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점-편의점 '해고 도미노'.. 정부는 "과도기적 현상" 無대책

2018. 1. 1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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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인상 후폭풍]
현장에선 비명 지르는데..괜찮아질거라는 정부

[동아일보]

경기 화성시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이미원 씨(51·여)는 지난해 12월 아르바이트 점원 2명을 해고했다. 하루 8시간씩 3교대로 돌던 근무 형태를 자신이 하루 12시간 근무하고 다른 직원 근무 시간도 줄이면서 점원 수를 6명에서 4명으로 줄인 것이다. 이 씨는 “여러 명을 고용하고 싶지만 인건비 부담이 너무 커지는 바람에 급여가 오르기 전인 12월부터 미리 그만두게 했다”고 말했다.

통계청이 10일 내놓은 고용동향에서 나타난 일자리 한파는 최저임금 인상 전 사업주들이 잇달아 종업원을 줄이는 도미노 퇴출이 있을 수 있다는 당초의 우려가 현실화한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이 장기적으로 임금 격차를 줄이는 수단이 된다고 해도 제도 추진 과정에서 드러나는 부작용에 대처하지 못하면 고용의 질을 높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 “제품 가격 인상도 고려”

지난해 연간 실업자 수는 102만8000명으로 현재의 기준으로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00년 이후 최고치다. 작년 12월만 해도 취업자 수 증가 폭이 25만3000명으로 3개월 연속 20만 명대의 증가 폭을 보이며 정부 목표치인 30만 명에 못 미쳤다.

전반적인 고용난 속에서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은 서비스 업종을 중심으로 일자리 감소 현상이 두드러졌다. 모두가 힘들었지만 취약계층이 더 추운 겨울을 보낸 셈이다. 지난해 12월 음식점 종업원의 고용 상황이 주로 통계에 잡히는 숙박 및 음식점업의 취업자는 전년 같은 달보다 2.1% 줄어 전체 서비스업 중 일자리 감소 폭이 가장 컸다. 최저임금 인상의 충격을 가장 크게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제빵사, 재단사, 차량 정비사 등도 직장을 많이 떠났고 도매 및 소매업이나 사업시설관리 분야에서도 각각 1만 명 이상씩 고용이 줄었다. 특히 슈퍼마켓이나 편의점 판매 직원 등 판매 종사자 수는 지난해 12월 304만 명으로 집계되면서 1년 전보다 9만 명 가까이 감소했다. 빈현준 통계청 고용통계과장은 “월간 서비스업 일자리 추이를 보면 지난해 12월의 감소 폭이 가장 컸다”고 설명했다.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으로 삶의 질을 높이자는 게 일자리 정책의 기조지만 당장 자영업자들은 더 각박한 삶으로 내몰리고 있다. 서울 강남구에서 6년째 편의점을 운영하는 문현승 씨(35)는 최저임금 인상의 여파에 대응하는 고육책으로 자신의 근무시간을 늘렸다. 그 대신 평일 오후 3∼10시에 근무하던 아르바이트생의 근무 시간은 오후 7∼10시로 4시간 줄였다. 문 씨는 “최저임금 인상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당장 최저임금 인상분에 대한 부담을 고스란히 점주가 떠안게 되면서 ‘줄일 수 있는 건 줄이자’라고 바뀌게 됐다”고 설명했다.

인건비에 민감한 동네 상권에서는 “최저임금 때문에 채용을 줄일 수밖에 없다”는 탄식이 쏟아지고 있다. 서울에서 프랜차이즈 빵집을 운영 중인 점주 A 씨는 지난해 12월 주말 오전에 일하던 직원 1명을 줄였으며, 이달 안에 근무자 1명을 추가 감축할 예정이다. 그는 “지금은 임시방편으로 인력을 줄이지만 앞으로는 제품 가격 인상까지 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1월에도 이 같은 추가 고용 감소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반면 기획재정부 측은 “지난해 12월 민간 서비스 업종에서 6만1000명의 고용 감소가 발생하긴 했지만 이는 그동안 관련업계 종사자가 크게 늘어났던 것이 조정을 받는 과정”이라고 밝혔다. 최저임금 인상을 앞두고 고용을 줄인 것으로 판단하기에는 이르다는 것이다.

○ 보완책 없이 폭주하는 최저임금 정책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소상공인에게 최저임금 인상분 일부를 지원하는 일자리 안정자금으로 최저임금 정책의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안정자금이 제대로 집행되기만 하면 지금의 고용 한파가 과도기적 현상에 그칠 것이라고 정부는 보고 있다.

이와 달리 전문가들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촉발된 이번 상황이 장기화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이미 “일자리 안정자금 신청이 까다롭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일부 사업장에서는 이번 최저임금 인상을 계기로 근로자 해고 후 신규 설비를 도입하는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비용 구조가 크게 나빠질 것은 이미 예상됐기 때문에 영세 자영업자들이 선제적으로 고용 축소에 나선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정부는 임금 지급 명세와 일자리 안정자금 신청 내용을 본 뒤 추가 대책을 내놓겠다는 생각이지만 속 시원한 대책이 나오기 어렵다. 정부 당국자는 최저임금 인상은 중간에 돌이킬 수 없는 것이라 부작용이 있어도 안고 갈 수밖에 없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일자리 안정자금 지원 이상의 대책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부가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 원 달성’을 공언한 만큼 인건비 부담에 따른 고용 축소 악순환이 당분간 계속될 수도 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부 교수는 “고용이 심각하게 줄어든다면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조절하겠다는 메시지를 시장에 보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은서 clue@donga.com / 세종=박재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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