말만 돌아왔다. 체류 중이라는 곳도 ‘중남미’ ‘칠레’ 등 제각각이었고, 귀국 날짜도 “곧”이라고만 했다.

그러던 중 이 전 수석이 노무현 전 대통령 기념관 건립 책임을 맡고 있고, 일요일인 14일에 관련 회의가 있다는 얘기를 노무현재단 사람에게서 들었다. 무작정 서울 마포구 신수동 노무현재단으로 찾아갔다. 세시간을 기다리자 푸른색 모자를 눌러 쓰고, 수염이 덥수룩한 여행객 차림의 이 전 수석이 나타났다. 20일간 쿠바에 있다가 14일 새벽 한국에 도착해 재단으로 오는 길이라고 했다.

기자가 대화를 청하자 “담배나 한 대 얻어 피우자”고 했다. 한 달간 끊었다는 담배를 피우면서 오히려 이 전 수석이 먼저 물었다. “제가 출마할 거 같으세요, 안 할 거 같으세요?” 답을 내놓지 못하자 이 전 수석이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안 하려구요.”

생각을 굳힌 거냐고 묻자 바로 “예”라고 답했다.

Q : 왜 불출마를 선택했나.

A : “세 가지 이유가 있다. 노무현 대통령 돌아가신 뒤로는 정치에 대해 트라우마가 있다. 우리의 아픔이죠. 둘째는 울리히 벡이 쓴 『적이 사라진 민주주의』란 책에 답이 있다.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난 뒤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에 관한 책이다. 나는 ‘깨어있는 시민’으로 남으려 한다. 셋째는 노 대통령 기념관 때문이다. 기념관 건립을 4년째 맡고 있다. 제게는 소중한 일이다. 역사를 공간에 새긴다는 책임감이 있다. 이 일을 나는 해야 한다.”

Q : 출마할 수 있다는 말은 왜 나왔나.

A : “작년 추석 무렵 나서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내게 출마를 권하러 왔다가 불출마 선언만 하지 말아 달라는 사람도 있었다. 사실 문 대통령께도 그런 방식을 써서 정치를 하게 했다. ‘불출마 선언만 하지 말아달라’, 그다음엔 ‘책 쓰자’, ‘북 콘서트 딱 한 군데에서만 하자’, 결국 전국을 다 돌았다.(웃음) 부산을 바꿔 보자는 그 간절한 마음들 때문에 잠시 불출마 발표를 미뤘지만 한 번도 출마를 생각해본 적이 없다. 문재인 정부가 성공한 정부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여러 영역에서 희생과 헌신이 필요하다. 대의로 보고, 넓고 깊게 봐야 한다. 그럴 때 제 카드는 유용한 방식이 아니다. 저를 지지하는 분들은 젊거나 친노, 친문 아니겠나. 나중에 (친노·친문인) 전해철·박남춘·김경수 의원이 다 경선에 나올텐데 선거 과정에서 오히려 문재인 정부에 부담이 될 수도 있다.”

Q : 문 대통령이 ‘나를 정치하게 만들었으니 이번엔 당신 차례야’라고 한다면.

A : “문 대통령은 그리 안 하실 거다. 본인도 스스로 정치를 피하시다가 하게 됐는데, 저를 풀어주려고 배려하시지 않을까. 노무현 대통령도 한때 많은 사람에게 정치를 권유했지만 ‘아, 이 친구는 정치를 안 할 거야’라고 하시고, 제게 정치얘기는 안 했다. 제가 워낙 자유로운 것을 좋아하고, 문 대통령도 잘 알고 계신다.”
이 전 수석이 ‘자유’를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는 79년 10월 부마사태 주동자로 구속돼 중앙정보부에서 고문을 받았고, 영화 ‘변호인’의 모티브인 82년 부림사건 때는 남영동 치안본부에서 물고문·전기고문용 도구인 ‘칠성판’을 탔다. 지금도 미장원에서 뒤로 고개를 젖혀 수건을 얼굴에 덮고, 머리를 감겨주면 숨을 잘 못 쉰다고 한다. 그는 “박종철 열사, 김근태 선배보다 내가 몇년 먼저 칠성판을 탔는데, 그때 내가 죽었더라면 두 분은 그런 고문을 안 받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감옥의 독방에서 쇠창살 너머로 지는 해를 보면서 나가면 자유롭게 여행을 하고 살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이 전 수석은 지금 모 여행사의 지분을 갖고 있고, 부인도 고교교사를 그만두고 여행기획을 하고 있다.

