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멕시코 장벽, ‘장벽’ 아닌 ‘구멍’되나

박용필 기자

“21세기의 문제에 3세기 방식으로 대응한다.” 미국 공화당의 한 의원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멕시코 장벽’을 두고 한 말이다. ‘효과가 없을 것’이라 비꼰 것이다. 이 장벽이 단순히 ‘무용지물’에 그치지 않고 ‘구멍’이 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뉴욕타임스는 멕시코 장벽이 미국의 국경 보안에 오히려 심각한 위협을 초래할 수 있다고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2006년 11월12일 촬영한 미국과 멕시코 국경지대. 샌디에이고|AP연합뉴스

2006년 11월12일 촬영한 미국과 멕시코 국경지대. 샌디에이고|AP연합뉴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주 멕시코 장벽 건설을 위한 예산으로 약 180억 달러(약 19조원)를 의회에 요구했다. 이는 향후 10년 동안 미국 국경 보안에 쓰일 총 예산 330억 달러의 절반 이상에 달하는 금액이다. 더구나 장벽 예산은 당초 국토안보부의 예산안에 포함돼 있지도 않았다. 백악관은 멕시코 장벽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기존 예산의 삭감이나 집행 연기를 관련 부처에 요구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뉴욕타임스가 입수한 2019년 예산 지침 관련 정부 내부 문건에 따르면 백악관 예산 집행부는 국토안보부에 기존 국경 보안 예산을 삭감하거나 집행을 연기할 것을 요구했다. 삭감 대상에는 원격 감시 카메라 관련 예산, P-3 정찰 항공기 업그레이드 예산 790만 달러 등이 포함됐다. 해안 순찰 보트 15척 추가 구매 예산 1500만 달러는 집행 연기가 권고됐다.

마약 탐지견 팀도 절반 가까이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특히 문건에는 세관 요원 충원 관련 예산이 전혀 언급돼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트럼프는 지난해 5000명의 국경 순찰대 요원과 10000명의 이민관세국 요원을 충원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미국 해양경찰이 3일 바다에 빠진 승용차를 구조하고 있다.파나마시티|EPA연합뉴스

미국 해양경찰이 3일 바다에 빠진 승용차를 구조하고 있다.파나마시티|EPA연합뉴스

관련 예산이 삭감되면 국경 보안에 ‘구멍’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 삭감 대상에 포함된 원격 감시 카메라는 텍사스 리오그란데 벨리에 설치돼 있다. 해당 지역은 불법 월경과 마약 밀매가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곳 중 하나다. P-3 정찰기는 수천 마일에 걸친 국경 상공을 날며 마약 밀수를 적발한다. 2016년 한 해에만 145건을 적발해 3만4108파운드의 마리화나와 19만3197파운드의 코카인을 압수하는데 기여했다.

추가 구매 연기가 권고된 해안 순찰선은 해변에서 마약 밀수선을 잡는 역할을 한다. 더 작고 빨라진 밀수선을 추적하려면 선박 교체가 시급하다고 해양 경찰들은 말한다. 지난 한해 20만여명의 밀입국자들과 60만 파운드의 마약, 7000만 달러의 밀수금을 적발한 세관 요원들은 현재 3700명 정도가 더 충원돼야 할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의 바람과는 달리 ‘장벽’은 이들의 빈 자리를 효과적으로 메우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마약 단속국에 따르면 코카인이나 헤로인, 메스암페타민 등 마약들은 국경 지대보다는 주로 항구 등을 통해 합법적 화물로 가장해 들어온다. 불법 이민자 역시 마찬가지다. 뉴욕의 이주연구센터 조사 자료에 따르면 불법 체류자들은 단기간 비자 등으로 미국에 들어온 뒤 출국을 하지 않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국경을 몰래 넘어온 게 아니다. 해당 연구소의 로버트 워렌은 “장벽의 높이가 제 아무리 높다해도 비자 체류 기한을 넘기는 행위를 막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멕시코 장벽의 견본이 지난해 10월 19일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지역에 세워지고 있다. 샌디에이고|AP연합뉴스

멕시코 장벽의 견본이 지난해 10월 19일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지역에 세워지고 있다. 샌디에이고|AP연합뉴스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장벽 집착’은 빠르게 진화하는 테러와 마약 밀매의 생태를 간과한 처사라고 본다. 전직 중앙정보국(CIA) 요원 출신 공화당 상원의원 윌 허드는 “21세기의 문제에 3세기의 해법은 쓸모가 없다”고 했다. 도리스 마이스너 전 미 이민국 커미셔너는 “불법 이민자를 그렇게 막고 싶다면, 차라리 기술과 보안 프로그램에 투자하라”고 트럼프에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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