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그 후]서울 시내를 배회하는 '유령 택시'의 정체

김봉수 2018. 1. 14.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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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기피증' 원인 불법 도급 택시, 여전히 횡행..최근 '택시 리스제'로 사실상 양성화 추진 논란
위 이미지는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음/사진=연합뉴스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서울시가 2007년 '불법 도급 택시'와의 전쟁을 선포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현장에선 불법 도급 택시가 횡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6년 1월 서울시 다산콜센터에 택시기사의 부당 요금(먼 길 돌아가기)를 신고한 A씨가 당한 일이 대표적 사례다. A씨는 당시 새벽 시간대에 금남시장 쪽에서 동대 입구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약수역 쪽으로 가면 요금 4000원 안팎이면 될 거리다. 그런데 택시기사가 이리저리 말을 걸면서 주위를 분산시키더니 한남대로 쪽으로 우회하는 바람에 요금이 7000원이 넘게 나왔다.

문제는 담당 공무원의 미적지근한 업무처리였다. 며칠 후 담당 부서에서 전화가 오긴 했는데 "진짜 돌아갔는지 안돌아 갔는지 확인이 불가능하다"며 은근히 신고를 취하하라고 요구하는 것었다. 마치 택시회사와 기사를 대변해 신고를 취소하도록 승객을 회유하는 듯 했다.

더 황당한 것은 A씨가 신고한 택시기사가 실체가 없는 '유령'이었다는 점이다. 신고 한 지 한 달이 넘게 걸려 관할 강서구청으로부터 전화가 와 받아 보니 "해당 택시기사가 회사에 근무하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서울시에 대해 "해당 택시 기사를 직접 만나서 따져보고 싶다"고 민원을 넣었지만, "해당 운수종사자가 2015년 8월경에 퇴사한 것으로 확인됐다"는 답이 돌아왔다. A씨가 탄 택시를 '유령'이 운전하지 않았다면, 누군가 명의를 빌린 도급 택시일 게 뻔한 상황이다.

불법 도급 택시는 각종 강력 범죄ㆍ사고의 온상으로 지목되어 왔다. 특히 2007년 20대 여성 2명이 홍대 앞에서 택시를 탔다가 납치ㆍ살해당하는 끔찍한 일이 벌어져 사회적 충격이 컸다. 당시 회사원 25살 임모씨와 24살 김모씨는 도급 택시에 탔다가 돈을 노린 택시기사들에 의해 살해돼 한강에 버려졌다. 여성들 사이에서 '택시승차 기피증'이 생길 정도였다. 이후 서울시는 불법 도급 택시와의 전쟁을 선포해 적극 단속하는 한편 신고포상금제ㆍ운송기록저장장치 설치ㆍ택시안심귀가 서비스 등의 대책을 마련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여전히 A씨의 사례처럼 불법 도급 택시는 거리를 질주하고 있다. 지입제, 제3자 명의 위탁, 임대 경영 등의 수법으로 진화하면서 택시회사들의 불법 행태가 끊이지 않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상황도 불구하고 서울시의 행정 단속이 무력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시가 단속을 통해 택시회사들을 처벌하더라도 무력화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실제 시는 2012년 불법 도급 택시를 운행한 강서구 S회사에 대해 영업 허가 취소 조치를 내렸지만 해당 회사는 5년이 넘게 지난 현재까지 아직도 버젓이 영업 중이다. S회사가 변호사를 동원해 이의제기와 소송 등 사법절차를 밟아 시간을 끌면서 버티기 영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는 할 수 없이 S사의 영업 택시 대수를 110대에서 70대 감차시켜 법정 기준 이하인 40대로 줄였지만, 영업 허가 취소 여부는 대법원의 최종 심판 결과까지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이밖에도 시는 승차거부ㆍ부당요금 등 비교적 가벼운 불법 행위는 물론 불법 도급 등 무거운 혐의를 단속하는 과정에서도 현장 조사, 증거 수집, 자료 확보, 데이터 수집 등 조사 절차가 미흡해 택시회사와의 소송에서 대부분 패소하는 등 처벌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 관계자는 "도급 택시가 아직도 운행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 것은 알지만 2012년 이후 단속 실적은 없다"고 말했다.

한편 최근 택시회사들이 한국노총 계열 전국택시노동조합연합회 측과 협의해 현행 법상 불법인 도급 택시를 '택시 리스제' 또는 '사내 개인택시제'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양성화하겠다고 나서 논란이 되고 있다. 이들은 장기근속 택시기사들을 엄선해 수수료만 받고 근무를 자유롭게 하는 방식을 적용하면 범죄ㆍ사고에 악용당할 우려는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민주노총 계열인 전국민주택시노조연맹 등에선 "택시 정상화를 후퇴시키고 서비스의 질이 악화될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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