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유시민 대 정재승
[경향신문] 문재인 정부가 70%를 웃도는 신뢰도를 보이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투명하고 예측 가능한’ 정책 때문일 것이다. 절차를 중시하고 논의를 거쳐 투명하게 결과를 알리는 모습은 밀실주의와 일방적 통보로 일관했던 전임정권과는 다르다. 최근 도출된 원전해법이나 한·일 위안부 결론에 그나마 시민 다수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도 이런 노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가상화폐 대응 과정은 문재인 정부답지 못했다. 지난 주말 대통령 주재 회의에서는 관련 논의가 있었으나 정책기조는 나오지 않았다. 정부의 이런 신중한 태도가 지지층인 2030세대를 중심으로 거래소 폐쇄 반대 청원이 쏟아진 데 따른 것인지는 불명확하다. 다만 미래산업 육성과 규제 외에도 2030세대들의 아픔까지 보듬어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해법은 더 복잡해졌다.
두꺼운 팬덤을 가진 지식인으로 TV 프로그램에서 호흡을 맞춰온 유시민 작가와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가 이 논쟁에 가세했다. 유 작가는 “암호화폐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이용해 누군가가 장난쳐 돈을 뺏어먹는 과정. 산업 진흥 관점에서 거래소 폐쇄에 반대하는 주장도 사기”라고 말했다. 그는 비트코인 열풍을 노무현 정부 때의 ‘바다 이야기’에 비유해왔다. 이에 정 교수는 “유시민 선생님이 잘 모르시는 것 같다”며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을 사회악으로 간주하는 해결책은 적절한 접근이 아니다. 기술 통제는 옳지도, 유익하지도, 가능하지도 않다”고 맞받았다. 두 사람의 의견은 가상화폐에 대한 두 관점을 대표한다.
비트코인은 월가의 금융시스템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했다고 여긴 과학자가 금융 거래내역이 담긴 데이터를 체인형태로 연결해 누구나 갖고 있도록 하자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기존 시스템이 건재한 상황에서 이 독창적인 발상이 생명력을 확보할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하루에도 값이 폭등락하는 상황에서는 화폐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과열이 식으면 가상화폐의 값어치가 드러날 것이다. 결국 논쟁의 공통분모는 과열의 폐해는 막고, 블록체인 기술은 키우는 것이다. 과열을 급진적으로 식힐 것인지, 아니면 섬세하게 처방할 것인지의 정도 차이다. 미적댈 이유가 없다.
<박용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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