Q : 문 대통령을 당선 후 만난 적이 있나.

A : “작년 대통령 여름 휴가 때 경남 진해에서 딱 한 번 뵀다. ‘(요즘은 또) 어디 갔다 왔노’라고 하시길래 (동유럽의) 코카서스(3국) 다녀온 얘길 해드렸다. 북핵 문제 등으로 고생하실 때라 살이 빠져 있으셔서 마음이 안됐더라.”

Q : 대통령 최측근이라고 무조건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게 바람직한 건지 잘 모르겠다.

A :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기로 했다. 새로운 시도다. 2012년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 때 ‘3철(이호철·전해철·양정철) 배제’가 조건이었다. 우리 진영 내부에도 ‘3철 프레임’이 셌다. 2016년 4월 총선 때 민주당 지도부가 출마할 생각도 없는 나한테 불출마 선언을 해 달라고 하더라. ‘나는 할 수 있는데, 다른 두 사람한테 이름 끝 글자가 같다고 불출마하라고 하면 되느냐’고 했다. 대선 때도 공직 포기선언을 해 달라고 (문재인 캠프의) 중진 의원이 요청했다. 그때도 ‘저는 약속할 수 있지만, 두 사람은 아니다’고 했다.”

Q : 결국 양정철 비서관도 떠났다.

A : “양비(양정철 전 청와대 비서관)하고는 대선 전인 작년 1~2월에 이미 ‘우리는 들어가지 않는다’고 약속했다. 나는 문 대통령 취임식(5월10일)을 인천공항에서 봤다. 비행기표는 3~4개월 전에 사야 싸다.(떠나려고 미리 구입했다는 뜻) 하지만 양비는 나중에는 들어가 릴리프 투수로 뛰어야 한다. 나는 구시대의 막차를 타기로 했다. 새시대의 첫차는 새로운 사람이 타고….”
그는 노무현-문재인 두 전·현직 대통령을 ‘노변’ ‘문변’이라 부른다. 두 전·현직 대통령과 가장 오랜 인연을 갖고 있다. 그런데도 지난해 대선 때는 ‘~위원장’ ‘~본부장’ 같은 고위직함을 달지 않았다. 부산지역 특보단 부단장도 고사하고 ‘특보’ 명함 하나 갖고 주로 물밑에서 움직였다. 오거돈 전 해수부장관, 정경진 전 부산 부시장을 영입해 ‘부산빅텐트’를 성사시켰고, 새누리당 출신 전직 시의회 인사들을 접촉하는 등 취약지를 공략했다.

Q : 여권의 부산시장 후보 중 김영춘 해수부 장관도 출마에 부정적이란 보도가 있었다.

A : “현직 장관한테 지금 출마할 거냐고 물으면, 한다고 하겠는가. 이번이 부산에서 승리할 기회라고 생각은 하지만 만만치 않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이 떨어지는 선거는 다 봤다. 항상 여론조사에서 이기다가 졌다. 지형이 많이 바뀌었다고는 해도 출마자들이 한 팀으로 가야 겨우 이길 수 있을 거다. 나도 출마는 안 하지만 팀이 만들어지면 돕겠다.”
이 전 수석이 불출마를 결심하면서 부산선거의 가장 큰 변수 하나가 사라졌다.

이 전 수석과 만나기 이틀 전 김 장관과 통화했다.

Q : 지역언론에 나온 보도를 불출마 선언이라고 봐도 되나.

A : “허, 허. 이번 선거에 대한 제 입장은, 안 나갔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지금은’ 선거를 생각하지 않고 장관직에 전념하겠다”

Q : 아직 결론을 낸 건 아니란 뜻인가.

A : “그렇게 얘기할 수 있다. 저보고 선택하라면 출마 안한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세상일이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얘기를 할 수밖에 없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15일 부산을 방문해 “우리는 이길만한 후보를 괴롭히는 의미 없는 경선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실상 야권후보군 중에는 지지율이 가장 높은 서 시장을 전략공천하겠다는 뜻이다.

부산은 여권으로선 영남에 ‘교두보’를 확보하느냐, 마느냐의 의미를 갖고 있다. 상대진영 내에 만든 세력확장의 발판말이다. 한국당에겐 뚫려선 안 되는 ‘마지노선’이다. 낙동강 전선의 두 얼굴이다.

강민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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