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따라 멋따라] '눈 모자 쓴 예수님'..추울수록 따스한 광주 양림동 골목 여행

입력 2018. 1. 1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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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근 조선대에선 80년 히말라야시다 나무 설경 배경 '인생 샷'

(광주=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북극 냉기가 전 세계를 빙하기로 만든다는 내용의 영화 '투모로우'를 떠올릴 만큼 춥다.

'롱 패딩'을 입어도 냉기가 등 속으로 스며들 정도다.

날씨보다 더 추운 것은 마음이다. 요즘 같으면 왠지 마음 깊이 번져오는 따스함을 느낄 곳이 필요하다.

각박한 세상 만큼이나 추운 겨울, 따스함이 느껴지는 장소를 찾고 싶다면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 골목을 걸어보자.

폭설 뒤에만 만날 수 있는 '눈 모자 쓴 예수님과 열두 제자' 부조 (성연재 기자)

양림동은 실로 근대 문화유산의 보고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기억할 것이 많은 동네다.

그만큼 우리 마음을 따스하게 해줄 게 무척이나 많다.

버드나무 숲으로 덮여있는 마을, 양촌과 유림을 합쳐 마을 이름을 얻은 광주 양림동은 광주기독교 선교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다.

우일선 선교사 사택, 오웬 기념각, 선교사 묘역 등 근대 유적이 밀집돼 역사문화 마을로 조성된 곳이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눈에 띈 것은 바로 '양림동 최후의 만찬' 부조였다.

어∼ 그런데 등장인물을 잘 살펴보면 열두 제자의 모습이 아니다.

눈 모자 쓴 예수님과 열두 제자(성연재 기자) 이번 주 기록적인 호남 폭설로 양림동 최후의 만찬 부조의 예수님과 열두 제자 상이 하얀 눈모자를 쓰고 있다.

바로 이 양림동에서 선교활동을 폈던 인물들이 그 열두 제자의 자리를 채웠기 때문이다.

이번 주 호남지역에 내린 폭설로 인해 예수님과 열두 제자 모두가 하얀 눈 모자를 쓴 모습이 너무 정겹다.

웬만큼 눈이 와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다. 엄청난 폭설이 내려야만 나타나는 현상이다.

눈 오는 날 양림동을 간다면 최후의 만찬 부조는 꼭 놓치지 말자.

양림동 출신 시인 김현승의 호를 딴 다형다방(성연재 기자)

그 대각선 맞은편에 있는 양림동 출신 시인 김현승의 호를 딴 다형다방도 빼놓을 수 없다.

이 다방은 청춘을 양림동에서 보낸 시인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으로, 시인이 쓰던 타자기 등과 함께 양림동의 옛 정취를 즐길 수 있는 기록들이 자리하고 있다.

민간 기업 소유인 이 다방은 커피와 차를 제공하며 자율적으로 무인 저금통에 500원을 지불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됐다. 하지만 최근 잦은 도난으로 잠시 문을 닫은 상태라 아쉬움이 컸다.

양림동 하면 선교사들을 빼놓을 수 없고 그 가운데 오웬(Clement C. Owen)은 가장 유명한 분이다.

미국 남장로교회가 선교를 위해 양림동에 '광주 선교부'를 설립함에 따라 1904년 한국에 부임했다.

오웬 기념각과 양림동 교회(장아름 기자)

선교사 오웬은 안타깝게도 부임 5년 만인 1909년에 급성폐렴으로 세상을 등졌다. 의료봉사와 선교에 힘썼던 그와 할아버지를 기념하기 위해 1914년 지은 건물이 오웬 기념각이다.

교회 행사를 기본으로 갖가지 음악회, 영화, 연극, 무용 등의 공연이 열린 이 건물은 근대 광주의 신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이역만리 타국 땅에 와서 의료봉사와 선교활동에 힘쓴 그의 발자취는 도처에 있다.

다형다방 맞은편의 제과점은 오웬과 독일 선교사 엘리자베스를 기념한 밀크티를 내놓았다.

엘리자베스는 1912년 입국한 뒤 1934년 숨진 '고아들의 어머니'로 따스한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애를 실천한 분이다.

