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면·복권된 용산참사 생존자들 "MB, 경찰 수뇌부, 개발업자가 책임져야"

백철 기자 입력 2018.01.13. 15:29 수정 2018.01.13. 15:33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경향신문] 1월 20일이면 용산참사가 9주기를 맞는다. 내년이면 벌써 10주기다. 9주기를 앞둔 지난해 12월 30일, 문재인 대통령은 용산참사와 관련해 유죄 판결을 받은 25명을 특별사면했다.

1월 9일 오후 서울지하철 내방역 인근에서 용산참사 철거민 천주석씨를 만났다. 그의 손에는 법무부가 발급한 갈색 봉투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그는 봉투 안에 정부가 발행한 사면복권장이 들어 있다고 말했다.

천씨는 “이미 징역을 다 살았기 때문에 복권된다고 해도 삶이 크게 달라질 건 없다. 검찰청만 봐도 짜증이 나기 때문에 다른 철거민들은 일부러 사면복권장을 받으러 가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서울중앙지검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고 주민등록증을 제출했는데 제가 무슨 공안사범으로 등록이 되어 있다며 출입문을 안 열어주더라. 위에서 출입문 잠금해제를 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겨우 들어가서 받아왔다”며 웃었다.

2013년 1월 31일, 특별사면으로 석방된 용산참사 철거민들(왼쪽부터 이충연, 김주환 천주석, 김성환씨)이 서울 정동 대한문 앞에서 열린 환영문화제에 참석해 서로의 손을 붙잡고 있다. / 강윤중 기자

나쁜 기억 때문에 검찰에 가기 싫어

천씨의 사면복권장에는 “형 선고의 효력을 상실케 하는 동시에 복권”한다고 쓰여 있었다. 천씨 등 용산참사 철거민들이 받은 가장 큰 죄목은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상, 즉 철거민들이 진압하러 온 경찰을 죽고 다치게 했다는 것이다. 사면·복권으로 천씨 등 용산참사 철거민들은 공식적으로 ‘살인자’의 오명을 벗게 됐다.

천씨는 같은 용산참사 철거민인 김성천씨가 운영하는 7호선 내방역 인근의 고깃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김씨는 용산참사 당시 서울 동작구 정금마을 철거대책위원장으로 용산 남일당 건물을 찾았다. 천씨와 김씨 등 용산참사 철거민들은 2015년부터 ‘용산참사 파란집 동지회’를 결성해 주기적으로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천씨의 말대로 사면복권장을 받으러 가지 않은 이도 있었다. 용산4구역 철거민대책위원장 이충연씨는 사면복권장을 받으러 검찰에 다시 갈 생각은 없다며 “워낙 검찰에 안 좋은 기억도 있고, 계속 안 찾아가면 사면복권장이 법무부로 간다고 하더라”며 “그때 가서 받으러 갈 수도 있고…, 굳이 검찰청을 다시 찾고 싶진 않다”고 말했다.

용산참사 철거민들은 지금도 당시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찰 특공대 투입을 결정한 경찰 수뇌부와 이명박 정권에 대한 분노는 시간이 흘러 주변으로 옮겨갔다. 특히 용산참사 이후 각지에서 철거민 투쟁들이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김성천씨는 “용산참사가 벌어졌을 때 용인 어정가구단지에서도 망루투쟁이 있었다. 용산보다 망루가 훨씬 견고했는데도 용산에서 사람들이 구속되는 걸 보고 다들 철수를 하고 농성을 해제했다”고 말했다. 천주석씨는 “감옥에 있을 때 많은 분들이 영치금과 편지를 보내줘서 출소하고 그 보답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감옥에서 몇 년을 보내고 나니 주변에서는 다 저희를 배신하고 왕따를 시키는 일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김성천씨는 용산참사 재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10개월여의 감옥생활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김씨가 위원장이던 정금마을 철거민대책위는 말 그대로 와해됐다. 그는 “용산에 연대투쟁을 가기 전만 해도 40여명이 남아서 철거투쟁을 하고 있었고, 정금마을 사람들이 용산 현장에 가장 많이 갔다. 그런데 감옥에 다녀오니까 그사이 대책위가 와해되고, 다들 합의를 하고 근처로 집단이주를 했더라”고 말했다. 배신감을 느낀 김씨는 정금마을을 떠났고, 가끔 용산참사 파란집 동지회 사람들을 만날 뿐 철거민 투쟁과도 인연을 끊었다.

