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업에 "감 놔라 배 놔라".. 결국 8者가 협약식

김기홍 기자 2018. 1. 12.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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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달만에 봉합 '파리바게뜨 사태' 정의당·참여연대 끼며 협상 복잡]
애초 '본사 직고용'은 무리수.. 결국 '자회사 직고용'으로 미봉책
제빵기사는 임금·휴일 등 늘어나
일부선 "자회사도 불법파견 소지.. 정부, 불필요한 갈등·비용 유발"

파리바게뜨 가맹 본부와 한국노총·민주노총이 11일 제빵기사 직고용 문제 해결에 전격 합의하면서 '파리바게뜨 사태'가 4개월 만에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파리바게뜨 사태는 지난해 9월 고용노동부가 파리바게뜨에 제빵기사 직접 고용을 지시한 이후 민주노총에 이어 한국노총과 시민단체까지 협상에 개입하며 계속 복잡해지는 양상을 보였다.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상생 협약식'에는 노사 양측과 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정의당, 참여연대,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등 '8자(者)'가 참석해 도장을 찍었다. 재계에선 이번 사태가 민간 기업의 노사 관계에 너나없이 뛰어들어 '감 놔라 배 놔라' 개입하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파리바게뜨 자회사가 직고용"

파리바게뜨 노사는 이날 서울 여의도에서 만나 막바지 의견 조율 작업을 벌였다. 황재복 파리바게뜨 부사장과 신환섭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 노조위원장은 지난 5일 한국노총이 3차 간담회에서 제시한 자회사 운영 방안과 세부 고용 조건 등을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합의문에 도장 찍은 8者… 참여연대는 사진에서 빠져 - 파리바게뜨 사태가 4개월여 만에 타결된 11일, 서울 여의도 한 식당에서 열린 협약식에서 이재광(왼쪽부터) 가맹점주협의회 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 신환섭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노조위원장, 권인태 파리크라상 대표, 문현군 한국노총 중부지역 공공산업노조위원장,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이남신 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이 손을 맞잡고 있다. 이날 합의문에 도장을 찍은 노사, 시민단체, 정당 등 8자(者) 가운데 참여연대 측은 사진에서 빠져 있다. /김연정 객원기자

이들은 제빵기사를 고용할 자회사 지분을 파리바게뜨(법인명 파리크라상)가 51%, 가맹점주가 49% 보유한다는 데 최종 합의했다. 당초 파리바게뜨가 주장하던 '가맹 본부와 가맹점주협의회, 인력 고용 업체가 각각 3분의 1씩 출자하는 3자 합작사' 방식보다 파리바게뜨의 지분 비중이 높아졌다. 책임 경영 차원에서 대표이사는 파리바게뜨 임원 가운데 선임하기로 했다. 또 당초 파리바게뜨가 제안한 3자 합작회사인 '해피파트너즈' 명칭도 양대 노총 요구에 따라 바꿀 예정이다. 인력 고용 업체는 지분 참여나 등기 이사에서 배제한다.

파리바게뜨로선 지분 비중이 높아져 부담이 커졌다. 그런데도 타협안을 받아들인 이유는 사태의 장기화가 브랜드 이미지를 깎아내릴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 직접 고용보다는 인건비 부담이 적고, 162억원의 과태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

민주노총도 한발 물러섰다. 신환섭 위원장은 "직접 고용을 원했지만 본사 책임이 많아진다면 받아들일 만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또 파리바게뜨의 3자 합작사 방식과 민주노총의 직접 고용 방식이 평행선을 그리는 상황에서 한국노총이 "자회사 고용도 인정할 수 있다"며 지난달 개입한 것도 협상 타결의 한 계기가 됐다는 분석이다.

제빵기사들은 임금·근로 조건이 좋아진다. 휴일은 월 6일에서 8일로 늘어난다. 파리바게뜨는 제빵기사 500여명을 추가 채용할 계획이다.

◇"미봉책에 불법 파견 소지 여전"

고용부는 이날 보도 자료를 내고 "파리바게뜨와 가맹점주들이 합의한 것은 의미 있는 결과"라며 "고용부의 불법 파견에 대한 엄정한 법 집행이 이번 합의의 밑바탕이 됐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일부에선 이번 합의가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현행 파견법은 협력 업체 직원이 용역 계약을 체결한 원청 업체로부터 직접적인 관리·감독을 받으면 불법 파견에 해당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고용부가 지난 9월 불법 파견으로 결론 내린 것도 파리바게뜨 본사가 협력 업체 소속인 제빵기사를 직접 관리·감독했다고 봤기 때문이다.

자회사에 직고용된 제빵기사가 일선 가맹점에 배치돼 근무하는 과정에서 불법 파견 문제가 또다시 불거질 수도 있다. 앞으로 2자 합작사가 출범하면 개별 가맹점과 용역 계약을 맺은 뒤 제빵기사를 가맹점에 보내야 한다. 가맹점주는 제빵기사에게 근무시간 동안 이런저런 지시를 내리는 상황이 수시로 발생할 수 있지만 이럴 경우 가맹점주가 제빵기사를 직접 관리·감독한 것에 해당돼 불법 파견이라고 볼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한 노동 전문가는 "애초부터 불법 파견 문제를 원천 해결하려면 가맹점주가 제빵기사를 직고용하면 된다는 지적이 있었다"면서 "고용부가 노동계를 의식해 본사에 직고용 책임을 지우려다 보니 불법 여지가 있는 미봉책이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교수는 "정부가 시장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본사 직접 고용 방안을 무리하게 밀어붙여 불필요한 갈등과 사회적 비용을 유발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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