오웬과 엘리자베스 밀크티를 처음 본 기자는 무식하게도 '어떤 브랜드냐'는 질문을 퍼부었다(성연재 기자)

서서평이라는 한국 이름으로도 알려진 엘리자베스는 원래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미국에서 간호학을 배우고 1912년 32살 때 선교사로 광주 땅을 밟았다.

나환자와 행려병자 등과 동고동락했고 문명 퇴치를 위해 사비를 털어 학교도 운영했지만 풍토병과 과로 등으로 1934년 숨졌다.

작은 밀크티 한 병이지만 오웬과 엘리자베스 부인에 대한 존경과 자부심이 담겨 있다.

다형다방 맞은편 골목에는 양림동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문화기획여지도'가 있다.

골목길에 붙어 있는 '문화기획여지도'(성연재 기자)

미국인 선교사 우일 선(Robert M. Wilson)에 의해 1920년 지어진 선교사 사택은 광주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서양식 주택이다.

1층에는 거실, 가족실, 다용도실이 있고 2층에는 침실을 두었으며 지하에는 창고와 보일러실이 있다.

건축미가 돋보여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고풍스런 서양식 건물로 찾는 발걸음이 끊기지 않는 우일선 선교사 사택(형민우 기)

이밖에 타마자(John Von Neste Talmage·1884∼1964)라는 한국 이름으로 알려진 미국인 선교사는 일제강점 말기에 선교사들의 국외 출국과 일본 정부의 양림동 토지 매입에 협조하지 않아 간첩이라는 누명으로 쓰고 7개월 간 옥살이를 한 뒤 추방당했다.

일제의 마지막 유혹에도 '나는 고통받고 있지만, 한국인 신도들은 고문받고 있다'는 말로 뿌리친 타마자 선교사는 심장병을 앓는 몸을 이끌고 스스로 감옥행을 선택했다 한다.

광주 남구는 양림동 일대를 선교유적 및 생태숲 복원, 전시·디자인 등 콘텐츠 개발을 골자로 한 '역사문화 마을 관광자원화사업'을 추진 중이다.

최근 여행자들 사이에서 불고 있는 양림동 열풍은 이 사업의 효과라 봐도 무방한 듯 싶다.

하얀 눈이 내린 조선대는 '인생 샷'을 찍을 수 있는 비밀의 촬영지다(성연재 기자)

양림동에서 따스함을 안고 이번에는 인근 조선대학교를 가보도록 하자.

'인생 샷'을 찍을 수 있는 비밀의 장소가 있다.

특히 하얀 본관 건물을 배경으로 서 있는 80년이 넘는 히말라야시다 나무는 눈이 내리면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인생 샷 포인트는 바로 본관 앞에서 아래쪽으로 죽 뻗은 계단이다. 아래쪽에서 찍어도 멋지고 위에서 아래쪽으로 촬영해도 멋스럽다.

하얀 본관 건물과 히말리야시다가 매력적인 설경을 만드는 조선대학교(성연재 기자)

◇ 가는 길

조선대학교의 경우 광주공항에서 공항버스를 타면 바로 정문에서 내릴 수 있다. 지하철의 경우 남광주역에서 내려 5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학교로 들어갈 수 있다.

양림동도 남광주역 3번 출구에서 내려 800여m를 걸으면 양림동 주민센터에 닿는다. 광주 송정역에서 택시로는 30여 분 소요되므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편이 낫다.

◇ 먹거리

양림동에 작은 맛집들이 많다.

그중 맛난 집밥 같은 메뉴를 내놓은 곳이 있는데, 따스한 마음씨를 가진 아주머니가 내놓는 백반집을 찾아보자.

양림동에서 간결하지만 정성이 깃든 백반집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성연재 기자)

모든 메뉴가 전라도 토박이 아주머니가 직접 시장에서 고른 재료들로 정갈하게 만들어져 있다.

제과점 바로 아래에는 따스한 마음씨를 가진 아주머니가 하는 아주 맛난 찻집이 있다.

다소 시간이 걸리므로 느긋한 마음을 갖고 천천히 즐기는 게 좋다.

polpo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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