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글로벌 트렌드] 그저 그런 쌀가게? 천만에..日 쌀집의 대변신

정욱 2018. 1. 11. 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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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진 맛·꼬들꼬들한 맛..맛 세분화와 함께 5가지 도정 단계따라 신선도까지 구분해 판매
밥솥·식기·반찬·술 등 종합 잡화점 역할도
도쿄 쇼핑 1번지 긴자에 위치한 아코메야 도쿄 본점에선 초고가 쌀을 초소량(450g)으로 판매한다. 인구 감소와 식습관 변화로 소비량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일본 기업들이 `초소량·초고가` 시장을 새롭게 만들어냈다. [도쿄 = 정욱 특파원]
이곳에선 쌀도 럭셔리 상품이 된다. 도쿄의 쇼핑 1번지 긴자의 한 귀퉁이에 자리 잡은 '아코메야 도쿄' 얘기다. 일본어로 쌀을 뜻하는 '코메(米)'에 집을 뜻하는 '야(屋)'를 결합한 상호처럼 쌀집이다. 도쿄와 사이타마 등 총 3곳의 매장에서 일본 전역에서 생산된 25종의 쌀을 판매한다.

쌀집이 뭐 대단할 게 있어 긴자까지 진출했나 싶지만 쌀을 파는 방식이 남다르다. 쌀을 단순한 밥의 재료로 보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매끼 식사의 핵심 식재'로 대접하는 일본에서는 쌀맛도 분류하고 있다. '부드러운 맛 vs 꼬들꼬들한 맛' '차진 맛 vs 메진 맛'을 각각 X축과 Y축으로 하는 4분면에 모든 쌀이 표시된다.

예를 들어 한국인들에게도 익숙한 '고시히카리' 중 최고로 꼽히는 니가타현 우오누마산(産)은 '차지다'의 척도로는 60% 수준이고, '부드러움' 정도에서는 65%다. 아코메야에선 우오누마산 고시히카리처럼 각 영역 대표선수들만을 골라 1부 리그를 만들었다.

생산 지역과 품종을 따지는 것은 꽤 번거로운 일이지만 아코메야는 쌀의 신선도까지 따진다. 매장엔 '쌀은 신선식품입니다'란 홍보 선전물도 있다.

포장된 제품도 있지만 신선한 쌀을 원한다면 매장에서 쌀의 외피를 깎아내는 도정을 바로 해서 구매할 수도 있다. 수확된 상태의 현미부터 쌀눈, 쌀겨까지 모두 깎아낸 백미까지 총 5가지 종류(현미, 3분도미, 5분도미, 7분도미, 백미) 중 선택이 가능하다. 3분도미는 쌀 외피 30%를 깎아냈다는 뜻이다. 직접 도정할 경우엔 양을 선택할 수 있지만 포장된 제품은 초소량(450g)이 기본이다. 우오누마산 고시히카리는 450g이 1274엔(약 1만2740원)이다. ㎏으로 따지면 2832엔이다. 시중 마트의 동일 종 판매가에 비해 4~5배나 비싸다. 누가 살까 싶지만 판매는 꾸준하다. 쌀 외에도 쌀통부터 밥솥, 쌀과 함께 먹을 반찬과 술, 식기까지 판매한다. 방문해 보면 잡화점에 가깝다고 느낄 정도다.

쌀을 전면에 내세워 고객을 끌어들이고 자연스럽게 유관 상품까지 파는 것이 아코메야의 핵심 전략인 셈이다.

상품 외에도 매장에선 주기적으로 '쌀맛 구별 방법 클래스'를 비롯한 쌀 관련 강연회 및 이벤트를 연다. 매장 한쪽엔 쌀에 방점을 찍은 식당까지 운영하고 있다. '경험'을 판매한다는 전략이다. 아코야메는 "전체 매장 구성을 통해 쌀에 관한 한 모든 제품을 다 다룬다는 이미지를 고객들에게 전달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쌀집이 어지간한 기업보다 마케팅 측면에서 공을 많이 들이는 것은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로 잔뼈가 굵은 모기업의 노하우 덕이다. 아코메야를 운영하는 회사는 자칭 '라이프스타일그룹'인 사자비리그다. 이 회사 포트폴리오엔 패션, 잡화, 음식, 뷰티에 가구까지 포함하고 있다. 햄버거 프랜차이즈인 '쉑쉑버거(쉐이크쉑)'를 비롯해 생활잡화인 '애프터눈티' 등도 있다.

사자비리그만이 아니다. 전자제품을 생산하는 아이리스오야마, 식품업체인 코코메, 대형 유통업체들까지 쌀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모두 고급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아코야메 역시 고급 쌀에 주력하다 보니 본점이 긴자에 들어서게 됐다.

기존 쌀 업체인 마이후도, 기타가마쿠라정미소 등도 예전이라면 상상하기도 힘든 초고가 상품을 일반인을 대상으로 판매하고 있다. 마이후도에서는 공예품처럼 '누구 씨 작품'이란 식으로 쌀을 홍보한다.

일본도 쌀 소비량이 한국처럼 매년 감소하고 있다. 시장이 쪼그라드는 과정에서 사자비리그 같은 기업들은 신시장을 찾아냈다. 초소량·초고가 시장이다.

과거엔 대가족이 쌀을 기본으로 하는 식사를 했다. 그러나 이제는 소가족인 데다 함께 식사하는 일도 점차 줄고 있다. 또 밥이 식탁에 오르지 않는 경우도 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 끼를 먹더라도 제대로 먹자는 소비자층을 타깃으로 하는 기업이 늘었다. 많이 먹지 않으니 소량 구매가 주를 이루고 있다. 한 끼나 두 끼 정도면 충분할 상품이 주종이다. 5㎏짜리 가정용 제품도 주력이 2㎏짜리로 바뀌었다. 그만큼 초고가 상품도 일반인 지갑 사정으로 충분히 구매할 수 있는 금액대다. 양이 줄면서 구매를 결정하는 포인트가 가격에서 품질이 된 것이다.

정부 차원의 쌀 생산량 조절 정책이 바뀐 것도 한몫했다. 일본에서는 1970년부터 정부가 '생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쌀을 사들여왔다. 쌀 가격 하락을 막기 위해서였다. 생산조정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하락하자 쌀값 보전(1998년)을 비롯해 2007년(타 작물 재배 지원), 2010년(쌀 직불제) 등이 도입됐다. 일본 정부가 버티다 결국 포기했고, 올해부터 생산조정·직불제가 사라졌다.

판매가 더 어려워진 농어촌에서도 브랜드화에 집중적으로 나서 지난해 10월 말 기준으로 농림수산성에 등록된 쌀 브랜드만 753개에 달한다. '난립'이란 표현이 등장할 정도다. 이러다 보니 브랜드 차별화가 중요해졌고 마케팅 전문 기업들이 직접 뛰어들기 시작하며 고급화가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도쿄 = 정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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