하지만 김씨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결국 또 싸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새로 자리를 잡은 고깃집에서도 건물주가 막무가내로 나가라고 몇 년째 압박을 하고 있다”며 “올해 말에 계약기간이 끝나는데 그 전에 맘상모라도 가입을 해서 다시 싸워야 하는지 그게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용산참사 철거민들끼리도 서로 힘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으르렁대기도 했다. 이충연씨처럼 용산4구역이 삶의 터전이었던 철거민들과 연대의 마음으로 타 지역에서 온 철거민들 사이에 입장이 달랐기 때문이다. 천주석·김성천씨 등 연대 철거민들은 자기 지역 일도 아닌 것 때문에 감옥살이를 하고, 자기 지역 철거민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반대로 이충연씨는 용산참사 관련 행사에 연대 철거민들이 많이 오지 않는 것을 섭섭해했다. 이씨는 “매년 추모제를 해도 같이 참사를 경험한 분들이 절반도 오지 않고 늘 오시는 분들만 온다. 생계 때문에 모든 행사에 참석은 못하더라도 1년에 한 번 하는 추모제도 안 오는 분들에 대해서 서운한 마음이 컸던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영화 <공동정범>에서는 철거민들 사이의 갈등과 화해에 대해 자세히 다루고 있다.

매년 추모제 행사에 오는 사람만 와

이충연씨는 “출소한 이후에도 추모제라든가 김석기 낙하산 반대투쟁 때 얼굴 보고 인사를 했지만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잘 없었다. 그렇게 서로에 대해 서운함만 커져갔다”며 “용산참사만 생각하면 억울하고 화가 나지만 그 분노의 대상이어야 할 이명박·김석기는 너무 멀리 있는 사람들이다. 당장 그 사람들에겐 억울함을 토로할 길

이 없기 때문에 서운한 감정을 같이 망루에 올랐던 가까운 사람들에게 풀게 된 것은 아닐까”라고 말했다.

이씨는 특히 출소 이후 진행하려 했던 심리치유 프로그램이 취소된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2013년 출소 직후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는 철거민들을 대상으로 심리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하려 했다. 이충연씨는 여러 철거민들이 같이 강정마을이나 밀양 송전탑 등 다른 투쟁현장에 참가한 뒤 함께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철거민들이 한데 모이기 어렵다는 난점이 있었다. 프로그램을 어떻게 진행할지 논의만 무성하다가 흐지부지됐다. 이씨는 “심리치유 프로그램이 엎어진 게 지금 생각하면 많이 안타깝다. 저도 그렇고 용산참사 이후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기회가 없었는데, 그 프로그램이 잘 됐다면 용산참사 동지들끼리 서로 의지하고 힘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지난해 가을 <공동정범>에 출연한 철거민들은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인권재단 ‘사람’ 사무실에서 <공동정범>의 가편집본을 함께 봤다. 용산참사 철거민의 대표격으로 알려진 이충연씨는 “다섯이 앉아서 영화를 보는데 나의 낯부끄러운 모습, 동지들의 아픔을 공감하지 못하고 후벼파는 말들을 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상영이 끝나고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며 “그런데 옆에서 같이 영화를 보던 천주석 위원장이 먼저 내 손을 잡아줬다. 더욱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강제퇴거금지법은 임기만료로 폐기

천주석씨는 “따로따로 떨어져 제각각 용산참사의 아픔을 겪던 철거민들이 이제야 모여서 하나가 되는 과정”이라며 “이제는 우리가 힘을 합쳐서 왜 참사가 벌어졌는지 진상을 규명해야죠. 이명박 대통령이나 경찰 수뇌부, 당시 개발에 참여했던 재벌기업들이 그런 책임을 지도록 해야죠”라고 말했다.

한편, 진상규명과 함께 철거민들이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제도적 개선책은 강제퇴거금지법이다. 18대 국회에서는 정동영 당시 민주통합당 의원(현 국민의당 의원)이, 19대 국회에서는 정청래 당시 민주당 의원이 발의했다. 폭력으로 강제퇴거를 실시할 경우엔 형사처벌을 실시하고, 공휴일·겨울철 등에 퇴거를 시행할수 없도록 법적으로 못박는 내용이다. 또한 강제퇴거금지법에는 원주민들이 개발사업 시행 전과 동등한 수준으로 거주하거나 일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18대, 19대 국회 모두 소관 국회 상임위에서만 법률을 논의했을 뿐 결국 임기만료로 폐기가 됐다.

철거민들은 영화 <공동정범>의 개봉이 용산참사 진상규명 관련법과 강제퇴거금지법이 제정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이충연씨는 “그동안 용산참사 관련 행사 때마다 제일 많이 와 주신 게 정동영 의원이고, 강제퇴거금지법을 처음 낼 때도 용산참사 유가족들과 상의를 해서 발의를 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2012년 대선 광화문 대첩 때 용산 유가족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셨다”며 “아직은 정치권과 접촉이 별로 없지만, <공동정범>이 화제가 된다면 2월 임시국회 때 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에 계신 의원들 사이에서 진상규명 논의가 다시 시작되지 않을까 실낱같은 희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