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김치 프리미엄 빼니 .. 암호화폐 시총 하룻새 107조 증발

고란 입력 2018.01.10. 00:03 수정 2018.01.10.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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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시세 집계 '코인마켓캡'
빗썸·코빗 등 국내 거래소 가격 빼
해외 투자자, 가격변동에 놀라 투매
"각국 잇단 규제, 시장 불안감 커져"

8일 밤 9시 암호화폐 시장에서 비트코인 가격이 갑자기 출렁거렸다. 2600만원을 향해 달려가던 가격이 순간 하락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 기준). 11시가 넘어가자 낙폭이 커졌다. 날짜를 바꾼 9일 새벽 0시 15분경에는 2400만원선마저 내줬다. 3시간 만에 200만원 넘게 떨어졌다. 덩치가 작은 리플의 하락세는 더 컸다. 같은 시간 4220원에서 3430원까지 밀렸다. 20% 가까운 폭락이다.

매도세는 해외에서 촉발됐다. 해외 투자자들이 매물을 쏟아내면서 비트코인을 비롯한 대부분의 암호화폐 가격이 내려갔다. 국내 시세도 함께 밀렸지만, 하락세는 가파르지 않았다.

그런데 때마침 은행 점검 시간이 됐다. 업비트는 매일 오후 11시부터 다음날 오전 2시까지 입출금이 불가능하다. 코인원도 오후 11시 30분부터 다음날 1시까지 입금이 안 된다. 빗썸은 이날 오전 0시 30분부터 2시 40분까지 긴급 서버 점검에 들어갔다. 시장에 신규 자금이 들어오지 않은 탓에 낙폭이 커졌다.

[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은행 점검 시간이 끝나고 새로 거래소에 돈이 들어오면서 가격은 그간의 하락 폭을 만회하고 횡보세를 이어갔다. 그러다 9일 오전 7시, 글로벌과 국내 시세를 비교해 본 투자자들이 가격 차(일명 ‘김치 프리미엄’)가 벌어진 걸 확인하자 일제히 매물을 쏟아냈다. 비트코인은 한 시간 동안 100만원 빠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는 9일 “지난 7일 8350억 달러에 이르던 암호화폐 시가총액이 8일 한때 6830억 달러까지 빠졌다가 7220억 달러가 됐다”며 “지난 24시간 동안 암호화폐 시가총액이 1000억 달러(약 107조원) 증발했다”고 전했다.

이런 암호화폐 가격 하락의 일차적 원인은 ‘코인마켓캡’이다. 이 사이트는 전 세계 7600여 거래소에서 비트코인을 포함한 1386개 암호화폐 시세를 세계협정시(UTC) 기준으로 집계한다. 코인마켓캡은 사전 공지 없이 평균 가격 산출에 포함했던 빗썸·코인원·코빗 등 3개 거래소의 가격을 빼기로 했다(업비트는 이곳에 가격 및 거래량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암호화폐 투자자가 이 사이트를 참고해 글로벌 시황과 김치 프리미엄 정도 등을 확인한다. 그런데 글로벌 시세보다 50% 안팎 비싸게 거래됐던 한국 가격을 빼고 나니 평균 가격이 급락한 것처럼 보였다. 해외 투자자는 글로벌 시세가 급락했다고 보고, 자신이 거래하는 거래소의 가격이 급락하기 전에 매물을 내놨다. 매도가 매도를 부르는 ‘패닉셀’이 겹치면서 낙폭이 커졌다.

암호화폐는 국경이 없는 무국적 화폐다. 이론적으로는 거래소별로 가격차가 없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암호화폐를 살 수 있는 법정화폐(원화, 달러 등)는 국가의 관리하에 있기 때문이다. 외국에 사는 외국인이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에 회원으로 가입하는 건 쉽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자국 거래소가 아닌 이상 이들이 법정화폐로 암호화폐를 사는 건 어렵다. 거래소와 연계된 은행 계좌 개설이 어렵기 때문이다.

외국인은 국내에 거주하지 않는 이상 국내 계좌를 만들기 어렵고, 마찬가지로 내국인도 해외 계좌 개설이 어렵다. 게다가 해외 송금액은 1년에 5만 달러로 제한됐다. 재정 거래가 가능하더라도 비트코인 3개 수준밖에는 할 수 없다.

미국의 온라인 매체 더머클은 “1년 전 중국이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거래의 대부분을 차지했을 때에도 중국 프리미엄은 10% 수준에 불과했다”며 “현재 한국의 50% 안팎에 달하는 가격 프리미엄을 평균 가격에 반영하면 시장을 왜곡시킬 수 있다”고 전했다.

가격 집계 방식을 바꿨다고 이렇게 가격이 출렁이는 건 시장이 그만큼 불안하다는 방증이다. 무엇보다 최근 한 달간 전반적으로 암호화폐 가격이 많이 올랐다. 지난해 12월 초만 해도 암호화폐 시가총액은 3000억 달러였지만 지난 8일엔 8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언제 조정이 와도 이상하지 않은 시점이다.

각국 정부가 규제를 강화하는 점도 불안 요소다. 한국은 거래소에 가상계좌를 제공하는 은행에 대한 특별 검사에 들어갔다. 중국은 비트코인 채굴자들의 전력 사용을 제한하는 걸 검토하고 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지난해 말 암호화폐를 통한 자금모집, 일명 ICO를 증권거래법으로 규제할 방침이다. 울고 싶은데 뺨 때린 격이었다.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