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혜광고, 박종철 이름 꺼내면 선생님이 끌고가.."
혜광고 28기 동기회, 22년만에 박종철 추모비 건립 이끌어내
동기들 "영화 1987에 인간 종철이의 따뜻한 모습 없어 아쉬워"
1987년 3월 혜광고에 입학한 박상현(48) 씨는 1학년 내내 고 박종철 열사의 이름을 입 밖에 꺼내지 못했다고 한다. 박 씨는 10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박종철 이름을 꺼내면 선생님들이 방송실로 끌고 가 심하게 구타했다. 이런 상황이 몇 번 반복되자 박종철은 금기어가 돼 버렸다”고 말했다. 그는 “선생님들이 학생들이 민주화 시위에 참여할까 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한 것 같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문예부였던 박씨는 1987년 12월 박종철을 기리는 추모시를 썼다가 심한 체벌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선배의 희생정신을 기리고 싶어서 연말 ‘문학의 밤’에 낭독하려고 추모시를 썼지만, 이 사실을 안 문예부 담당 선생님께 끌려가 엄청나게 맞았다”며 “추모시는 갈기갈기 찢어졌고, 문학의 밤에 참석할 수도 없었다”고 기억했다
이 때문인지 혜광고를 시작으로 다른 고등학교에서도 학생회장을 직선제로 선출하는 곳이 속속 등장했다. 박씨는 “박 열사를 기리는 추모비 건립을 추진하려 했지만 학교 반대가 너무 심해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도 했다.
박 열사 추모비 건립은 박종철 동기들이 해냈다. 박 열사와 가장 친했던 변종준(55)씨의 제안으로 1992년 동기회가 꾸려졌다. 동기회장은 추진력이 뛰어난 김상준(55) 씨가 맡았다.
박 열사 동기회는 2010년부터 매년 혜광고 재학생들에게 박종철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후배들이 박종철을 잊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동기는 물론 선·후배가 십시일반 모은 돈이다. 지금까지 50여명의 후배가 장학금을 받았다.
박 열사의 죽음은 혜광고 선후배들의 삶을 모두 바꿨다. 김상준 혜광고 28기 동기회장은 1990년 학생운동에 뛰어들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집행유예를 받기도 했다. 사회운동에 관심이 전혀 없던 변 씨 역시 ‘박종철 기념사업’을 추진하다 보니 어느덧 ‘민주열사’가 됐다고 한다.
지난 2일부터 시작된 서울 용산구 남영동 대공분실을 시민의 품으로 되돌려 달라는 국민청원운동도 28기 동기회가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박 열사가 고문을 받다 사망한 곳이다.
“다음 영화에는 인간 박종철의 모습이 담겼으면 좋겠다”는 게 김 회장의 바람이었었다.
부산=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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