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개혁 기치들고 '평창' 참여 압박..속끓는 재계

박태희 2018. 1. 14. 18:0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새 정부, 신년 들어서도 '재벌 개혁' 공세
재계 관계자 "올해가 더 힘들 것" 한숨
"투자·고용 늘릴 수 없는 정책 내놓고
늘리라고 압박하면 어떻게 동참하나"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재계 단체는 지난 10일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사를 기대감을 가지고 지켜봤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이 지난 3일 경제계 신년인사회에서 “기업이 새롭게 많은 일을 벌일 수 있게 제도와 정책을 설계해 주시길 바란다”고 말하는 등 재계 단체의 잇따른 '희망사항'에 대통령이 화답하지 않겠냔 기대에서였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신년사는 재계의 바람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문 대통령은 '재벌개혁'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일감 몰아주기 해소, 지배구조 개선(순환출자), 주주 의결권 확대 등 구체적인 개혁 방안까지 언급했다. 기업 압박에 대한 강도가 조금도 줄어들지 않은 것이다.
장하성 정책실장이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에서 대통령 대신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 뉴시스]
"재벌 혼내주고 (회의에) 왔다"는 말로 논란을 일으킨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도 달라지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청와대가 11일 유튜브에 공개한 '친절한 청와대, 갑질 그만 하도급 대책-김상조 위원장 편'에 출연해 '재벌저격수'라는 본인의 별명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경제민주화 얘기가 나온 지 30년 됐지만 실행이 안 된 건 모든 정부가 취임 6개월 이내에 몰아쳐야 개혁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며 "(본인은) 임기 내내 경제민주화를 지속 가능하고 예측가능한 방향으로 밀고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길에서 만난 한 주부가 '치킨 값을 내려줘서 고맙다'고 했다"는 일화를 소개하면서 "경제민주화가 국민 개인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도록 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지난해 5월 등장한 새 정부는 이후 기업에 부담을 주는 법안을 잇따라 들고 나왔다. 미국 등의 움직임과는 달리 법인세 최고세율을 기존 22%에서 25%로 올렸다. 최저임금도 16.4%나 올렸다. 오는 7월 1일부터는 근로시간 단축도 본격 적용할 계획이다. 이런 분위기가 새해 들어서면 경제 살리기가 강조되면서 다소 달라지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많았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나 김 위원장의 메시지의 강도가 새해 들어서도 조금도 줄어들지 않자 기업들은 난감해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5대 그룹 고위 임원은 14일 새해 전망을 묻자 "(기업하기에) 부담은 커지고 숙제는 많아진다"며 "지난해보다 더 험난한 1년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강공 일변도의 정책에 우려를 보내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투자와 채용을 줄일 수밖에 없는 정책을 내놓으면서 늘리라고 하면 기업들이 정부 방침에 동참하기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경쟁하고 기업을 영속하려면 임금 같은 비용 요인을 반영하지 않을 수 없다"며 "비용이든 고용이든 어느 한쪽의 숨통은 터줘야 하는데 둘 다 막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13일 오후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열린 2018평창동계올림픽 성화봉송행사에서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으로부터 성화를 전달받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기업 경영에 부담을 주는 법안과 메시지가 그치지 않는 와중에도 평창 동계 올림픽은 기업에 또 하나의 압박이 되고 있다. 지난 12일 전국경제인연합회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동계패럴림픽 대회 성공을 위한 후원기업 신년 다짐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기업들이 이번 동계올림픽을 끝까지 후원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낙연 국무총리, 이희범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 등이 참석한 자리였다. 이날 행사에는 신동빈 롯데 회장, 이인용 삼성사회봉사단장 등 정·재계 인사 70여 명이 참석했다.

한 경제단체의 관계자는 "정유라 승마나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 관련해 일부 기업은 아직도 재판을 받고 있다"며 "동계올림픽이 성공해야 한다는 데에는 재계도 이견이 있을 수 없겠으나 적어도 현재 시점에서 자발적으로 지원에 나설 분위기는 아니다"고 털어놨다.

재계의 속앓이가 깊어지는 가운데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노동계·재계와 잇단 회동에 나선다. 15일 대한상의를 시작으로 닷새간 한국노총·경총·민노총·중소기업중앙회를 차례로 찾는다. 민주당은 '듣기 위해 간다'고 밝히고 있다. 우원식 원내대표는 "노동시간 단축,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노동생산성 제고, 혁신성장 동력 방안 마련, 규제개혁 입법 등 산적한 민생현안을 위해 대타협의 열차를 출발시킬 것"이라며 "여당의 경청 행보가 문재인 정부의 정책 추진 동력이 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번 만남은 모두 발언만 공개한 뒤 비공개로 진행된다. 재계는 긴장한 채 여당 방문을 기다리고 있다.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