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네잎 클로버 키워 스타벅스에 .. 행운 파는 농부

최준호 2018. 1. 12.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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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째 화훼농사 짓다 발상 전환
종자 개량해 매일매일 대량 수확
음료 토핑용으로 하루 2만장 공급
"외국서 못 따라해 .. 수출도 유망"
━ J가 만난 사람 │ 홍인헌씨
홍인헌씨는 네잎 클로버를 스타벅스와 같은 커피전문점뿐 아니라 빵집과 같은 다양한 식음료 프랜차이즈에 공급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신년 초부터 네잎 클로버 열풍이 뜨겁다.

열풍의 진원지는 풀밭이 아니라 커피전문점이다. 스타벅스코리아가 지난 1일 내놓은 네잎 클로버를 토핑으로 올린 ‘오트 그린티 라테’ 얘기다. 신년을 맞아 행운을 선사한다는 의미로 행운의 상징을 음료에 담았다. 오트(귀리) 밀크와 그린티를 섞은 이 음료는 전국 1120여 개 매장에 일제히 선보였는데 출시 첫날부터 1만 잔이 완판됐다. 더 팔고 싶었지만 준비한 네잎 클로버가 동이 났다. 스타벅스는 이튿날부터 매일 네잎 클로버 2만 장을 준비해 오트 그린티 라테를 판매하고 있다.

박현숙 스타벅스코리아 카테고리총괄부장은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미디어에 네잎 클로버가 띄워진 오트 그린티 라테 사진이 지금까지 3000장 이상 올라왔을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네잎 클로버는 희귀하기 때문에 전 세계 어디서나 행운의 상징으로 통한다. 구하기 힘든 네잎 클로버를 스타벅스는 어떻게 매일 2만 장 이상 안정적으로 음료에 넣어 팔고 있을까. 비결은 20년째 화훼농사와 유통을 겸하고 있는 홍인헌(56)씨 덕분이다. 그는 국내 유일의 ‘네잎 클로버 농부’다. 그가 운영하는 농장에서 키워 내는 클로버는 잎의 90% 이상이 네잎 또는 그 이상이다. 홍씨는 “국내는 물론 외국에도 나처럼 대량으로 네잎 클로버를 키우는 곳은 없다”고 말했다.

지난 9일 중앙일보 취재진이 충북 청주에 있는 홍씨의 클로버 농장을 찾았다. 바깥은 철제 기둥의 초대형 유리온실, 안쪽은 비닐하우스로 된 이중 온실 속에서 클로버가 일반 작물처럼 밭고랑 위 검은 비닐을 뚫고 자라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보니 운이 좋아야 겨우 찾을 수 있다는 네잎 클로버가 지천에 깔렸다. 2000㎡(약 600평) 규모의 클로버 밭에서 매일 2만 장의 네잎 클로버를 ‘수확’할 수 있다고 한다. 클로버는 잎을 뜯어내도 일주일 뒤면 다시 수확할 수 있어 작물로서 경제성이 뛰어나다.

대학 시절 원예학을 전공했다는 홍씨는 화훼 유통업을 하다가 좀 더 수익성 높은 작물을 고민하던 끝에 네잎 클로버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희귀한 네잎 클로버를 대량으로 재배해 낼 수 있다면 부가가치가 높게 팔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홍씨는 5년간 네잎 클로버가 난 줄기를 옮겨 심는 등 수십 번의 종자 개량을 통해 국내 최초로 네잎 클로버 대량 생산법을 개발했다. 2013년에는 각각 ‘대박’과 ‘포유’라는 이름으로, 국립종자원에 일종의 식물 특허인 ‘품종 등록’까지 마쳤다.

네잎 클로버가 올려진 스타벅스 코리아의 오트 그린티 라테.
홍씨는 처음엔 네잎 클로버를 화분에 심어 판매했다. 돈이 되지 않았다. 다음엔 지인들을 통해 서울 여의도 63빌딩 내 한식당과 일식당·양식당 등에 공급하는 루트를 뚫었다. 그래 봤자 하루 500장에 불과했다. 그러던 사이 홍씨의 네잎 클로버가 조금씩 입소문을 타고 퍼지기 시작했다. 스타벅스에서 라테용 토핑으로 네잎 클로버를 채택한 것도 식음료 기획담당 직원이 소문을 듣고 홍씨를 직접 찾아온 결과다.

네잎 클로버 한 장의 가격이 궁금했다. 스타벅스에 음료 토핑용으로 하루 2만 장을 공급한다고 해도 큰돈이 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잔에 6100원인 오트 그린티 라테에 넣을 클로버 한 장을 1000원에 공급한다고 해도 2만 장이면 2000만원에 불과하다. 네잎 클로버 공급 가격은 홍씨는 물론 스타벅스에서도 비밀에 부치고 있다. 홍씨는 대신 “일반 사과 상자 크기 한 상자에 네잎 클로버를 소포장해 담으면 5만원 정도 받을 수 있다”고 공개했다. “더군다나 오이나 고추처럼 1년에 한두 차례 수확해 파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밭에서 연중 매일 같은 양을 수확해 판다는 점을 생각해 보라”고 답했다. 홍씨는 올 한 해 프랜차이즈 공급 확대와 수출 등을 통해 네잎 클로버만으로 10억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다고 장담했다.

황정환 국립원예특작과학원장은 “홍씨는 네잎 클로버라는 작물이 아닌 행운이라는 이미지를 파는 농부”라며 “기념품으로나 쓰는 네잎 클로버를 육종해 식음료 메뉴에 이용한다는 것은 기상천외한 발상”이라고 말했다. 홍 원장은 “세월이 흐를수록 기존 농업으로는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는 한국 농업의 입장에서는 홍씨의 네잎 클로버 같은 창의성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청주=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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